하나.
10월 1일 국군의 날은 1956년 9월 14일에 제정되었다. 썬글래스 끼고 쿠데타 일으켜 나라 뒤집은 박모 대통령, 대머리 번쩍이며 또 한번 뒤집었던 전모 대통령 등, 군인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70년대와 80년대에는 국군의 날이 최고 경축일이었다.


계란 맞은 박정희 흉상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고 정치판에서 군부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국군의 날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버렸다. 더이상 공휴일도 아닌데다 군사 퍼레이드도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다(이번 국군의 날에는 5년만에 군사 퍼레이드가 부활되었다). 한마디로 이젠 있으나 마나한 경축일이 된 셈이다.


둘.
10월 9일 한글날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역사 기록을 따져보면, 세종대왕께선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에 한글을 창제했으며, 28년(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다. 상순이라 하면 늦어도 10일에 반포된 것으로 추측되니만치, 양력으로는 10월 9일이 된다. 본디 조선어 학회에서는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로 삼았으나 1940년, 이를 10월 9일로 개정하였다. 해방 이후 한글날은 공휴일로써, 국가적인 경축일이 되었다.
(주 : 북한에서는 훈민정음 반포일이 아닌 훈민정음 창제일을 기준으로 삼아, 1월 15일을 '한글창제일'로써 기념하고 있다)


세종대왕 영정


그런데 1991년 노태우 정부에서는 갑자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켰다. '노는 날이 너무 많다'는 이유가 첫번째였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문자 창제를 경축하는 국경일이 없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첫번째 이유야 납득한다 치더라도, 두번째 이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자기네 문자가 만들어진 날을 기념할래야 할 수가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창제자와 창제일이 정확한 역사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자는 전세계를 통틀어 오직 하나, 한글 뿐이다.
서양의 높은 나라들이 안하니까 우리도 안하겠다는 말은 골수 사대주의에 불과하다. 이런 변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건 전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정치가와 공무원들 뿐이리라.


셋.
1950년, 안과 의사였던 공병우 박사님이 고속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개발했다. 이전의 한글 타자기와는 비교되지 않으리만치 빠른 한글 입력이 가능한 이 타자기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완벽한 개무시를 당했다. 공병우 박사님의 자서전에는 당시 정황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미국에서 온 시제품을 우리 나라 문교부를 찾아가서 장관 면회 신청을 하였다. 그런데 비서실에서는 뜻밖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타자기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우리 나라 정부가 정식으로 섰으니 더욱 관심 표명을 해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주 딴판이었다. 어이없게도 면회 거절을 당했다. 나는 그 이튿날 다시 가서 면회를 신청했다. 또 거절을 당했다. 간신히 세 번째 면회를 신청하여 장관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나는 훈련된 타자수도 데리고 가서 빠른 속도로 한글을 찍어내는 타자기의 성능을 과시하였다. 장관은 먼 곳에 앉아서 타자수가 재빨리 치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가 "잘 치는군!" 하는 말을 한마디 하였을 뿐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안내 직원은 다 끝났으니 어서 나가라는 독촉이었다. 장관은 가까이 와서 한글이 어떻게 찍히는가를 보지도 아니하였다. 나는 기가 막혔다. ..."

참 잘 되가는 나라 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해 북한군의 쾌속 진격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개박살이 나다시피 했다.

헌데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공병우 한글 타자기의 가치는 새롭게 발견되었다.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 공병우 한글 타자기를 해병대 군수품으로 보급시켰고, 얼마 가지 않아 많은 타자수들이 전쟁터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빠른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하는 군대에서 공병우 타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공병우 세벌식 한글 타자기는 널리 보급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썬글래스 대통령 시절, 우리들의 빛나는 과학기술처는 돌연 네벌식을 표준 자판으로 제정한다. 과학과 기술을 외면하고, 실전에서 쌓은 빛나는 업적도 무시한, 완벽한 무식함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랴. 우리들의 빛나는 대머리 대통령 시절에는 자판 표준이 두벌식으로 변경되었다. 이게 얼마나 졸속으로 결정된 것인지는 kant의 컬럼 '내가 생각하는 세벌식 자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쨌건 참 잘 되가는 나라 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참다 못한 사람들이 뒤집어 엎어 버렸다. 이후로 일사천리로 민주화가 이뤄져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이제는 참여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가와 공무원의 한심한 작태는 변함이 없다. 국가 표준은 여전히 2벌식이고, 3벌식이 복수 표준으로나마 채택될 가능성은 없어 뵌다. 결과적으로 한글 기계화 기술 개발에 앞장선 공병우 박사님의 수십년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나, 둘, 셋, 합쳐서 결론.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문화를 가꾸려면 힘으로 방패를 삼아야 하고 힘을 키우려면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기네 나라 글자를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입력 가능한 혁신적인 타자기마저 무시하고, 자기네 나라 군대를 키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떠리요.
과연 미국 똘마니 노릇이나 하는 정치가와 공무원들이 기술 발전과 문화 발전을 외면하고 쓸데없는 공염불만 거듭하는 사이, 기술은 뵈지 않고 문화는 간데 없다. 군대라고 오죽하랴. 5년만에 부활한 군사 퍼레이드에서조차 볼거리는 거의 없었으니,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신형 자주포나 미사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죄다 골동품 뿐이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걸핏하면 추락하는 F-4나 F-5가 날아다니고 바다를 바라보니 수십년 된 고철덩이가 떠다니고 육지를 돌아보니 딸랑 소총 하나 믿는 보병만 넘쳐난다.

지금이라도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공병우 타자기가 이룩한 기술 발전의 의미를 돌이켜 생각하고, 국군의 날의 의미도 새롭게 정립해야겠다. 그렇지 못한다면... 참 잘 되가는 나라 꼴이라는 한탄만 되풀하게 되리라.

- DJ.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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