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찍 사진 없는 ABKO K680 적축 미니키보드에 대한, 내맘대로 잡담같은 리뷰입니다.
 편의상 경어는 생략합니다.

<키배열이 잘 나온 사진. 키캡 색깔은 원래 이렇지 않습니다. 제품정보 참조>
abko_k680.jpg
제품정보: http://www.abko.co.kr/shop/product_item.php?ItId=2586311469

 회사에서 우연히 이 키보드를 쓰시는 분을 보고, 바로 구입해서 사용해 보았다.
이 키보드는 레오폴드 FC660M 과 비견할 만한 키보드이다.  청축, 적축 두 종류가 있는데, 아쉽게도 신품으로는 청축만 살 수 있다.  사무실에서 청축을 두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데, 마침 ㅈㄱㄴㄹ에 올라온 적축 블랙키캡 신동품을 구할 수 있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키보드같은데, 앱코 홈페이지에는 벌써 단종상품으로 올라와 있다.  기계식치고는 소비자가도 꽤 저렴하여 가성비가 좋은 키보드인데, 벌써 단종을 시키는 걸까?

 나는 미니키보드 매니아이다.  키보드로는 주로 리눅스 환경에서 코딩을 하고, 에디터는 거의 VI 만 사용하며, VI 사용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작업할 때 손목이 이동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당연히 마우스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미니키보드 사용자 중엔 이런 사람이 많다.  펑션키는 그닥 필요없고 - 심지어 창닫기도 alt-f4 대신 ctrl-w 를 사용한다.  VS 를 사용하는 개발자라면 좀 힘들 것이다 - 손의 동선을 최소화하려는 사람들.

 이런 경우 보통은 끝판왕 해피해킹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 나도 해피해킹 라이트2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가끔 사용한다 - 해피해킹의 가장 큰 단점은 당연히도 방향키가 없다는 것이다.  vi만 사용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일하다보면 워드를 두드릴 때도, 액셀질을 할 때도 가끔은 있지 않은가? 해피 배열에 적응해볼 요량으로, 해피 라이트 2를 달아서 문서나 액셀, PPT 를 만들다 보면,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쥐가 날 것 같다.
 결국 방향키는 그래도 있어야 할 것 같아, 타협한 것이 FC660C 이다.  검은색 구형을 구하여 - 신형과는 터치가 다르다 - 최근 주무기로 사용중인데, 해피만은 못해도 나름 합리적인 배열을 가지고 있다.  조합용 Fn 키 위치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적응하면 그럭저럭 쓸만하고, 결정적으로 Ctrl - CapsLock 스왑 딥 스위치가 있다.  해피의 가장 큰 미덕인 Ctrl 키 위치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FC660C 이전에는 체리 ML4100 을 주로 사용했다.  펑션키까지 달린 이 작은 키보드는 나름 매니아들까지 있을 정도다.  오랫동안 길을 들여야 쓸만해지는 이 키보드의 미덕 중 하나는, PgUp, PgDn 키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누르기 아주 줗은 위치에 있다는 것.
 PgUp, PgDn 키가 왜 중요할까? 여러 작업창을 옮겨가며 텍스트 편집을 반복하는 작업에서, 탭 사이를 오가는 Ctrl+PgUp, Ctrl+PgDn 키는 엄청나게 자주 사용되는 핫키이다.  상대적으로 Home/End 키는 사용빈도가 매우 낮으며, VI를 쓴다면 더더욱 쓸 일이 없다.
 해피해킹은 - 물론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Fn 키를 같이 눌러야 하지만 - PgUp/PgDn 을 비교적 짧은 동선으로 누를 수 있고, FC660C 도 해피만은 못하지만 PgUp/PgDn 을 누르는 두 가지 방법 - Fn+위아래 화살표, Fn+L/. - 을 제공한다.
따라서, 새로 들인 ABKO K680 사용기는, 내가 주력으로 사용한 FC660C 와 ML4100 두 키보드를 기준으로 한 비교기가 될 것 같다.

1. 디자인과 재질
 일단 디자인은 썩 괜찮다.  비키스타일로 키캡까지 올라오는 하우징이 없으며, 높이는 일반 기계식 키보드와 비슷하다.  스위치가 안착되는 하우징 상판은 알루미늄 재질로, 매우 세련되어 보이며 내구성도 튼튼하다.  이 알루미늄 상판이 보강판 역할을 하고 있다.
 PC와의 연결은 키보드에 많이 사용되는 mini USB 단자이며, 매립식으로 되어 있어서 고장 위험이 적어 보인다.
 키보드 높이는 다른 기계식 키보드와 비슷하다. 그냥 쓰긴 좀 불편하고, 손목받침대와 같이 쓰는 것이 좋다.
 키캡은 카일/체리축용 이중사출 ABS 이며, 스위치에 LED백라이트가 달려 있어서 글자를 비추어 준다.  사출 상태는 깔끔한 편인데, 개인적으로 숫자/기호 글꼴의 시인성이 떨어진다.  어차피 보고 치는 건 아니긴 하지만, 맥북같이 좀더 세련되고 예쁜 글꼴이면 더 좋을 것 같다.
 Fn키와 조합되는 키 중 일부는 측면에 가느다란 글꼴로 조합키가 쓰여 있다.  이상하게도, Fn키와 조합하여 입력하는 키들 중 백라이트 조절키(방향키) 와 펑션키(F1~F12, 숫자키) 는 키캡 상단에 적혀 있는데, 다른 Fn조합 키들은 측면에 써 놓았다.  일관성이 없는 점이 좀 아쉽다.
 WASD, 방향키는 푸른색 백라이트, 나머지는 흰색 백라이트이다.  방향키는 몰라도 WASD까지 푸른색인 것은 내가 보기엔 촌스러워 보인다.  백라이트 밝기는 Fn+방향키로 10단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심장뛰는 효과(일정 간격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효과)도 줄 수 있다.
 악세사리로 하늘색 WASD, 방향키 키캡 8개를 주는데, 이 키캡들이 빡빡해서 한번 끼우면 빼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잘못 뽑으면 스위치가 부서진다고.

2. 키감
 카일 적축은 체리 MX 적축보다 키압이 강하다는 평이 많다.  나는 처음 써 보는데, 내가 느끼기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 무접점 방식보다는 조금 강하고, 체리 ML스위치보다는 약하다.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빼면, K키 같은 것은 무의식적으로 눌릴 만큼 가벼운 스위치이다.
 ABS 특유의 가벼운 키캡 울림은 다른 ABS 키캡과 비슷하다.  원한다면 다른 체리/카일 호환키캡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 가격에 스태빌라이저가 체리식이다!  철사가 아니라, 양쪽에 스위치 모양 스태빌라이저가 모든 긴 키에 들어 있다.
 비키 스타일인데다 ABS 키캡이다보니 스위치 바닥 치는 소음은 제법 나는 편이다. 몇몇 키들은 키가 위로 돌아올 때 스프링 소리가 작게 난다. 기계식이니 그정도는 감안할 만하다.

3. 키 배열
 미니키보드를 쓰는 결정적인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키 배열.  조금 쳐본 결론은,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키보드라는 것.
 일단 FC660C 와 비슷한 장점이 2가지 있다.  Ctrl <-> CapsLock 스왑이 가능한 딥 스위치가 있다는 점과, 설명서에는 잘못 나와 있는데 Shift+ESC 로 ~, Fn+ESC 로 ` 를 입력할 수 있다는 점(기본값을 ESC 대신 ` 로 바꿀 수도 있다)이다.  이 두 가지는 매우 큰 장점으로, 쓰다보면 매우 편리하다!  보통 키보드를 쓰는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쓸 수 있으니까.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K680 키 배열의 가장 큰 단점은, PgUp/PgDn 키를 별도 키로 빼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키들이 풀사이즈 키보드의 위치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텐키레스마저 거들떠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짧은 손가락으로 ESC 키와 PgUp/PgDn 키를 누르려면 손목이 크게 이동해야 하기 때문인데, K680은 미니키보드인데도 불구하고 PgUp/PgDn 키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차라리 Fn 조합키라도 대안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잘 안 쓰는 HOME/END 는 Fn조합키가 있는데 PgUp/PgDn 은 별도키가 있어서 그런지 아예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FC660C처럼 Fn+방향키로라도 PgUp/PgDn/Home/End 를 지원해주면 어떨까 싶지만...  아쉽게도 K680의 Fn+방향키는 그 직관적인 메타포(상하좌우)와는 별 상관없이, 생뚱맞게 잘 쓰지도 않는 키보드 백라이트 조절로 할당되어 있다. (Fn키가 방향키와 떨어져 있어서, 이마저도 불편하다)
 미니키보드는 필연적으로 Fn키 조합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주 쓰는 키를 좀더 편리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한데, K680 은 미니키보드답지 않은 PgUp/PgDn 키 위치가 큰 단점이다. 이게 개선된다면 FC660M에 비견할 만한 좋은 키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4. 결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긴 하지만, 기계식에 꽤나 세련된 비키스타일 디자인, CapsLock-Ctrl 스왑 기능 등, 이 가격대에서 보기 어려운 좋은 장점들을 가진 매우 괜찮은 키보드이다.  게이머용으로 만든 디자인 같지만, PgUp/PgDn 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텐키레스에 익숙하다면) 개발자나 작가용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내가 이 키보드 디자이너라면, 다음 모델은 좀더 미니키보드답게 개선을 하고 싶다.  먼저 기존 하드웨어 변경 없이 가능한 개선들:
   - Fn+J/M 을 PgUp/PgDn 으로, Fn+K/, 를 Home/End 로 할당(현재 할당된 Home/End는 Fn을 엄지로 누르는 포지션인데, 눈으로 키보드를 봐야만 손을 옮길 수 있다).  이것으로 오른손의 동선이 확 줄어든다. 기존 단축키는 다른 곳으로 이동.
   - 2번과 3번 딥스위치를 모두 켜면, 'Win키를 또다른 Fn키로 변경' 기능으로 수정.  Fn 키가 오른쪽에만 있으면, F6~F12 펑션키를 오른손만으로 누를 때 손모양이 매우 이상해진다.
 하드웨어 변경이 필요한 개선:
   - 방향키를 최대한 왼쪽으로 붙인다.
   - 엔터키 바로 오른쪽, 방항up키 바로 위에 PgDn, 그 위에 PgUp, 그 위에 Del. 자주 안 쓰이는 Ins 키는 Fn+Del 로 커버.
   - WASD 키 백라이트는 그냥 흰색이 나을 듯.

미니키보드 좋아하시는 분은 기회되시면 한번쯤 써보실 만한 키보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 잡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eopold FC660C low noise ver.

HHKB Lite 2

Cherry ML4100

BTC 6100

Apple Wireless Key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