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의 키보드들

필자는 1971년에 최초로 타자를 배운 이후에 약 3년 정도의 휴지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키보드를 만져 왔기 때문에 키보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1976년까지는 수동 타자기를 주로 만져 왔기 때문에 이의 터취라든가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수동 타자기로는 애들러(Adler), 올리베티의 전신인 언더우드, 올리베티, 허미스(Hermes), 스미스 코로나, 브라더, 시티즌 등 다양한 수동 타자기들을 다뤄 봤다. 제일 먼저 구입했던 것은 올리베티의 스튜디오 46이란 기종이었다. 이것은 알루미늄 바디(body)이되, 데스크탑용처럼 육중한 것이 아니고, 반 포터블에 해당하는 것이며, 비교적 납작한 형태의 것이었다(컴퓨터로 치면 예전에 나왔던 오스본 컴퓨터 정도의 포터빌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좋으리라). 이것은 터취가 매우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먹지를 대고 타자해야 하는 경우 복사본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하지만 데스크 탑용들은 너무 키가 무거워서 필자는 그것으로는 타자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은 무려 10매 정도의 먹지를 대고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위에서 열거한 모델들 중에서는 일본제인 브라더의 포터블형이 매우 터취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은 키가 눌리는 길이가 짧아서 매우 빠르게 타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며, 키를 누르는 힘도 적게 들었고, 또 타자를 하고 나면 그 세그먼트가 튀어 오르는 것처럼 약간의 반발력이 느껴졌기 때문에 항상 손가락에 적당한 긴장이 느껴졌고, 그런 이유로 머리끝을 쭈삣 세운 채로(?) 타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독제 타자기로서 예쁜 금발 게르만(German) 여자의 이름을 가진 "에리카"란 것과 바꿨다(에리카는 동일한 모델을 VGA 카드나 헤이즈의 보급형 9600bps 모뎀과 같은 이름인 "옵티마"란 이름으로도 판매했었다).

브라더와 에리카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에리카는 타자하는데 매우 힘이 많이 들었으며, 키를 깊이 눌러야만 했다. 결국 모든 면에서 유리한 브라더를 포기한 것은 변덕 때문이었다. 터취를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얄상하게 생긴 일제보다는 뭔가 듬직한 독일제(처음엔 그게 동독제인줄 몰랐다)가 좋아 보였던 까닭도 있었다. 이것은 영문을 타자하는데 쓰고, 올리베티 타자기는 네벌식 표준(?) 한글 자판으로 개조하였다. 올리베티 타자기는 지나치게 키 터취가 가벼웠고, 알루미늄 바디임에도 불구하고 글자가 쳐지는 순간에 키가 탕탕 튀는 가벼운 느낌까지 있었다.

1978년도에 시티즌 사의 전동 타자기를 가지게 됨에 따라서 키보드에 대한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깊이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면에서 전의 수동 타자기들과 차이가 있었고, 약간만 힘이 가해지면 강한 힘으로 원치도 않는 글자가 쳐지는 바람에 애로가 있었다. 재깍거리며 키가 눌려지면 타자가 되는데 전의 수동 타자기는 어느 정도 깊이로, 어느 만큼의 힘으로 누르면 타자가 되는지 알 수 있었고, 그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일할 수 있었으나 전동 타자기는 키를 누르는 순간에 타자가 되기 때문에 타이핑의 페이스(pace)를 잃는 것도 어려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키에 숙달이 됨에 따라서 수동 타자기는 전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현재의 컴퓨터 키보드보다는 약간 깊숙이 눌러야만 키가 눌려지는 것이었고, 택타일 방식이었다. 게다가 키 스위치는 키 캡(key cap)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렛대처럼 만들어진 키를 누르면 다른 곳에 있는 키가 눌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셀렉트릭 타입의 IBM 타자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타자기의 키보드가 주는 느낌은 다른 전동 타자기와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그 중요한 이유는 키 캡의 바로 밑에 키 스위치가 부착되어 있는 때문이었다. 이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비로소 키보드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최고봉은 아니었다. 이 키보드는 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IBM 사가 "워드 프로세싱"이란 말을 만들어 최초로 사용하게 만든 바로 그 기종인 IBM의 메모리 타자기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이 택타일 방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아주 완벽한 택타일 방식이었다. 하기사 이 방식을 세상에 소개한 바로 그 기종이 메모리 타자기었으며, 그것이 세상에 최초로 나타난 전용 워드 프로세서였던 것이니......

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 메커니즘의 장점과 첵 섬(check sum) 에러

"택타일"이라는 용어는 "촉각의, 감촉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방식은 키보드를 누를 때 째깍째깍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의 감촉이 손가락에 느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마치 조그마한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는 키 캡 밑에 달린 스위치를 "On, Off" 시키는 것이다. 이런 키보드는 비교적 단단한 촉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이를 사용해도 피로감이 덜 느껴진다. 더욱이 이 키보드는 소위 스컬프츄어드(sculptured)형이어서 배열된 키보드 각 층의 각도가 약간씩 달라져서 보다 타이핑에 용이하고 오타를 방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비교적 단단한 촉감을 가진 키보드를 연속적으로 누르다 보면 이의 적당한 촉감을 찾게 되고, 이런 촉감은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항상 손목에 적당한 긴장감을 가져다줌으로써 역시 오타를 방지하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오타를 없애는 일에 관한 한 이 오디오 택타일 방식은 매우 도움이 된다. 어떤 원고를 청서(靑書)하기 위하여 타이핑을 할 때 이 속도가 1분당 50자로부터 150자 정도 되는 형편없는 실력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의 두 배 가까운 속도로 이를 두드리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한 글자를 건너뛰어 버리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사람의 귀는 매우 놀라운 역할을 한다. 즉, 아홉 개의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고, 눈은 원고에 쓰인 각 단어들의 철자를 본다. 그런데 이 때 사람들은 철자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이 철자의 수를 헤아리고, 이의 숫자를 인간의 중앙처리장치인 두뇌의 임시 기억장치에 저장시킨다. 그리고 키보드에서 들려 오는 째깍대는 소리의 숫자는 귀라는 감지 장치를 통하여 두뇌에 도달하게 되며, 이 째깍대는 소리의 숫자는 미리 기억된 철자의 숫자와 비교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비교된 숫자가 많거나 적거나 하는 차이가 나게 되면 타자 상의 실수(typing error)가 생겼다는 -- 확연한 느낌이 아닌 --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게 되고 컴퓨터의 화면이나, 타자기의 인쇄 용지를 보게 되면 아니나 다를까 실수가 발생하여 있는 것이다. 컴퓨터 통신을 하면서 알게 되는 패리티 비트(parity bit)라든가, 첵 섬 에러 등과 이를 연관시켜 보자. 이 건 손가락의 움직임과 두뇌가 함께 통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로서, 컴퓨터 통신 이전의 통신 상황이며, 두 가지는 완전히 같은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위의 장점 때문에 많은 컴퓨터들이 이러한, 비교적 역사가 오랜, 키보드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IBM 메모리 타자기식의 기계식(기계적인 접촉식)을 채택하지 않고, 묵음 타입의 키보드를 채택하고 있는 기종일지라도 스피커를 이용하여 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달게 된 것이다.

가끔 성질이 못된 사람들은(좋게 말해서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택타일 방식의 키보드에서 들려 오는 째깍대는 소리를 못 견뎌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콘덴서 타입의 키보드가 적격이다. 콘덴서 타입의 키보드는 이를 누를 때 거의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은 택타일과는 달리 스위치가 직접적으로 접촉되지 않아도 이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말로써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하나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즉, 이것은 코일을 둥글게 말아서 그 가운데로 자석을 넣었다 뺐다 하면 전기가 발생되는 것과 비슷하게 키보드를 눌렀다 뗐다 하여 그 밑에 장치된 콘덴서의 용량의 변화가 생기고 이로써 스위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원래 콘덴서라는 것은 양극이 직접 닿지는 않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원리를 이러한 키보드는 거의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가 나지 않는 묵음(silent type)의 키보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키보드는 대부분 스피커를 통한 소리 발생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가 성가시게 느껴지면 이를 끌 수 있는 장치를 함께 가지고 있다.

지금은 기계식 스위치를 부착한 키보드가 승리한 시대이다. 전에는 실리콘 패드(silicone pad)가 밑에 달린 키보드도 있었다. 이 키보드는 스프링 대신에 키 캡 밑에 고무질의 판을 깔고 있는데, 키 캡 바로 밑에 실리콘이 살짝 튀어 올라와 있다. 그리고 이 튀어 오른 실리콘 판의 바닥 바로 아래에 키 스위치를 연결하여 주는 동그란 판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키 캡에 힘이 가해지면 이것이 부드럽게 내려가면서 스위치를 연결시켜 주는 방식이다. 이것을 칠 때는 스프링을 사용하는 기계식 키보드에 비하여 가벼운 터취로써 빠르게 타자할 수 있으며, 키보드에서 나는 소리도 비교적 작은 편이다. 그러나 이의 키 캡을 누르면 그 충격이 고무질의 패드에서 죽어 버리므로 매우 탁한, "생명력이 없는 소리"가 나게 된다. 매력 없는 키보드인 것이다.
이 키보드는 만들기 편하면서도 재료 공학적인 면에서는 수월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쉽게 모울드를 떠서 한 번엔 키 스위치가 담긴 판을 만들 수 있으되, 균일한 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실리콘 탄성이 죽지 않는 제품, 실리콘의 피로도가 적은 제품을 만들기 어려운 까닭이다.

멤브레인(membrane) 키보드는 이보다 더 매력이 없는 것이다. 이 멤브레인이라는 것은 얇은 막을 의미한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컴퓨터 키보드 모양이 인쇄된 얇지만 극히 질긴 폴리에스터를 사용하여 각 키 캡 밑에 극히 정교한 스위치를 설치하고, 이 플라스틱 막에 인쇄된 글자를 누르면 그 글자가 입력되는 것이다(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든 휴대용 계산기는 매우 흔하다). 이를 통하여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매우 큰 고역을 치르기 마련이다. 이들 다른 방식의 키보드를 생각해 보면 왜 기계식/택타일 타입의 키보드가 PC에 채택되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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