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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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내의 아내가 눈을 떴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녀는 결코 중독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보통 중독은 중독자 또는 발병자와 일반인 사이의 적극적인 체액교환에 의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득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진하게 입맞춤하던 광경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중독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왜.
 모르겠습니다. 설마, 저 사내에게 자신의 살을 뜯어 먹힐 때까지 그녀의 목숨이 붙어 있었던 걸까요. 아니, 그럴 리 없습니다. 그녀가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피를 쏟는 광경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는 상처였습니다. 게다가 사내가 그녀의 살을 먹은 건 그로부터 거의 사흘의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찌 되었건 그녀가 발병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허벅지 아래 쪽으로는 자신의 남편에게 죄다 뜯어 먹힌 터라,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가만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그녀의 멍한 시선은 남편을 향해 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텅 빈 시선으로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민의 시선일까요. 아니면 원망의 시선일까요. 그녀의 모습이 처연해 보이면서도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그녀는 겨우 사흘 만에 발병자가 되어 이렇게…….
 '사흘 만에?'
 갑자기 오싹 소름이 돋습니다. 어리석게도 깜빡 잊고 있었던 겁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잠복기는 평균 사흘. 저 여자가 사흘 만에 발병자가 되었다면 당신도 이제…….
 '확인 해야 해.'
 무섭습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릴 정도로 무섭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당신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망설일 때가 아닙니다. 확인해야 합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립니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확인해야 합니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당신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눈을 조금씩 크게 떠 봅니다. 죽은 듯이 잠이 들어 있는 당신. 표정에는 고통의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옵니다. 그것도 잠시.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야. 이건.'
 왠지 모를 이질감.
 '모르겠어? 이건 마치…….'
 순간, 발병하기 전의 사내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당신의 모습 위로 사내의 실루엣이 묘하게 겹쳐지는 듯한 느낌. 급하게 당신의 코에 귀를 대어 봅니다. 아, 숨소리가, 숨소리가 들리지를 않습니다. 동시에 가슴 속 깊이, 마지막 희망을 매듭지어 두었던 한 가닥의 팽팽한 실이 탁 끊어지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발병 직전의 일시적인 가사상태. 이미 늦은 것입니다. 망설이다, 한낱 두려움에 머뭇거리다 끝내 당신을 놓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괴감. 머리 속의 모든 사고가 멈춰버립니다. 마음의 어둠이 무너져버린 희망의 잔해 위로 짙은 그늘을 드리웁니다. 아, 나를 용서하지 마세요.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듯 당신의 가슴에 내 얼굴을 천천히 파묻습니다. 나를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입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제 끝난 건가요.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요. 신음은 곧 흐느낌으로 바뀝니다. 정말로 모든 게 끝나버린 건가요. 숨죽여 울었습니다. 당신의 가슴팍이 내 눈물로 흥건해질 때까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수연아."
 갑자기 당신이 큰 숨을 내쉬며 내 이름을 부릅니다. 놀라 고개를 들어 당신을 마주 보았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눈을 감은 채입니다. 하지만 나긋나긋한 숨소리가 제 귓불을 간질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이 더듬더듬 내 손을 찾아 꼭 쥐어옵니다. 아직 내겐 마지막 기회가 남은 것입니다.
 '아, 다행이다.'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뻐서,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뻐서 또 다시 울음이 터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요. 저 여기 있어요."
 이번에는 숨죽여 우는 흐느낌이 아닙니다. 목놓아 웁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큰 소리를 내며 울어 버립니다. 창 밖의 사내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웁니다. 울고 또 웁니다.

 

 

***

 

 

 그녀와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의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습니다. 커피잔의 김이 수그러든 지도 한참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그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저 굳은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위압적인 분위기로 자신의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뭐, 예전부터도 그녀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 그녀의 의중을 도무지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온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분노와 적개심.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말려들게 되면……. 그 뒤부터는 그녀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녀는 천천히 상대를 요리하고, 맛보고, 즐기다가, 지치면 내팽개쳐 버리겠지요. 그녀는 이처럼 세련된 방식으로 오랫동안 그녀의 적들과 싸워왔고, 항상 승리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한 그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충분히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판단했는지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엽니다.
 "헤어져."
 그녀를 잠시 일별하고는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립니다.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십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한 번을 마주친 적이 없으니 대략 3년만일까요. 오전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다지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올게 왔구나, 정도의 생각만을 잠시 했을 뿐입니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그저 담담한 내 자신이 오히려 더욱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문득 거리 위를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옵니다. 다들 나름의 사연과 슬픔,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간직한 채 저리도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내가 그들의 사연에 대해 알 게 무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나에 대해 알아야 할게 무어가 있겠습니까. 나는 굳이 그녀를 납득시킬 자신도 의지도 없습니다. 나의 침묵이 길어지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헤어지라구."
 굳이 그녀 쪽을 보지 않아도 그녀의 지금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당장이라도 싹싹 빌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야, 라는 분위기의 눈빛으로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겠지요. 상관없습니다.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나한테 복수하고 싶겠지. 하지만 우습지 않아? 기껏 철없던 시절 유치한 장난질에 앙심을 품고 하는 짓이라는 게 간통이라니."
 유독 간통이라는 단어에 잔뜩 힘을 주어 말을 합니다. 굳이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있습니다.
 "……."
 "뭐, 예전 일, 너에게 나름 채무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 니가 앙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
 "이런 식이면 도가 지나친 거 아냐?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더 이상은 가만두지 않겠어. 그게 아빠를 다치게 한다고 해도."
 "그 분."
 순간 조금 울컥했나 봅니다.
 "……그분, 건드리지 마."
 그녀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잘라 말합니다. 잠깐의 정적.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녀를 슬쩍 훔쳐봅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눈에서는 불꽃이 튀는 듯 합니다. 하지만 용케도 거기까지, 필요 이상의 추태를 부리지는 않습니다. 그녀도 이제는 제법 어른 티가 난다고 해야 할까요. 의외의 모습에 조금 감탄을 하고 맙니다.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고 말을 잇습니다.
 "복수 같은 게 아냐. 나는 절대, 복수가 아냐."
 그녀의 표정에서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으며 그 밑바닥에 감추어져 있던 경멸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녀는 지금 자신의 일부분이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나 때문에 말입니다. 일말의 가책에 그녀를 마주보기가 죄스러워집니다. 나도 모르게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맙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 그리고 그 분도……"
 그녀의 눈에는 내가 그저 괴물로 보이겠지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이해시킬 자신은 없으니, 그저 괴물로 남는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소름 끼쳐."
 너무나 차갑고 칼끝처럼 날카로운 한 마디.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의 오싹한 공포가 팔뚝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까지 섬뜩하게 할퀴고 지나갑니다.
 "껍데기가 사람이라고 그게 다 사람인 줄 알아?"
 "……."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대가를 치러."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맙니다. 내 바보 같은 모습을 본 그녀의 코웃음 소리가 들린 듯도 합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이 할 수 없던 말, 나를 통해서라도 전할 수만 있다면 과연 기뻐하실까. 마지막 용기를 짜내 그녀를 불러 세웁니다.
 "저기."
 그녀가 멈춰 서서 나를 노려봅니다. 마음 굳게 먹고 입을 엽니다.
 "그, 그분은 최선을 다하셨는데."
 의아한 시선.
 "그런데 그렇게까지……. 그때 배신감이 크셨다고……. 사모님은 몰라도 너까지 그럴 줄은 모르셨다고……."
 "하!"
 그녀가 팔짱을 끼더니 헛웃음을 터뜨립니다.
 "네 아버지는 다, 그러니까 사모님도 너도 다 용서하실 수 있대. 그러니까……."
 그러니 우리를 내버려두고 네 갈 길을 가면 안되냐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뜨악한 표정. 어이없음과 조롱이 섞인 비웃음. 이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챕니다. 내가 힘겹게 꺼낸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상대방의 마음에 가 닿지를 못하고 허공에서 재처럼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나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나의 진실이 그녀의 진실인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가슴에 싸하게 아파왔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하며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그날의 배신감, 당신이 말한 그날의 상처, 그리고 그 뒤로 길게 이어져왔던 당신의 고통과 상실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신기루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는데. 참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잘 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갑자기 내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입을 다물자,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는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나와 이름이 똑같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나의 옛 고등학교 동창은 그렇게 창 밖의 행인들에 섞여 사라집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나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시간이 한참 모자란 탓이었습니다. 세상이 뒤집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녀와 나의 유쾌하지 않은 만남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송두리째 뒤집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6.

 

 

 어둠이 조금씩 뒷걸음질치며 물러가고 있습니다. 먹빛 같던 도시의 윤곽이 서서히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아마 당신의 마지막 단잠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당신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당신의 숨소리는 여전히 고르고 심장의 고동소리 또한 힘차고 규칙적입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살릴 기회가 있습니다.
 당신을 봅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수많은 추억들이 밀물처럼 가슴을 채웠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가슴이 저밉니다. 천천히 당신에게 몸을 숙입니다. 진한 입맞춤을 합니다. 뭐랄까. 타는 듯한 고무의 맛이 느껴지는 입맞춤입니다. 당신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하지만 아랑곳 않고 당신에게 계속 입을 맞춥니다. 어쩔 때는 입안으로 쌉쌀하면서도 걸쭉한 액체가 잔뜩 넘어오기도 합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냥 삼켜버리면 그만입니다.
 창 밖의 여자는 여전히 자신의 남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 또한 여전히 창에 코를 박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가여워라. 저 두 사람, 이제부터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 혹시라도 말입니다. 나와 당신도 저들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몸이 썩어 들어가는 흉측한 몰골이 되더라도 서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요. 이제는 저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저리도 절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리도 집요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들을 보세요, 생김새부터, 사람과 같지 않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하는 양 또한 사람답지 않다 잘라 말할 근거, 어디 있습니까. 저들의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다고, 저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저들이 우리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고, 저들이 그저 흉측하게 생겼다고 저들을 괴물 취급한다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내 말에 고개를 젓고 싶으시다면……. 나를 보세요. 당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준 적이 없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적 또한 없는 천덕꾸러기였던 나를 보세요. 그렇다면 내가, 저들과 별 다를 것도 없는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그러니 우리도 저들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전히 나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 그냥 포기해 버리면 안될까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그냥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당신만,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 아닙니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면, 당신은 나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테지요. 물론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그러니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잠시나마 이기적이었던 나를, 나를 용서하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당신은 피로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고개를 내젓자 당신은 푹, 하고 한숨을 내쉴 뿐입니다.
 "그 아이를 두 번이나 내칠 수는 없어. 용서해라."
 당신은 내 팔을 뿌리치고는 성큼성큼 걸어 갔습니다. 당신이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내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마 전 새로 구입한 은색의 고급 세단의 열쇠입니다. 처음 차를 양도받던 날, 당신은 내게 신혼여행 대신에 전국일주를 하자며 어린 아이처럼 들뜨곤 했었는데…….
 하지만 전국일주의 계획을 잡기도 전에 세상이 송두리째 뒤집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변종바이러스의 창궐이라고 했습니다. 혹자는 테러리스트에 의한 생화학공격이라고도 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전국의 사분지 삼이 이미 초토화가 되었다는 것, 시체 아닌 시체들로 뒤덮여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공포의 땅이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모두들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세계의 멸망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신과 나의 보금자리가 있는 도시는 아슬아슬하게 재해지역에서 비껴갔습니다. 현재는 도시 자체를 군부대가 철저히 에워싼 채 외부로부터의 위험원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덕택에 우리의 도시는 전기, 통신, 상하수도, 치안시스템 등등의 도시의 기간망의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안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아내와 따님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살게 된 것은 우리의 운이고, 그들이 죽게 된 것은 그들의 불운일 뿐이니까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실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어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자책했습니다. 괴로워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나조차도 당신의 고통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나 때문에 당신의 상처가 덧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당신은 항상 취해 있었습니다.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술이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끔 당신이 맨 정신으로 날 대할 때에는 왠지 모를 후회의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나는 조마조마했습니다. 당신이 언젠가는 나를 보고도 숨막혀 할 것 같아, 내 곁을 떠나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을 구할 아무런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우리는 TV를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카메라는 폐허로 변한 당신의 옛 동네의 모습을 건조하게 훑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상처를 후벼 팔까, 당장이라도 TV의 전원을 내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당신의 심기를 그르칠까 두려워 그리하지를 못했습니다. 실수였습니다. 멍한 시선으로 화면을 좇던 당신의 눈이 어느 순간부터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래도 불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딸아이가 아직 거기에 있어."
 TV의 리모컨을 팽개치며 내게 처음으로 했던 말입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요."
 만류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카메라에 당신의 옛 집이 비추어졌을 때, 그리고 집의 2층 창문에 붙어 있는 S.O.S라는 투박하지만 큼직한 글씨가 클로즈업 되었을 때 혹시라도 당신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모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우리의 은색 고급 세단의 운전석에 올라타며 나를 잠시 일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작별인사를 하려는 모양인가 봅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지금 떠나면 당신은 두 번 다시 내게로 돌아오지 않으시겠지요.
 '안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차 앞을 가로막아 섭니다. 당신이 눈매를 찌푸립니다. 이럴 때의 당신은 어찌나 당신의 따님을 떠올리게 하는지.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절대 안돼.'
 운전석 쪽으로 다가섭니다. 문을 열고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내 도발이 당신을 화나게 했나 봅니다. 당신의 질책하는 듯한 시선이 따갑습니다. 상관 없습니다.
 "같이 가요. 우리."
 질책의 시선이 당혹스러움으로 바뀝니다.
 "수연아……."
 "아직 취하셨어요. 운전은 무리에요."

 

 

7.

 

 

 심호흡을 합니다. 이미 결심은 섰습니다. 창 밖을 살핍니다. 여전히 여자는 사내를, 사내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죽어있던 경비업체 직원 둘의 시신도 조금 전부터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여운 사람들. 조만간 이곳으로 군인들이 들이닥치겠지요. 저들은 살해될 겁니다. 그리고 살인자들은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을 겁니다. 사람을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사람을 구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렇게 사라지고 잊혀질 겁니다. 과연 저들은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요. 아니, 원망이나마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가여운 사람들.
 '난 그리 되지 않을 거야.'
 다시 심호흡을 합니다.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려보며 나름 전략을 세워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해독제. 그리고 사내에게 빼앗겼던 자동차 열쇠까지 회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지금 사내의 손에는 열쇠가 들려있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흘린 게 분명한데……. 확보하기가 꽤나 까다로울 듯싶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아마……. 나는 무사하기 힘들 겁니다.
 내 몸이 어찌 되는 건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잊게 되는 건 견딜 수 없습니다. 나를 원망하게 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을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잊혀질 거고 누군가의 원수로만 남게 될 겁니다. 나는 창 밖의 저들과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버릴 겁니다. 때문에 나는 당신을 반드시 구할 겁니다.
 '그리고 절대 저 가여운 사람들처럼 잊혀지지 않을 거야.'
 문득 당신의 따님에게로 생각이 미칩니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그녀와 나를 구분하기 위해 그녀를 큰 수연이라고, 나를 작은 수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체검사 때 나온 공식적인 신장은 그녀나 나나 별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큰 수연이었고 나는 작은 수연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녀는 커 보였고 나는 작아 보였습니다. 희한하게도 졸업앨범의 단체사진에서마저 그녀는 나보다 훨씬 크고 늘씬해 보였습니다.
 '그래, 나는 작은 수연이.'
 적어도 지금, 나의 이름이 그녀와 똑같다는 사실이 마치 축복처럼 여겨집니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당신은 그녀를 통해서 나를 기억하게 될 테니까요. 뭐,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눈을 감고 한 번 더 심호흡을 합니다. 힘차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당신, 나를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 끝 -

 

왼 손에는 커피 오른 손에는 마우스.

키보드는 그냥 눈으로 즐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