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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충일, 친구의 알선 덕에 중고(로운 평화)나라에서 IBM Model M을 구했습니다. 첫 중고거래여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단단히 준비해서 갔습니다. 다행히 좋은 물건을 무사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키보드는 제 책상에 올라와, 1년 동안 여전한 키감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키보드는 저와 나이가 같고, 생일도 거의 비슷합니다. 제가 다루는 물건 중 저와 나이가 같은 물건은 이 키보드 뿐입니다. 게다가 이 키보드는 한글 각인이 있습니다. 또렷한 한글 각인은 어렸을 때 보던 키보드를 연상케 합니다. 저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그러나 아직도 젊은 친구와 함께 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키보드를 앞에 두고 바람을 피웠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모델 M의 최고봉은 메탈라벨이라기에 메탈라벨을 이베이에서 들였는데, 고장난 물건이 온 바람에 반품한 적이 있습니다. 이 외에 유니콤프나 후기 모델 M을 들이려 하기도 했지만, 유니콤프는 들이지 못했고 후기 모델 M은 키감이 푸석거려 장롱 신세입니다. 다른 종류의 M 앞에서도 이 모델 M은 똑부러지는 키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 후 다른 M에 바람을 피운 걸 인정하고, 지금의 키보드를 만족하며 쓰고 있습니다.


(책상 아래엔 하이프로도 있지만 모델엠과는 다른 성격의 물건이니 넘어갑니다)


요즘은 세대가 세대라 그런지 버클링 인지도도 낮고, 공론화도 잘 안 되는 것 같아 다소 아쉽습니다. 하지만 모델 M은 오늘날 키보드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늘날 키보드가 따라올 수 없는 개성을 지닌 키보드라고 생각합니다. 사반세기를 살아온 청춘 키보드로서 말이지요.


이 키보드와 함께 한 1년 동안 타이핑이 참 재밌었습니다. 앞으로도 희로애락을 이 친구와 함께 나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