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미국에 갈 일이 생겨서 컴퓨터 매장을 몇 군데 들렀는데 원래 살던 곳과는 다르게 미국은 역시 타건샵을 쉽게 찾을 수가 있네요. 


다만 여기도 텐키리스 저소음 수요가 많지는 않은지 저소음 적축을 사용한 텐키리스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풀배열은 몇 종류 있길래 타건은 해볼 수 있었는데, 저소음 적축의 키감이 특별히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메모리폼을 누르는 듯한 저항감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계식 하면 떠오르는 그런 타건감하고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구름타법을 숙지하고 있다면 끝까지 안 눌러도 될테니 별 문제 없을것 같은데, 멤브만 팡!팡! 두들겨온 저에게는 먼 나라 얘기.  


하지만 사실 키감따윈 전혀 안따지는 제가 굳이 못 쓸 이유도 없고, 일단 소음 하나만은 정말 멤브보다도 더 작더라고요. 헌데 사정상 매장에서 당장 살 수 없다면 딱히 의미가 없는지라.. 인터넷 주문 해도 되지만 이왕 찾아간 김에 웬만하면 현장에서 사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축들도 몇 개 만져봤는데, 멤브만 썼던 키알못인 제게는 청축과 저적 이외의 축들은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졌고, 청축만 빼면 키 자체의 소음은 멤브레인과 비교해 의외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생각치도 못한 부분이었던 바닥을 때리는 데에서 나오는 소음이 꽤 되더라고요. 아마 멤브때문에 생긴 습관이겠죠. 각종 축을 만져보면서도 구분을 못하는 것도 멤브의 입력방식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테고요. 하여튼 이 부분도 구름타법을 연습하든지 뭔가 키보드 사용 패턴을 바꿔보면 훨씬 나아지겠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며 지금 상태로는 멤브보다 확실히 소음이 크기 때문에 패스를 했습니다. 제가 키보드 사용 패턴을 바꿀 의사가 있었다면 그냥 흔한 싸구려 팬터방식 미니키보드 레이아웃에 적응을 해버렸을 거예요. 그게 훨씬 싸게 먹히니까 말이죠. 하여튼 이걸 통해서 (저적과 청축을 제외한) 기계식 스위치의 소음에 대한 평이 도대체 왜 사람마다 크게 다른가 하는 부분에 대한 해답도 어느정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타건샵에서 실제로 입력을 해볼 수 있다면 또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인데, 제가 가본 곳중에서는 그런 타건샵은 없고 그냥 키보드만 만질 수 있게 돼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저처럼 팡팡 두들기는 것 이외의 입력법을 아예 모르는 키알못에게는 어필할 거리가 많이 줄어드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평은 그저그렇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안으로 생각해뒀던 지프로를 만져봤습니다. 지프로는 마이너 축임에도 불구하고 상품 자체는 흔하게 갖다놨더라고요. 다만 희소한 스위치라 그런지 로머G스위치는 타건 가능한 형태로 진열해둔 제품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포장을 열어서 만져봤는데, 기계식스런 느낌도 그럭저럭 살아있고 (키알못인 제 기준으론 일반 적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음도 멤브레인과 별 차이가 없고, 특히 가격이 착해서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구매를 해왔습니다.


다만 실제로 사용을 해보니 키알못인 제가 느끼기에도 통통거리는 통울림 현상이 조금 있고(앞서 말한 다른 축들의 바닥을 치는 소음과는 전혀 다른 가벼운 음색입니다), 스태빌을 사용한 키감이 일반 키보다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제일 큰 크기의 스페이스바는 괜찮은데, 시프트키랑 엔터키가 살짝 뻣뻣한 느낌을 줍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느낀 것들이 다른 분들의 지프로 리뷰에서도 거의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것들이네요. 여기에 더불어 (소프트웨어로 설정은 가능하겠지만) 기본 LED프로파일이 약간 경박한 느낌이 없지 않네요. 회사에서야 항상 끄고 있을 것이니 저한테는 별 문제 없긴 합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키감 크게 안 따집니다. 통울림은 사용자는 크게 느낄 확률이 높지만 소리 특성상 살짝만 거리가 멀어져도 거의 안 들리는 정도고요. 그 대신, 네모반듯하고 정갈하여 사무용으로 손색없는 디자인을 가진 점,  프레임 자체가 묵직하고 밑판 고무가 크고 넓어 바닥재질에 구애를 거의 받지 않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달러 기준 100불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표준 텐키리스 레이아웃을 멤브와 비슷한 소음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부분은, 제가 지프로를 알게 되고 자료를 조사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대로입니다. 마침 사용하던 마우스도 우연히도 지프로라서 깔맞춤이 되었네요. 


남은 건 이제 이거 하나가지고 또 칠 벗겨질때까지 한 10년 쓰는 겁니다. 얼마전까지 10년 가까이 썼다가 퇴역시킨 멤브 텐키리스처럼..


별 볼일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