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개인용 컴퓨터 업계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8비트 컴퓨터에서 16비트, 32비트를 거쳐 이제는 64비트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플로피 디스크는 아예 없어지기 일보 직전이고 하드 디스크와 CD-ROM 드라이브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이 모든 격변의 와중에서 키보드만은 큰 변화 없이 살아남았다. 기계식 대신 멤브레인 방식이 주류로 자리잡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 겉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별 차이가 없다고 하여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거센 변화의 파도 앞에서 영문 101키는 한글 103키와 영문 103키로, 다시 한글 106키와 109키로, 더 나아가 멀티미디어 키보드로 진화해 나갔다.
이러한 진화의 방향이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필자 같은 경우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에 속하는데, 대체 어떤 점에서 불만을 느끼고 있는지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다.

1. 한/영 키와 한자 변환 키

아래아한글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있어서 한/영 변환 키와 한자 변환 키는 있으나 마나 하다. 더군다나 무협지 작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한자를 쓸 일이라곤 이력서를 만들 때 뿐이다. 이래서야 한자 변환 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2. Print Screen/Scroll Lock/Pause 키

위에 열거한 세 키는 모두 DOS 시절의 유산으로써, 오늘날에 와선 장식품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차라리 F13~F15 펑션키로 바꿔버리는 편이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3. 윈도우 키와 오른쪽 메뉴 키

Windows 95의 등장에 맞춰 키보드에도 한가지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그게 뭔고 하니 윈도우 키와 오른쪽 메뉴 키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키의 활용도는 별반 높지 않다.
왼손으로 윈도우 키와 오른쪽 메뉴 키를 누르느니 오른손에 쥐고 있는 마우스로 윈도우 메뉴와 컨텍스츄얼(Contextual) 메뉴를 불러내는 편이 훨씬 낫다. 윈도우 탐색기(Explorer)에선 윈도우 키를 일부 단축키에 할당했지만, 이마저도 쓸 일은 별로 없다.

4. 창닫기 키와 최소화 키

이 둘은 윈도우 키와 오른쪽 메뉴 키보다 실용성이 떨어지는 동시에 위험하기마저 하다. 프로그램 종료나 다름없는 창닫기 기능을 감히 키보드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신비로움을 넘어서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런 키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가 얼마나 많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넣겠다면 외딴 곳에 배치해야 옳을 것이다. 굳이 스페이스 바 양쪽에 나란히 배치해 자폭을 유도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5. 잠자기/전원/로그오프 키

요즘은 잠자기(하이버네이션), 전원 온/오프, 로그오프 키 등이 달려 있는 키보드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용성하곤 한참 거리가 멀다. 잘못 키를 누르는 바람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랄까.

6. 기타 멀티미디어 키

멀티미디어 키보드랍시고 나온 물건들엔 별의별 펑션 키가 달려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 달려 있는 키를 써먹을 일은 거의 없다. 볼륨 조절 키나 가끔 써먹을까, 나머지 키는 손댈 일이 거의 없다. 스피커하고 LCD를 달아주면 모를까, 이렇게 쓸데없는 걸 주렁주렁 달아놓고 멀티미디어 키보드라고 주장하는 건 사기에 가깝다.

7. 고휘도 LED

몇 해 전부터 불어닥친 튜닝 열풍 때문일까, Scroll Lock, Num Lock, Caps Lock LED에 고휘도 LED를 채택한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고휘도 LED는 지나치게 밝은지라 눈에 거슬리기 일쑤다. 이런걸 보고 과유불급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필자의 ‘개인적인 불만’일 뿐이다. 키보드의 키 개수가 늘어나고 기능이 추가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대세다. 문득, ‘진화된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난 아직 젊단 말이다!

- DJ.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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