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키보드의 대부분이 키스킨을 제공하면서 이제 더이상 키스킨이 없는 키보드를 인정하지 받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필자 역시 키스킨이 유용한 것이라는데 의의를 달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키스킨의 질에 만족할 수 없다. 한 두달만 사용하면 흐물텅 해지는 데다가 형편없는 재질로 쉽게 변색되기도 한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성 DT-35의 대박(?) 전략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로 히트를 친 키보드가 삼성전기의 DT-35라는데에는 그 누구도 반론이 없을 것이다. 삼성이라는 공인된 메이커, 무난한 키감, 저렴한 가격의 세 박자가 맞아 떨어진 이 키보드는 짧은 시간 안에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기는 단 기간에 국내 탑 메이커가 되었으며 아직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DT-35가 성공한 원인이 두가지 더 있다. 그것은 프라스틱 손목 받침대와 키스킨을 본격적으로 보급한 것이다. 물론 DT-35 이전에도 손목 받침대와 키스킨을 제공했던 기종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지만 삼성 키보드 처럼 전격적으로 이를 제공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손목 받침대는 차후에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키스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초창기의 키스킨은 고가격, 고품질이었다.

국내에서 고품질의 키스킨은 거의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90년대 초 국내에 보급된 키스킨들은 실리콘 재질로 된 고품질의 키스킨이었다. 그 당시 키스킨은 1~2만원대라 가격이 상당이 높은 편이었지만 그 강도가 매우 높았으며 사용자의 만족감 역시 매우 높았다. 그 당시 지금의 키스킨은 지금 처럼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한번 사면 적어도 2~3년쯤 쓸 수 있는 선택 옵션의 성격이 강했다.

그 당시에는 키스킨을 제공하는 키보드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일부 키보드에 신경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초기의 고급 키스킨은 3~4년을 가지 못하고 90년대 중반쯤에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것은 아마도 키스킨이 기계식 키보드와 비슷한 운명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질은 높지만 가격이 고가여서 일반 사용자는 구입을 주저하게 되었고 결국 자연스럽게 도태된 것이다. 그후 90년말 키스킨이 키보드에 번들되기 까지 전까지 키보드 키스킨은 한동안 소강 상태를 보이게 된다.

90년대말 저가형 번들 키스킨이 제공되기 시작...

90년대 말부터 몇몇 키보드에 저가형 번들 키스킨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혁명적인 발상이나 다름없었다. 몇개월만 지나도 키스킨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내구성이 떨어지지만 여기 대해서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짜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번들 키스킨 전략은 삼성 DT-35에서 어떤 키보드도 넘보지 못할 초 대박을 터트리는 위력을 과시했다. 이처럼 키스킨이 공짜로 제공되면서, 일반 소매 채널에서 고급 키스킨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긴 키스킨이 무료로 제공되는 시점에서 고급 키스킨이 팔릴 리가 만무하다.

국내 시장에서 키스킨이 무료로 제공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먼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국내 키보드 제조사는 남들보다 차별화되는 부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키스킨 제작에는 기술적인 어려움도 없거니와 제작 비용도 비교적 저렴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키스킨의 개발 비용은 대략 천만원 이하다. 일반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금액이겠지만, 몇만 대 단위로 키보드를 생산하는 제조 업자들에게 있어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건 번들 키스킨은 국내 키보드 시장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대다수의 사용자들도 키스킨을 제공하는 키보드를 원하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키스킨의 허와 실

그러나 키스킨은 그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제품이다.

알다시피 키스킨은 키보드에 씌우는 얇은 막이다. 외부로부터의 오염을 막아주며 사용자의 과실에 키보드를 보호해준다. 누구도 이런 효용에 의의를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필자 역시도 키보드에 음료수를 실수로 없지르는 일을 두세번 정도 당했었는데 이때 키스킨은 훌륭한 방패 막이가 되어주었다.

단점은 키캡 위에 얇은 막이 씌워지기 때문에 자연스런 키감을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키감이 형편없는 저가 키보드에선 별 차이가 안나지만, 고급 키보드로 올라갈수록 키스킨에 의한 키감 감퇴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 때문인지, 소위 명품으로 불리워지는 고급 키보드에서는 키스킨을 기본 번들로 제공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기본적인 장, 단점은 이와 같지만 국내의 저가 키스킨은 몇가지 문제를 더 내포하고 있다.

첫째, 내구성 문제다. 외국이나 국내 시장 초기의 키스킨이 실리콘 재질로 이루어져 장시간의 지속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번들 제공된 키스킨은 그야말로 그 내구성이 형편없다. 게임방 키보드에 씌여진 키스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키스킨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두세달 정도, 그 이상 시간이 흐르면 키스킨의 탄성이 떨어지면서 단순한 먼지덮개 비닐로 전락한다.

둘째, 시각적인 문제이다. 실리콘으로 된 키스킨은 경년변화에 따른 변색 현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가형 번들 키스킨은 몇 개월만 지나면 색깔이 노란색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컴퓨터 외관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도무지 참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아예 키스킨을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셋째, 키감과 밀착성의 문제이다. 저가형 번들 키스킨도 처음에는 키보드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키스킨의 탄성이 떨어지면서 키보드에 제대로 밀착되지 않게 된다. 키스킨이 들뜨면서 키보드 위에서 맥없이 떠도는 현상은 다들 한번쯤 경험해 보았으리라.
또한 저가형 번들 키스킨은 다소 두껍기 때문에, 얇은 고급 키스킨에 비해 키감 손실이 훨씬 크다. 정말 형편없는 키보드의 경우, 키스킨이 부족한 키감을 보상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아주 보기 드물다.

이러한 이유로 키보드를 사면서 키스킨을 여러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키스킨이라면 방금 열거한 문제들은 아예 눈에 띄지도 않았을 거이다.

근래의 국내 및 해외의 키스킨 상황

키보드에 번들로 키스킨이 포함되는 것은 이제 거의 표준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몇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관찰된다.

국내에선 노트북 전용 키스킨( www.keyskin.co.kr ) 업체가 탄생했다. 키스킨 산업에 대해서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데스크탑 키보드용 키스킨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나 다름없다. 그보다는 아직 미개척 상태의 노트북용 키스킨을 개발, B2B 혹은 소매 판매를 노리는 이 업체의 전략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미 이 업체는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이 업체는 여러번 소개된 바 있다.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모델을 내놓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도 특정 노트북 - 이를테면 애플의 파워북이나 아이북 - 에 커스터마이징된 전용 키스킨이 나오곤 한다. 이들 제품은 일반 키스킨과 달리 경도가 좀 더 강한 편이며, 색상도 투명/반투명/컬러 등으로 다양하다. 데스크탑 키보드 키스킨에 비해서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약 20$~30$ 수준), 목표 시장이 확실한 덕분인지 쏠쏠한 판매량을 기록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지 외국에서 데스크탑용 키보드 키스킨으로는 10$ 수준의 실리콘 재질 키스킨이 표준인 듯 하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다수 외국 키보드에는 키스킨이 옵션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짜로 주는 키스킨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다른 대안도 존재했으면 한다. 10$ - 즉 만원에서 만오천원이라면 좀 무리겠지만, 5~6천원 선에서 내구성이 뛰어난 키스킨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기 제작 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5천원 이상 하는 고가의 키스킨은 만원 이하의 저가형 키보드가 아닌, 그 이상의 중고가형 키보드를 위한 키스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중고가의 키보드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고급 키보드를 쓰는 사람들은 좀더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품질의 키스킨을 원하지 않을까?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면, 노트북용 키스킨을 만들고 나서 데스크탑용 키보드 키스킨을 만들어도 될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노트북 중에서 아직껏 키스킨이 없는 모델을 선정, 다양한 색상의 제품을 개발해 내놓는다면 어느 정도의 기회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장 표준이나 흐름이라는 것은 거스르기 힘들다. 저가형 번들 키스킨이 표준이 되면서, 선택의 대안이 죄다 사라져 버렸다. 언제나 되어야 제대로 된 데스크탑 키보드용 키스킨을 적당한 가격에 만져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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