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4월 1일은 기념할만한 날이다. 만우절이라서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 컴퓨터를 창립한 날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돈 700달러 남짓한 자본밖에 없는 초라한 회사였지만, 77년도에 발표한 애플 II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급격한 성장을 거듭한다. '개인용 컴퓨터 Personal Computer(PC)' 초기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애플 컴퓨터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1980년 야심작 애플 III가 실패하고, 81년에는 컴퓨터 업계의 거인 IBM이 PC 시장 진입을 선언하면서부터 애플 컴퓨터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1984년 3월 애플 컴퓨터는 전세역전의 카드로 매킨토시를 뽑아들지만, 이미 애플 혼자서 전세계 PC 시장을 주도하던 시대는 끝난 뒤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애플 II는 꾸준한 인기를 누렸으며, 84년 4월에는 최신기종인 애플 IIc가 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PC와 매킨토시의 성장세 앞에서 애플 II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86년에 출시된 애플 IIgs가 92년에 단종되면서 애플 II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

매킨토시는 애플 II에 비해 내부적으로 많은 부분이 발전한 동시에 외관상으로도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키보드가 본체에 내장된 애플 II와 달리 매킨토시는 별도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해야 했으며, 그 대신에 모니터(흑백 9인치 모니터)를 내장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애플 II 내장 키보드는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초기 매킨토시 키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86년에 등장한 애플 IIgs는 내장 키보드는 물론이고 내장 모니터마저 포기했기 때문에, 겉모양만 놓고 따지자면 애플 II 시리즈보다는 IBM 호환 PC와 흡사할 정도였다. 애플 IIgs는 ADB(Apple Desktop Bus) 포트를 탑재한 최초의 컴퓨터였으며 컬러 모니터를 쓸 수 있었지만, 16비트 PC나 매킨토시에 비해 훨씬 느린 8비트 CPU를 채택한 덕분에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뭣 보다도 교육 시장에 광범위하게 퍼진 애플 II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교육 시장을 타겟으로 개발된 이 저가형 컴퓨터에 번들된 키보드가 오늘날에 이르러 전설의 명기(名器)로 추앙받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샛노랗게 변했으나 전설이야 어디가랴!

gs 키보드의 외관 및 디자인

애플 IIgs 키보드는 그 외관부터 매우 특이하다. 쓸데없는 공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얇고 날렵한 케이스와 2단으로 구성된 독특한 모양새의 키캡은 보는 이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키 레이아웃은 기본 키와 텐키 외에 펑션키와 편집키 등이 생략된 컴팩트 키보드 스타일이고, 상하 배열은 스텝 스컬쳐 2(Step Sculpture 2) 방식을 따른다. 최상단의 파워 키는 대부분의 PC 유저에게는 매우 낯선 키인데, 이는 ADB 포트를 탑재한 매킨토시/애플 IIgs의 전원을 켜는 역할을 한다. 양옆에 달린 2개의 ADB 포트 중 하나는 본체와의 연결에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마우스 등 ADB 주변기기와의 연결에 사용한다. 파워키 왼쪽의 큼직한 무지개빛 애플 마크는 이 키보드의 출신을 말없이 설명해준다.
IIgs 키보드의 특이하면서도 정감어린 디자인은 독일의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의 작품이다. 프로그 디자인은 백설공주(Snow White)라는 개발명이 붙은 애플 IIc의 디자인을 필두로 초창기 매킨토시 제품 디자인을 전담했는데, 그들이 작업한 매킨토시 SE는 뉴욕 근대미술관의 영구수장품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키보드 프레임과 스페이스바에 사용된 플라스틱은 노랗게 변색하기 쉽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샛노란 몰골에서 원래의 깨끗한 베이지색 모습을 추측하기란 여간 어렵잖은 일이다.


상단부의 애플 마크와 파워 키(2단 구조의 키캡에도 주목!)

gs 키보드의 키 스위치와 키감

하지만 키보드에 있어서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라 키 스위치다. gs키보드는 알프스(Alps)제 기계식 넌클릭 스위치를 사용하는데, 제품 제조국에 따라 그 스위치 종류와 품질에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gs 키보드는 일본 알프스제 키 스위치(주황색축 사용)를 사용하지만 대만에서 만들어진 모델은 대만제 키 스위치(흰색 축 사용)를 사용한다. 일본 알프스제 키 스위치의 키감이 훨씬 낫다고 하지만, 대만제도 그 못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번 리뷰를 위해 준비한 모델은 뒷면에 Made in Japan 레이블이 붙어 있으며, 실제로도 주황색 축의 알프스제 키 스위치를 사용하고 있다. 키캡은 베이지/회색의 2색 플라스틱 성형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상단부터 최하단까지, 키캡의 길이와 곡면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평면형 기판 위에서 원통형 키 배열을 구현하노라면 이 방법밖엔 없었겠지만, 5단마다 다른 키캡을 만들어야 했으니 가격면에선 최악의 선택이라 하겠다. 제조사들이 피말리는 가격 경쟁에 돌입한 오늘날의 상황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면 손으로 만져본 느낌, 키감은 과연 어떨까.

국내 최고의 테크니컬 라이터인 탁연상씨는 예전에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기고한 컬럼에서 '최고의 키보드는 IIgs 키보드다'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과연 그 말에는 한치의 틀림도 없었으니, 당대는 물론이요 오늘날 구할 수 있는 알프스 기계식 스위치 키보드 중에선 가히 최고의 수준이라 하겠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되 한번 누를 때마다 경쾌한 손맛과 쫄깃한 감촉을 즐길 수 있는데다,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되 한번 누를 때마다 기판 뒷면의 철판에서 울리는 묵직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여기 한번 손맛을 들이면 어지간한 기계식 키보드는 성에 차지 않으리라.
ADB 키보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PC는 물론 USB 키보드를 사용하는 최근의 매킨토시에서 사용하기 곤란할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핀 테크놀러지(http://www.griffintech.com)의 iMate를 사용하면 USB 포트를 갖춘 매킨토시/PC에 ADB 키보드를 연결할 수 있다. 별도의 드라이버를 깔 필요도 없기 때문에 무척 편리하다. 그만큼의 추가 지출은 피할 수 없겠지만...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키 레이아웃 (|\ 키와 화살표 키의 위치, 배열에 주목!)

일반적이지 않은 키 레이아웃

그런데 키 레이아웃에는 약간 문제가 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컴팩트 키보드에는 오른쪽 쉬프트 키 아래쪽에, 화살표 키가 본래의 배열을 유지한 채 들어가기 마련이다. 헌데 IIgs 키보드는 쉬프트 키 아래쪽에 좌/우/상/하의 순서로 들어가 있다. ~와 |키는 스페이스바 왼쪽 오른쪽에 붙어 있다. Home/Pageup/Pagedown 등의 편집 키가 없기 때문에 워드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에겐 매우 불편하다. 그나마 컨트롤(Control) 키와 캡스락(CapsLock ) 키 위치가 바뀐 것은 어둠 속에 비치는 한줄기 빛이다.

결론

예나 지금이나 이 키보드를 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예전엔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지만, 요즘엔 쓸만한 물건을 찾기가 어렵다. 미국 이베이(ebay) 등에서 IIgs 키보드를 찾기는 쉽지만 초,중학교에서 사용하던 키보드가 대부분인지라 키감이 형편없이 떨어진 경우가 허다하다(이베이에서 2개의 IIgs 키보드를 구입해 봤는데, 그 중 하나는 키감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세월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키보드에 애정을 가진 키보드 마니아라면, 새것보다는 지난 세월의 향취가 배인 옛것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80년대 기계식 키보드 전성기에 향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애플 마니아라면, 손해볼 각오를 하고 이베이에서 한번 저질러 볼만 하다. 분명히 이 키보드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 DJ.HAN -


PS : 키보드 상하 배열 방식에 대한 용어를 수정했습니다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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