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키보드 매니아 중에서 알프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에 청룡이 있다면 서에 백호가 있듯이 독일에 체리가 있다면 일본엔 알프스가 있다. 한때는 전세계 거의 모든 업체에서 알프스 키 스위치를 탑재한 키보드를 생산해 냈으니, 그 가짓수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알프스는 체리와는 달리 자사 브랜드에 힘을 쏟는 대신 OEM 생산이나 부품 납품에만 주력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스 키 스위치를 탑재하면 무조건 '알프스 (기계식) 키보드'라 불렸다. 당대의 사용자들은 하나같이 그 품질과 내구성에 만족했으며, 지금도 기계식 키보드라 하면 알프스 키 스위치의 키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기계식 키보드가 썰물 빠지듯이 사라진 이후로는 알프스 키보드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선 아예 생산 자체가 중단되었으며 본고장인 일본에서조차 알프스 키보드를 만드는 업체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게 알프스 키보드 본고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업체 중 하나가 아스트로 인터내셔널(Astro International)이다. 여기서는 켄싱턴 스튜디오보드(StudioBoard)와 동일한 디자인의 크리스탈 프로 X(Crystal Pro X) 등, 독특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알프스 기계식 키보드를 아텟사(Atessa)란 상표명으로 내놓고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아텟사 클리어 101E(Atessa Clear AKB-101E) 다. 투명 아크릴과 하이글로시 도장된 프레임과 고휘도 청색 LED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데다 알프스 키 스위치가 탑재된 이 제품은 확실하게 사용자의 눈길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제품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철저하게 검증해 보도록 하자.

제품 사양
제작사Astro International
제품명Atessa Clear AKB-101E
제품가격약 5000엔인터페이스PS/2
크기 410 x 175 x 32 mm 무게 약 1000 그램
키 개수101키키 스위치알프스 클릭 스위치
키 작동기기계식키캡 모양원통형(Cylindrical)
자판 인쇄실크스크린측면배열스텝 스컬쳐 2

- 패키지 및 첫인상

아텟사 클리어 101E는 차분한 검은색 박스에 담겨서 출시된다. 영어로 씌어진 Atessa Clear 로고와 큼지막한 제품 사진이 꽤 잘 어울린다. 동일 모델의 일본어판인 106J와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인지 '영어판(英語版)'이란 한자 단어가 여기저기 적혀 있으며, 'Unix/Linux/Dos/Windows 대응'이란 문구도 눈에 띈다. 박스 뒷면에는 간단한 제품 사양이 일본어로 적혀 있다. 낯선 일본어와 한자의 습격이 당황스럽긴 하되, 박스 디자인 자체는 꽤 괜찮은 편이다.

박스 자체는 얇지만 튼튼한 골판지로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본래 목적인 완충 역할을 소화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뵌다. 박스 안에는 얇은 비닐에 싸인 키보드 본체와 제품 보증서가 들어가 있다. 스티로폼 같은 2차 완충재로 확실하게 받쳐 줬으면 더욱 믿음직스러웠을 것이다.

- 외관


테스트 제품 사진 - 키캡에 한글 자판이 인쇄되어 있다

폭 410mm, 길이 175mm, 높이 32mm, 중량 약 1킬로그램, 이것이 아텟사 클리어 101E이다. 일반 키보드에 비해 폭이 5~6cm 짧기 때문에 컴팩트 키보드로 분류된다. 국내에선 이런 컴팩트 키보드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해외 - 특히 일본에선 꽤 흔한 편이다.
5~6cm의 차이라면 별 것 아니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느껴진다. 시험 삼아 일반 키보드 트레이에 클리어 101E를 넣어보니 미니 마우스를 움직일만한 여유가 생겼다.

(* 컴팩트 키보드 : 컴팩트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 동일한 개수의 키, 동일한 크기의 키캡을 사용하면서도 키 레이아웃을 변경시켜 크기를 줄인다. 반면에 미니 키보드는 텐 키 등을 생략하고 키캡 크기를 줄여서 전체적인 크기를 대폭 축소시킨다)

미니 키보드는 크기가 작은 만큼 공간 절약 효과가 매우 크다. 하지만 키가 부족한데다 키캡 크기마저 작아 쾌적하게 사용하긴 어렵다. 컴팩트 키보드는 공간 절약 효과는 미니 키보드보다 못하지만 일반 키보드와 거의 동일한 감각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변칙적인 레이아웃에 적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이 키보드의 장점은 크기가 작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단숨에 사용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이 최대의 장점이다.
투명 아크릴의 키보드 받침대는 U자형으로 부드럽게 휘어지며 은빛의 하부 프레임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하이글로시 도장된 베이지색 상부 프레임은 은은한 기운마저 감돈다. 프레임 상단은 아래쪽으로 가볍게 휘어졌고, 하단은 V자형으로 좁아지면서 시각적인 효과를 더해준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한 마리 새와도 같으니 달리 비할만한 물건이 없다. 단, 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부분은 애플 프로 키보드와 마찬가지로 상채기가 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은빛의 Atessa 로고는 아크릴 받침대 하단부에 깨끗하게 인쇄되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은빛 쉴딩이 비쳐 보이는 PS/2 케이블의 아름다움도 놓칠 수 없다.
개조 매니아라면 Num Lock, Caps Lock, Scroll Lock의 푸른색 고휘도 LED에 반할지도 모른다. 고휘도 LED의 강한 빛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에게는 감점 요인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하부 프레임(및 키보드 받침대)과 상단 프레임은 꺾쇠와 3개의 나사로 결합되어 있다. 결합 상태는 꽤 튼튼하지만 나사만 풀면 쉽게 분해된다. 키보드 받침대 하단에는 미끄럼 방지용 고무가, 상단에는 투명 아크릴의 높이 조절 받침대가 붙어 있다. 높이 조절 받침대의 움직임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다는 게 단점이긴 하되 치명적이지는 않다.
(2004년 1월 5일 추가 : 상부와 하부 프레임이 나사로 연결되는 부분은 1~2mm 정도 벌어져 있다. 이 정도면 허용범위 내의 오차인데다 그리 눈에 띄지도 않지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마무리도 꽤 깔끔한 편이어서 상하좌우 어디에도 문제 삼을 부분이 없었다. 외관만 놓고 따지자면 업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을 뽐내는 애플 프로 키보드와 비견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 키캡 및 레이아웃

키보드의 측면배열은 스텝 스컬쳐 2 방식이며 키캡은 원통형(Cylindrical)이다. 키캡 윗부분엔 희미한 게이트 자국이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미세한 미끄럼방지 요철(凹凸)이 들어가 있다. 일반 키는 흰색 키캡을, 편집 키와 커서 키, 특수 키 등은 회색 키캡을 사용해 구분한다. 실크 스크린 인쇄로 찍어낸 자판의 품질은 애플 프로 키보드 내지는 켄싱턴 스튜디오보드의 자판과 비견할 만 하다. 보다 내구성 높은 레이저나 열승화 인쇄로 자판을 찍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샘플 제품은 (주)아이오매니아에서 별도의 공정을 거쳐 한글을 인쇄한 상태였다. 자세히 보면 인쇄 상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키 개수는 이름 그대로 총 101개. 전형적인 영문 101 키보드와 동일하다. 한글/한자 키와 윈도우/컨텍스츄얼-메뉴 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시대착오적인 물건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문제되는 것은 키 개수가 아니라 키 배열이다.
앞서 말했듯이, 컴팩트 키보드는 키 레이아웃을 변경시켜 크기를 줄이기 마련이다. 클리어 101E도 예외가 아닌지라 편집 키와 커서 키, 텐 키의 위치와 배열이 일반 키보드와는 크게 다르다. 동시에 일본인에게 친숙한 NEC PC-98 시리즈(NEC에서 발매된 개인용 컴퓨터 PC-9801 기종의 통칭)의 독특한 키 레이아웃이 적용되어 혼란이 가중된다.
여기서 클리어 101E와 일반 키보드와의 차이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Control 키가 A 키 왼쪽에, Caps Lock 키가 왼쪽 Shift 하단에 있음 (PC-98의 영향/구식 영문 키보드의 영향)
  2. 오른쪽 Shift 크기를 줄이고 커서 키를 근접시킴
  3. 기역(ㄱ)자형 엔터키 (일문 키보드의 영향)
  4. Insert/Delete/Page Up/Page Down 키가 수직 일렬로 배열됨
  5. 텐 키 상단에 Home/End/Num Lock 키가 수평 일렬로 배열됨. 텐 키에 속한 엔터키 크기가 일반 키 수준으로 축소됨
  6. 자리를 바꾼 ESC와 Cascade(물결 [~/`]) 키 (PC-98의 영향)

여기서 1번은 사람에 따라서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나머지 2번부터 5번까지의 변칙적인 배열에 적응하기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6번 - 자리를 바꾼 Esc 키와 물결 키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차라리 KeyTwick ( http://webpages.charter.net/krumsick/ )등의 레지스트리 조작 유틸리티로 키 위치를 '정상적으로' 바꾸는 편이 훨씬 낫다.


서로 자리를 바꿔앉은 Esc 키와 물결(~) 키

어쨌건 클리어 101E의 키 레이아웃에 익숙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겠지만 일단 익숙해진 다음에는 편안함마저 느끼게 된다. 커서 키나 편집 키 등이 한데 모여서 손을 넓게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이한 레이아웃에 손을 맞추는 수고로움이 번거롭게 여겨진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키보드를 찾아보는 것이 옳으리라.

- 키감 및 사용감

아텟사 클리어 101E에는 클릭 방식의 알프스 키 스위치가 탑재되어 있다. 실제로 키캡을 벗겨내 보면 플라스틱 하우징 위에 선명한 알프스 로고가 양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롤오버(Rollover:동시 입력 기능)는 2~5개의 키 동시 입력이 가능한 알파 N 키 롤오버(Alpha-N-Key Rollover)다.


키 스위치에 찍힌 ALPS 로고

제품 사양에서 확인할 수 있는 키 스위치 특성은 다음과 같다. 키 입력에 필요한 압력은 70+/-0.5gf(gf : 중량~중력의 크기, 1[gf]는 4℃의 물 1㎤의 무게), 키 깊이는 3.5+/-0.5 mm이다. 이 정도면 72g이란 엄청난 무게감을 자랑하던 IBM/유니콤프의 버클링 스프링 키보드와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알프스 키 스위치의 장점은 이런 무게감이 실감나지 않으리만치 가볍다는데 있다. 실제로 클리어 101E를 두들겨 보면 손끝에는 상쾌한 가벼움이 느껴지고 확실한 구분감이 더해지고 적절한 반발력이 뒤를 받쳐준다. 고전적인 알프스 클릭 스위치의 타자음을 듣는 재미는 덤이나 다름없다. 여기 비해 켄싱턴 스튜디오보드는 소리도 시끄럽고 손맛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키감이야 사람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갈린다지만 개인적으로는 클리어 101E에 탑재된 알프스 스위치의 품질이 조금 더 낫지 않나 싶다.

엔터 키, 스페이스 키 등의 대형 키는 철제 스태빌라이저로 잘 받쳐졌다. 모서리 타이핑(측면 건타)시 엔터 키의 움직임은 좀 뻑뻑하지만 나머지 키는 그런대로 부드럽게 움직여 준다.

- 결론

멋들어진 디자인과 훌륭한 키감이 조화를 이룬 아텟사 클리어 101E의 가격의 일본 내 판매가격은 대략 5000엔 정도. 운송비나 세금 등을 고려하면 국내 판매가는 9만원 이상 될 것이다. 비싸다면 비싼 가격이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은 아니다. 유려하고 날렵한 디자인은 켄싱턴 스튜디오보드나 애플 프로 키보드에 필적하고 손끝에 느껴지는 키감에선 고전적인 알프스 키보드의 느낌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아텟사 클리어 101E는 날씬하고 멋들어진 몸체에 알프스 클릭 스위치를 탑재한 기계식 키보드란 점에서 높이 사 줄만하다. 특이한 레이아웃이 부담스럽긴 하되 결정적인 문제가 되진 못한다. 전체적인 가격대 성능비를 따져봐도 상당히 좋은 물건이거니와, 고전적인 알프스 클릭 스위치의 느낌을 맛보고 싶어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책상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광채를 발하는 디자인을 바라던 사람까지 두루두루 만족시킬만한 물건이다.

- DJ.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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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