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래도 가격이 많이 내려가 구하기 어렵지 않지만,

컴퓨터가 정말 비쌌던 90년대에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제게 컴퓨터라는 물건은 환상속의 존재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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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속의 동물, 기린

지금이라고 형편이 넉넉해 진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현실적인 가격으로 내려온 컴퓨터 가격 덕분에,

대딩 이후로는 별로 부족하지 않은 컴퓨터 사양을 갖고 컴퓨터를 사용해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던 주변기기 키보드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90년대 '후반'에 아버지가 얻어다 주셨던 8086XT에 딸려있던 키보드의 키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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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이미지도 찾기 힘든 이 녀석

남들이 386, 486 쓰던 시절에 요걸 가지고 게임도 되는게 없어서 (나중에 알고보니 IBM-DOS 때문이었음!)

BASIC 가지고 간단한 작곡놀이나 계산기 만드는 것만 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쓸데없이 키보드 타이핑을 많이 한 덕분에

아직도 그 키보드의 키감이 잊혀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과 더불어 저도 결국 펜티엄 150MHz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최근까지도 그 당시 키보드의 키감을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키보드 매니아 (나름) 초기 회원으로 그 키보드가 Model M 이라는 걸 알게되었고

그 녀석이 IBM-Lexmark-Unicomp 계보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웬만한 IBM/Lexmark 제품은 상태가 맘에 드는 녀석이 없는 데다,

Unicomp 의 제품은 이중키캡이 아니라는 점이 좀 거북해서 구입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상태가 마음에 드는 Lexmark Model M 을 발견하여 구입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아주 간단한 사용기를 하나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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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상당히 상태가 좋습니다.

하우징에 도색 까진 부분도 없고, 키캡도 깨끗하네요.

한글각인 없고 엔터가 일자인 부분도 개인적으로는 맘에 듭니다.

제가 윈도우 키와 컨텍스트 (팝업메뉴) 키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오른쪽 Ctrl, Alt 에 각각 해당 기능들을 매핑해서 쓰고 있습니다. (KeyTw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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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쇄 상태는 아름답네요. 아마 승화 인쇄였죠?

이래저래 키보드에 절대 키감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 입니다만,
(가격 상관없이 손에 맞는게 최고)

리얼포스나 HHKB Pro 가 고급 키보드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키캡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중키캡을 가진 모델 M들은 컴퓨터가 고가품이었던 시절의 유산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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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매니아 출입하실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버클링 방식 키보드 입니다.

특유의 클릭(엄밀히 말하면 클릭은 아니라고 봅니다만)음과 무거운듯 가벼운 키감이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특성과 튼튼한 하우징, 키캡의 고급스러운 느낌이 합해지면 정말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만족감에 대한 표현이므로 나에게도 맞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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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거한 키캡을 분리해 본 사진입니다.

제가 Unicomp 제 Model M을 써본 것은 아니지만, 키캡의 완성도가 주는 실제적+감성적 만족도를 따져봤을 때

Unicomp Model M 이 이중키캡의 Model M 보다 좋은 느낌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기회가 되면 Unicomp Model M 또한 신품으로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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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막연한 느낌만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IBM의 마크에선 설명하기 힘든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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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화려함이 키보드의 기본 덕목처럼 되어 그다지 당연하지 않은 LED들의 정감있는 디자인도 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또한, 이 부분의 기본 디자인이 Unicomp Model M은 별로 맘에 들지 않더군요.

별도의 파츠로 팔기 때문에 갈아 끼울수는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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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에 생산 되었습니다만 앞서 사진들에서 보셨다시피

상태는 매우 좋은 편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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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윗면의 여유로운 공간으로 인해 여러가지 물건들을 올려놓기 편하네요.

예전에는 컴퓨터 쓸 때 키보드 윗쪽에 모나미 볼펜 하나쯤 올려놓고 쓰는건 당연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




이래저래 잡담을 늘어놨습니다만..저에게 있어 Model M 에 점수를 매긴다는건 불가능합니다.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있는 90년대의 추억이 이 오래된 키보드를 두들길 때 마다 떠오르니까요. ^^


마지막으로 타건 영상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