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세벌식 자판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그 시기는 아마도 도스 전성 시대였을 것이다. 공병우 박사님 아이디로 PC 통신에 올라온 글들은 많은PC 사용자들을 감동시켰고 필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PC 사용자들이 한글 문화원에서 받은 한글 스티커를 키보드에 붙여가며 세벌식으로 전환했다.

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을 예전보다 더 보기 힘들어 졌다. 세벌식 사용자들은 10년 이상 PC를 사용해온 사람 중에서나 가끔씩 볼 수 있을 정도이고 신규 PC 사용자나 중, 고생 등은 거의 예외 없이 두벌식 자판을 사용하고 있다.  학교에서 대부분 두벌식 자판만을 교육하고 거의 99.99%의 키보드가 두벌식 자판이 새겨져 있으므로 이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벌식에 대한 열기나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버린 지금이 세벌식 자판에 다시 한번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은 학자들이나 전문 연구자들의 영역일 것이며 우리는 일반 사용자의 입장에서 그 동안의 상식들을 한번 뒤집어 보고 이를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 큰 의의가 있을 것 같다.

물론 필자는 세벌식 자판을 지지한다. 두벌식 자판이 표준이라 거의 대부분의 사용자를 포섭하고는 있지만 사용자 건강과 한글 환경을 고려하면 세벌식 자판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많은 순간이 편하게 널리 사용하고 있는 표준이지만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는가?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선택 대안에도 기울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단, 이에 대한 환상을 깨고 말이다.

세벌식의 상식 뒤집기

우선 세벌식의 상식을 한번 뒤집어 보기로 하자. 이는 필자가 세벌식의 장점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소개되는 세벌식 자판의 장점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을 따름이다.

첫째, 세벌식 자판 사용자들이 두벌식 사용자들에 비해 타이핑 속도가 빠르다.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그런 사실은 아니다. 필자는 세벌식 자판을 이용해서 대략 350타에서 400타 사이의 한글 입력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타이핑이 아주 빠른 편에는 들지 못하지만 문자 입력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속도이다.

이런 타이핑 속도로 온라인 타자 게임방에 들어가면 어떨까?  실제 프리첼의 타자 GOGO에 들어가면 필자의 수준은 중간 정도이다.  컨디션이 좋을 땐 쾌조의 2~3연승을 거둘 때는 있지만 대개는 승보다 패가 많은 쓰라린 경험을 얻곤 한다.

필자의 경쟁 상대들이 두벌식 사용자인가 세벌식 사용자인가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통계적이 사항을 감안하면 소수 몇 명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두벌식일 것이다. 온라인 타자 게임방에서 필자는 두벌식 자판으로도 거의 신에 가까운 분당 800~1000타를 입력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곤 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판 자체의 매카니즘 자체 보다는 개인적인 노력이 타이핑 속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이 두벌식에서 세벌식으로 전환하면서 타이핑 속도가 늘어날 수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극적인 수준까지 향상되지는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수백 퍼센트까지 타이핑 속도가 늘어날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 세벌식이 두벌식 자판보다 우수한 자판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타자 속도는 꾸준한 타자 연습으로만 가능하다. 즉 입력 속도에 있어서 자판 구조는 절대적 요소가 아닌 것이다.


그림 1. 세벌식 최종 방식 (가장 공인된 세벌식 자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 2. 세벌식 390 방식 (특수 문자 입력에 편리한 자판입니다)
** 사진은 세벌식 동호회에 올라와 있는 것을 참고했습니다.

  
둘째,  세벌식 자판을 사용하면 두벌식 자판보다 정확한 타이핑이 가능하다.

이상적인 조건에서는 세벌식 자판이 두벌식을 사용할 때에 비해 오타가 적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각종 자료를 찾아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핑을 한다는 것, 혹은 정확히 자판을 누른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것이다. .

필자의 경우 세벌식 자판을 익힐 때 제대로 익히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10년 전 두벌식을 익혔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오타가 난다. 이를 좀더 교정하려고 생각을 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뒤로 미루어왔다. 때문에 타이핑 속도가 400타를 훨씬 넘음에도 불구하고 정타로는 분당 350타~400타 수준의 타이핑 속도에 맴돌 뿐이다.

또한 세벌식 자판의 특수기호 입력 부분은 두벌식 자판에 비해 확실히 불편하다. 390 자판쪽에서는 좀 나은 편인데 최종 자판으로 가면 특수 기호를 입력하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오타 발생 비율도 두벌식 자판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결국 세벌식 자판이 두벌식 자판에 비해 보다 정확한 타이핑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기는 하나 일부 특수한 사항이나 개인의 경우엔 그 결과가 100%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기어해 주었으면 한다.


그림 3. 세벌식 직결 폰트 화면 표시 예
(입력기가 필요없이 폰트만으로 한글을 완벽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셋째, 세벌식 직결 폰트는 처리 빠르고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이 부분은 세벌식 자판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부분이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벌식 자판과 떨어질 수 없는 내용이기에 잠깐 언급하기로 한다. 세벌식 직결 폰트를 개인적으로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론을 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분명 세벌식 직결 폰트는 한글 글꼴 역사를 바꿀만한 미적 도전이고 영문 운영체제에서도 아무런 수정 없이 한글을 쓸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라 하겠다.

예전에 필자도 맥 운영체제에서 직결 폰트나 공박사님이 만든 공시스템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공시스템의 경우에는 소팅까지 지원했기 때문에 세벌식 사용자들을 위한 맥 운영체제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시각적인 부분부터 우선 설명해보자. 전문가적인 입장에서는 세벌식 직결 폰트의 장점을 여럿 설명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필자는 이에 익숙해지기 너무 힘들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한 일주일 정도를 쓰다가 낯설음 때문에 결국 세벌식 직결 폰트를 떠나야 했다. 이상적인 폰트이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나 할까? 필자와 같이 세벌식 직결 폰트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일반 사용자들은 이 폰트를 주력으로 사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 다음에 거론할 부분은 속도 문제이다. 영문 시스템에서 세벌식 직결 폰트를 사용하는 것은 시스템 상의 효율이 상당히 높다. 아마 10여년 전에는 이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 대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50~60만원의 컴퓨터만 구입하더라도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를 보여준다. 이제 굳이 세벌식 직결 폰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글을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더욱이 세벌식 직결 폰트는 구현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데이터가 완성형 혹은 유니코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벌식 직결 폰트로 작동된 문서는 별도로 변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순수한 의미에서의 세벌식 직결 폰트는 사용이 결코 쉽지 않다.

지금까지 세벌식 자판에 관한 상식들을 한번 뒤집어 보았는데 이번은 두벌식 자판에 대한 상식을 한번 뒤집어 보자. 세벌식 자판에 비해 더욱 위험하고 오해의 정도가 심각함을 발견할 수 있다.

두벌식 자판 상식 뒤집기

첫째, 두벌씩 자판은 국가 표준이며 오랜 연구 결과를 거쳐 개발되었다.

국가 표준이라는 말은 맞지만 오랜 연구 결과를 거쳐 개발된 것은 아니다. 두벌식 자판은 제5공화국 당시 새로운 자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때 급조된 자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두벌식 자판은 이전 표준이었던 네벌식 자판 보다도 더 많은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완성형 한글 코드나 나 두벌식 자판과 같이 국가에서 중요한 표준들이 아주 짧은 기간에 결정, 진행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서 세벌식 자판은 공병우 박사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결정체이다. 이 자판은 필요에 의해 1~2년 안에 뚝딱 개발된 것이 아니라 마치 오픈 프로젝트와 같이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여 현재의 자판에 도달했다. 당연이 자판의 구조라던지, 한글 원리를 얼마나 잘 따르는가 하는 문제, 인체 공학적인 측면에서 두벌식 자판에 비할 수 없이 훌륭하다.

적어도 두벌식 자판과 함께 복수 표준으로 인정 받아야 되는 세벌식 자판이 공식적으로 전혀 우대 받지 못함은 무척 슬픈 일이다.


그림 4. 국가 표준으로 정해진 두벌식 자판입니다.


둘째, 두벌식 자판에서 세벌식 자판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필자도 예전엔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  20일에서 한 달여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훌륭한 세벌식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시간도 몇 시간씩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루에 30분 정도의 투자면 충분하다.

물론 세벌식 전환 기간 동안에는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두벌식 자판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새로운 자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달이라는 기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니다. 세벌식 자판이 가져올 여러 가지 장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기간은 다소 고생스럽더라도 견딜만한 가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라도 해결책은 있다. 세벌식을 배우다 도저히 못하겠다면 다시 두벌식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의미있는 시도에 대해 비난할 자격은 없고 말이다.  

셋째, 두벌식 자판은 인체 공학적인 면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

혹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는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이를 언급하고자 한다.

두벌식은 인체공학적 면에서 형편없는 자판 배열이다. 왜냐하면 두벌식은 자판의 문자 배열을 엉망으로 했고 필요 이상으로 쉬프트키를 누르게 하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이를 알아볼까? 한글은 기본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구조에 따라 자음을 모음보다 사용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의 문제를 던져본다. 두벌식 자판의 자음은 어디에 위치해 하고 있는가? 두벌식 자판의 자음은 모두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사람들의 대다수가 오른손잡이 임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빈번한 왼손의 사용은 손에 적지 않는 무리를 줄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세벌식 자판은 초성의 자음을 오른쪽에 종성의 자음을 왼쪽에 배치시킴으로써 한글을 입력할 때 두 손을 고루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쉬프트키의 사용 빈도도 세벌식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세벌식 자판에서도 쉬프트키를 눌러 문자를 입력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용 빈도가 낮은 자음(받침),  복자음(받침)의 경우라 실제 그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두벌식 자판은 이중자음 (ㅃ,ㅉ,ㄸ,ㄲ,ㅆ)을 사용할 시에는 이것이 초성 이든 종성이든 간에 쉬프트와 문자키를 함께 눌러야 함으로 불편함이 발생된다.

이밖에도 손가락의 이동거리라던지, 연타가 발생되는 비율 등 여러 면에서 세벌식 자판은 두벌식 자판을 능가한다. 두벌식 자판은 보기에는 그럴 듯 하게 배열되었지만 실제 사용해 보면 손에 적지 않은 피로를 자판이라 할 수 있다.

자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판의 입력속도나 정확성은 자판 구조 보다도 개인의 노력이 보다 중요하다. 물론 같은 노력을 하는 바에야 발전 가능성이 큰 세벌식 자판에서 연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나 이 부분만 고려한다면 두벌식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두벌식 자판을 입력하면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손목의 무리나 자주 쉬프트 키를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은 결국 세벌식 자판을 사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욱이 세벌식 자판을 사용하면 한글 입력시 특유의 리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키보드 매니아에게도 권할만한 자판이다.


그림 5. 드볼락 자판의 레이아웃 입니다
(쿼터스 자판과 키 배열이 완전히 틀린 것을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합리적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드볼락 자판이 좋은 예다. 이전 쿼트스 자판에 비해 훨씬 과학적인 자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자판은 쿼터스 자판을 새겨놓고 있다. 세벌식 자판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설사 정부에서 세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정한다고 해도 대다수의 키보드 업체들은 두벌식 자판을 새겨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벌식 자판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긴 하나 세벌식 키보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지속된다면 그 생명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키보드를 좋아하는 키보드 매니아분들 과연 무슨 자판을 사용하고 계신지? 정말로 키보드를 사랑한다면 세벌식 자판에 한번 도전해 보기를...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세벌식 자판은 곧 여러분의 키보드 라이프를 더욱 즐겁게 해주는 친구가 될 것이다.

** 세벌식 자판에 더 관심있으신 분은 세벌식 동호회 '세벌식 사랑모임 ( http://www.sebul.org )'에 접속해 보시길 바랍니다.
profile

키보드 매니아가 세계 최고 동호회가 되는 날까지

열심히 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