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알다시피 한정판매란 정해진 수량의 '한정판 Limited edition'을 판매하는 것이다. 희소성이 높아서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기 때문에 올림픽 기념우표나 기념주화 등, 마니아들의 수집품목은 거의 예외없이 한정판매되기 마련이다.

우표나 동전, 지폐같은 전통적인 수집품목 외에 일반 상품 분야에서 한정판매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 일본에서였다. 소위 오타쿠 취향의 캐릭터 상품 한정판이 쏟아져 나오더니 그 다음엔 게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등으로 폭이 점차 넓어졌다. 그 열풍은 어느덧 바다건너 우리나라까지 넘어왔으니, 이젠 어디서나 한정판매란 구호가 넘쳐나는 지경이다.
(정해진 수량의 일반 상품을 싸게 팔면서 '한정판매'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본 컬럼에서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 그런건 한정판매가 아니라 공동구매다)


[디지캐럿 환타지] 게임 한정판 박스


그런데 '한정판'의 정의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정확히 몇개 이하를 만들어야 한정판인지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백개를 만들어도 한정판, 십만개를 만들어도 한정판이 된다.
더군다나 한정판 패키지의 구성이 일반 상품과 눈에 띄게 차별화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례로 게임 소프트웨어 ‘한정판’은 마우스패드나 설정자료집 정도를 끼워넣는게 고작이다. 컴퓨터 하드웨어 ‘한정판’은 외장 케이스 색깔을 바꿔 내놓는게 일반적이다. 희귀하면서도 가치있는 걸 끼워주는 경우는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거칠게 말해서 ‘한정판매’는 장사꾼의 상술에 불과하다. 정말 잘 팔릴 것 같은 물건은 한정판을 만들지 않는다. 안 팔릴 것 같으니까 한정판이란 이름으로 보기좋게 포장해서 진열하는 거다. 만에 하나 한정판이 날개돋친 듯 팔릴 때는 곧장 대량생산으로 직행하기 마련이다.


토프레의 리얼포스 106 키보드 사진


토프레의 리얼포스 106 키보드가 좋은 예다. 제작단가가 비싼 정전용량 스위치를 채택한 리얼포스 106의 가격은 무려 1만6천엔(약 16만원). 고심 끝에 제한된 양만 생산, 판매했는데 이게 뜻밖에도 순식간에 매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자 토프레에선 정기적으로 ‘한정생산’을 되풀이하고 있다. 말이 좋아서 한정생산이지 사실상의 대량생산이다.

소니 PDA 클리에(Clie)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원래 실버 컬러인 NX70의 검은색 건메탈 컬러 한정판이 잘 팔려나가자 후속 모델부턴 아예 검은색이 기본으로 포함되었다. 비싼 돈을 주고 건메탈 한정판을 산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진거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애니메이션 화보집이나 캐릭터 상품 중에서도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한정판이랍시고 내놓은 화보집을 새로 편집해 대량 출간한다거나, 한정판 레진 키트를 소프트비닐 키트로 바꾸어 내놓는다거나, 이외에도 가지가지 있다. 이런걸 직접 당하면 진짜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든다. 한마디로.... 골때린다...

게다가 한정판이라고 해서 희소성이 높냐 하면 절대 그렇지도 않다. 열개 스무개가 아니라 수천개를 찍어대니 희귀할리 만무하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애플에선 스티브 워즈니악 사인이 들어간 Apple IIgs 한정판을 내놓은 적이 있다. 무척이나 귀할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오늘날 이 모델의 중고가는 기껏해야 수십 달러에 불과하다.

한정판매란 상술에 넘어가면 불행해질 뿐이다. 진정 희귀하고 가치있는 한정판은 시장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우표나 주화와는 달리 수집가도 별로 없다. 중고 가격이 신품보다 비싼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갖고 싶은 한정판이 있더라도 한참 지난 뒤에 중고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필자 자신도 예전엔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해 애니메이션 화보집 한정판이니 만화책 애장판이니 하는게 나오는 즉시 제꺽제꺽 사댔지만, 이젠 더이상 그런 짓 안한다. 속는 것도 한두번이지!

- DJ.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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