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eytronic.com

1950년대 이후 트랜지스터와 IC의 발명으로 컴퓨터 공학은 급격한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문서 작성은 컴퓨터가 아닌 타이프라이터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컴퓨터 단말기에도 키보드가 달려 있었지만, 이는 펀칭 카드에 구멍을 뚫는 천공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Apple II용 워드프로세서 Wordstar, 스프레드쉬트 Visicalc 등이 소개되면서 컴퓨터는 서서히 타이프라이터의 영역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80년대 IBM PC의 등장에 발맞춰 WordPerfect, Lotus 1-2-3, MS Word, Excel 등의 소프트웨어가 쏟아져 나오자, 타이프라이터는 아예 퇴출되는 운명에 처한다. 아직껏 타이프라이터를 쓰는 곳은 군대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데 컴퓨터가 타이프라이터의 영역을 넘보기 이전인 1969년, 컴퓨터 키보드 전문 메이커 키트로닉(KeyTronicEMS)이 탄생했다. 키보드 업체로써는 오래된 축이지만 국내외를 불문하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체 판매보다 OEM 생산에 주력했기 때문인데, 현재도 컴팩을 비롯한 여러 업체에 다양한 종류의 키보드를 납품하고 있다.
OEM에 힘을 쏟노라면 치코니나 NMB처럼 자체상표 제품이 빈약해지기 일쑤지만 키트로닉은 의외로 자체상표 제품도 충실하다. 고유의 Ergo Force 기술을 적용한 중고가형 키보드에서 보급형 키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키트로닉의 지명도는 NMB나 치코니보다 훨씬 못하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다 쓰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전통의 키보드 메이커의 실력은 결코 얕잡아 볼게 아닐즉슨, 중급 모델인 Lifetime Classic II는 그 사실을 증명하기에모자람이 없다.

제품 사양
제작사키트로닉(KeyTronic)
제품명KeyTronic Lifetime Classic II
제품가격39$인터페이스PS/2
키 개수104키키 스위치멤브레인
키 작동기러버 돔키캡 모양원통형(Cylindrical)
자판 인쇄레이저측면배열스텝 스컬쳐 2

- 패키지 첫인상

키트로닉의 포장 박스는 MS나 로지텍 못지 않게 화려하다. 차분한 검은색 바탕에 화사한 붉은색이 조화를 이뤘으며, 이 위에 큼지막한 제품 사진을 더했다. 키보드 높이에 맞춰 뒷면을 살짝 높인 박스 디자인이 무척 신선하다.

앞면에는 ‘The best keyboards in the world, GURANTEED’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간단한 제품 설명과 평생 보장 문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So go ahead, write the next Great American Novel…’이라는 문장에선 자사 제품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마저 엿보인다.
박스 안에는 키보드 본체와 PS2/AT 커넥터, 간단한 유저 가이드가 들어 있다. 붉은색 표지의 유저 가이드엔 키보드 연결방법부터 올바른 사용자세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정보가 담겨 있다.

- 외관

Lifetime Classic II 키보드의 크기는 3.75 x 44.75 x 16.8 cm, 무게는 1.1킬로그램으로 여타 103키 키보드와 엇비슷한 정도다. 가격은 39달러로 키트로닉 제품 중에서는 중급에 속한다. 본 리뷰에서 사용된 제품은 회색 모델이지만 베이지색/검은색 모델도 있다. 생산지는 아니나 다를까, 중국(Made in China)이었다.

키보드 프레임은 물 흐르듯 부드러운 곡선을 살렸지만 유러피안(European) 스타일이라고 부르기엔 좀 부족하다. 우상단의 LED 위에는 별 특징없는 키트로닉 로고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이게 그다지 고급스러워 뵈진 않는다.

하부 프레임과 상부 프레임은 총 9개의 나사로 연결된다. 그런데 하부 프레임 여기저기 멋없이 솟아나온 장식이며 돌출된 나사구멍에선 싸구려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래쪽엔 미끄럼 방지용 고무가 붙었고 높이 조절 슬라이더 하단에는 통고무를 붙였다. 그러나 높이 조절 슬라이더의 고정 걸쇠는 너무 얇아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 키캡 및 레이아웃

키보드의 측면배열은 스텝 스컬쳐 2 방식이며 키캡은 원통형(Cylindrical)이다. 키캡 아래위엔 게이트(*) 자국이 뚜렷한데다, 레이저로 새긴 영문 자판의 인쇄 품질 역시 썩 좋지 않다. 전체적인 키캡 높이는 다른 키보드에 비해 높은 편이다.
키 레이아웃은 일반적인 103 키보드 레이아웃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역슬래쉬(\)키가 우측 Shift키의 오른편에 위치했다는 사실이다.

(* 게이트 Gate : 금형에 플라스틱 등을 재료를 흘려붓는 통로. 프라모델의 러너 역시 게이트의 일종이다. 주물이 식은 다음에 게이트 부분을 잘라내 완제품을 만든다. 저가형 키보드의 키캡은 게이트 처리 흔적이 뚜렷이 남는 경우가 많다)

- 내부 구조

9개의 나사를 풀어내면 키보드는 금방 분해된다. 맨 아래쪽에는 멤브레인 쉬트가 놓였으며 그 위에는 러버 돔 쉬트, 키캡 고정 프레임이 겹쳐져 있다.

고정 프레임 뒷면에는 Enter키 등 대형 키캡의 균형을 잡는 플라스틱 스태빌라이저(*)가 눈에 띈다. 철제 스태빌라이저는 스페이스 바에만 사용된다. 플라스틱이래도 꽤 튼튼한 편이지만 철제만한 신뢰감을 주진 못한다. 또한 슬라이더와 고정 프레임 사이에는 윤활제(구리스 등)를 바른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좋게 말해 원가 절감 노력이 엿보이고 나쁘게 말해 싸구려 티가 영롱하니, 체리 키보드를 위시한 고가의 키보드에 비해 품질과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

(* 스태빌라이저 Stabilizer : 대형 키캡의 균형을 잡아주는 지지판. 보통 철사로 만들어지지만 저가형 키보드는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 Ergo Force, 그리고 키감

Lifetime Classic II에는 키트로닉이 자랑하는 Ergo Force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그렇다면 Ergo Force 기술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인간의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의 힘은 약간씩 다르다. 보통은 엄지가 제일 세고 중지, 검지, 약지, 새끼손가락 순으로 약해진다. 대부분의 키보드는 손가락 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키에 균일한 키 압력을 적용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타이핑을 하노라면 새끼손가락이 금새 지치기 마련이다.
Ergo Force는 손가락의 힘 차이를 고려해 키 압력을 5단계(80/65/55/45/35그램)로 나눠서 배치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여지듯 새끼손가락으로 누르는 키는 제일 약한 35그램, 그 외 일반 키는 45그램, 펑션 키 및 편집 키 등은 55그램, 엔터 키는 65그램, 스페이스 바/Alt/Ctrl 키에는 제일 무거운 80그램 압력을 적용한다.

일본 토프레(Topre)의 리얼포스 시리즈도 이와 비슷한 3단계의 압력 분배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때문에 ‘서(미국)에는 키트로닉,동(일본)에는 토프레’라고 말하는 일본 마니아도 있다.

키트로닉 키보드에 채택된 러버 돔의 탄성은 무척 훌륭한 편이다. 토프레의 리얼포스가 10점 만점이라면 여기엔 8.5점은 줄 수 있다. 하지만 둘의 키감은 그 성격이 다르다. 리얼포스에 부드럽게 잠겨드는 깊은 손맛이 있다면, 키트로닉엔 경쾌하게 끊어지는 손맛과 적당히 튕기는 맛이 있다. 박순백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컴팩 296433/296434-001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확실한 손맛이 전해진다(여기 대해서는 박순백님 개인 홈페이지의 리뷰 - 워드스미스용 키보드(Link) 를 참고해 주십시오. 이 키보드는 키트로닉 OEM으로 추측되는데 기회가 되는대로 분해해서 확인할 예정입니다).
게다가 새끼손가락의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키감이 무척 가볍다. 제일 무거운 80그램 압력이 적용된 Alt/Ctrl/윈도우 키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별 부담은 없었다.

- 결론

키트로닉 Lifetime Classic II의 키감은 웬만한 저가형 기계식 키보드보다도 훨씬 나은 수준이다. 문제는 키감이 아니라 내구성과 완성도에 있다.
키트로닉은 자사 제품의 멤브레인 키 스위치가 2000만 번의 키 입력을 견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슬라이더와 러버 돔이 먼저 열화(劣化)될 가능성이 높다.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해 불만스런 부분도 한둘이 아니다. 이쯤 되면 보다 뛰어난 키감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토프레의 리얼포스 키보드엔 비교조차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트로닉 Lifetime Classic II엔 분명한 장점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가격이다. 정가는 39달러, 실제로는 이보다 더 싼 값에 살 수도 있다. 운송비까지 합쳐도 한국 돈 5~6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반면에 정전용량 무접점 스위치/러버 돔 작동기의 토프레 리얼포스 키보드의 일본내 가격은 무려 16,800엔(17만원 이상)! 국내 가격은 아무리 못해도 20만원 이상이다. 가격대 성능비로는 키트로닉의 완승이다.
게다가 Lifetime Classic II의 키감은 러버 돔 작동기 키보드 중에선 토프레 다음이고 멤브레인/러버 돔 키보드 중에선 단연 최고 수준이다. 5~6만원대의 중가 키보드 중에서는 이만한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다.

적당한 가격으로 최고의 키감을 맛보고 싶다면 Lifetime Classic II은 좋은 선택이다. 미국에서도 키트로닉 키보드를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은 많지 않지만, 한번 찾아볼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 DJ.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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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