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무렵, 매킨토시는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시장이었던 전자출판(DTP)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갔다. 여기에는 아도브(Adobe) 사가 개발한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기술이 한몫 단단히 했다. 인쇄용 품질을 자랑하는 포스트스크립트 폰트 출력이 가능한 레이저 프린터, 아도브 페이지메이커 등 걸출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전자출판 시장 개척을 뒷받침해 줬다.
문제는 흑백 9인치 내장 모니터의 한계 때문에 컬러 작업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1987년에는 컬러 외부 모니터를 지원하는 매킨토시 II가 등장하게 되었다. 16Mhz로 작동하는 68020 CPU와 68881 FPU를 탑재하고 6개의 nuBus 슬롯을 갖춘 매킨토시 II는 DTP, 그래픽 분야의 고급 사용자를 타겟으로 삼은 제품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애플에는 고급 사용자를 위한 키보드가 없었다. 기존의 애플 스탠다드 키보드엔 펑션 키도 없었고 편집키 (PageUp/Down 등)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숫자키(텐키)가 있는게 고작이었다. 개인 사용자라면 모를까 고급 사용자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매킨토시 II, 매킨토시 SE와 함께 발표된 애플 확장 키보드 I (Apple Extended Keyboard I)는 이 상황을 타개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펑션키, 편집키 등이 추가된 확장 키보드는 고급 사용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 제품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잖다. 엘렉스 컴퓨터는 1987년에 애플과 매킨토시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Quark XPress가 한글화된 89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매킨토시 판매가 시작했다. 일반인에게 매킨토시가 소개되기 시작한 90년도에는 확장 키보드 I은 이미 단종되어 II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대량으로 수입된 확장 키보드 II와는 달리 I은 극소량만이 들어왔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사실 I과 II의 키감에 별 차이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진 않았다.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느냐 - 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였다. 하지만 그건 무지의 소산에 불과했다. 직접 접한 확장 키보드 I은 이런 얕은 견해를 산산히 부숴버리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육중하지만 날렵한 외관


확장 키보드 I의 외관

확장 키보드 I의 크기는 가로 487mm, 세로 190mm, 높이 56mm에 달하는데다 무게는 1,8킬로그램에 육박한다. 당시의 키보드로써는 일반적이지만 요즈음의 멤브레인 키보드와 비교하면 엄청난 크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직선과 곡선이 절묘하게 융합된 유려한 디자인 덕분이다. 이 역시 지난번에 소개한 gs 키보드와 마찬가지로 독일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의 작품인데, gs의 장난기어린 디자인에 비해 고급 사용자에게 어울릴법한 차분하고 품격있는 디자인이라 하겠다.

자세한 설명은 앞서 kant가 리뷰한 확장 키보드 II의 설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I과 II에는 두가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높이 조절 슬라이드가 없는 대신 키보드 뒷면이 좀 더 높이 들려져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애플 마크가 좌상단이 아닌 좌하단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캡 글자체가 약간 다르고 폭도 아주 약간 넓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사실상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다.


확장 키보드 I의 뒷면 사진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봐도 매우 현대적이면서 품위있는 디자인이다.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이 제품에 사용된 플라스틱이 노랗게 변색하기 쉽다는 사실이다(이는 gs 키보드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중고 시장에 나온 매물 중에서 원래의 상큼한 베이지색을 유지하고 있는 물건은 전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성세제를 탄 물에 하룻밤 이상 담가두면 노란물이 어느 정도 빠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인터페이스 및 키 레이아웃


ADB 포트는 좌/우에 1기씩, 총 2기가 탑재되어 있다

확장 키보드 I은 애플의 ADB 인터페이스를 탑재하고 있다. 오늘날의 키보드 인터페이스는 PS/2 혹은 USB가 주류라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사용할 길이 막막해진다. 하지만 그리핀 테크놀러지의 USB-ADB 컨버터인 iMate를 사용하면 어떤 컴퓨터에도 이 키보드를 연결할 수 있다. 키보드 하나를 쓰기 위해 7만원 이상의 컨버터를 구입한다는게 상당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애플 키보드 매니아라면 이 정도는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최상단의 펑션 키 배열

키 레이아웃은 확장 키보드 II와 동일하며 PC 103 키보드와 흡사한 레이아웃을 채택하고 있다. iMate로 PC에 연결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option 키가 Alt로 인식되고 Command키는 윈도우즈 키로 인식된다. 파워 스위치로 컴퓨터를 온/오프하는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키감, 최고란 이것이다

확장 키보드 I은 gs/확장 키보드 II와 마찬가지로 일본 알프스제 넌클릭 기계식 스위치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키감이 '장난이 아닌' 수준이다. 여기 비하면 확장 키보드 II는 너무 딱딱하고 gs는 아주 약간 심심하다.
키 스위치만 놓고 비교하자면 확장 키보드 I은 gs 키보드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gs는 변칙적인 2단 구조의 키캡 때문에 타이핑하는데 불편함을 느낄 경우가 많다. 특히 손가락이 큰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정상적인 키캡을 채택한 확장 키보드 I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찾아볼 수 없다. 손가락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키를 두들기는게 가능하다.
게다가 키보드 자체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격렬한 타이핑도 안정적으로 받쳐 준다. 넌클릭답게 타이핑 소리는 얕고 가벼우면서도 경쾌하다. 소음 정도는 gs 키보드보다 아주 약간 큰 편이다.

확장 키보드 I을 체리의 넌클릭(흰색축) 혹은 리니어(흑색축) 타입의 MX 스위치를 채택한 키보드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체리 넌클릭은 누르는 감이 밋밋하고 리니어 타입은 지나칙게 무겁다. 한때 알프스 넌클릭 스위치는 체리 넌클릭 스위치보다 한수 위였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런 모자람이 없으리라.

결론

확장 키보드 I은 gs 키보드의 키감을 물려받은 정통 계승자다. 표준적인 키캡과 키 레이아웃을 채택한 덕분에 편리하고 안락한 타이핑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최신 기계식 키보드에 뒤처지지 않는 키감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문제라면 생산이 중단된지 오래라 신품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 상태가 좋은 중고를 찾기도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필자는 eBay를 통해서 2기를 구입했지만 그 중 1기는 키감이 완전히 죽은 상태였다. 다른 1기는 최상의 키감을 보여줬으나 어찌나 지저분한지, 무려 3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을 털어내야 했다.
그러나 알프스 넌클릭 스위치의 진가를 확인하는데 있어서 이 키보드만큼 확실한 물건은 없다. 약간의 수고로움과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 DJ.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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