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완벽한 물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은 물론이고 쓰는 사람마다 완벽에 대한 기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주관적인 '감각'이 개입되는 경우엔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예를 들어 오디오처럼 '음감'이 판단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개인차가 엄청나기 그지없다. 누군가 좋다고 칭찬하는 앰프라도 어떤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지도 모른다. 어떤이가 훌륭하다 평하는 스피커를 두고 다른이는 형편없다 욕할지도 모른다.

소위 '명품'이란 이런 의견차이를 최소화시키는 제품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듣는 한편, 비판은 있을지언정 극단적인 비난은 없어야 된다. 칭찬 못지 않게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면 명품의 반열에 오르기는 힘들다.

이것은 '촉각'이란 감각이 판단기준의 하나로 작용하는 키보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디자인이라거나, 전체적인 완성도라거나, 내구성이라거나, 기능성 등을 따질 수는 있지만 역시 키보드의 품질을 판단하는 첫째 가는 기준은 키 스위치를 누르는 감촉 - 소위 키감(感)에 달려 있다.
키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꼽는 명품은 8~90년대 초반까지의 기계식 키보드들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그 키보드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종된지 십년이 넘은지라 신품(新品)은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쓰레기통 속에 처박혀 있는 중고품을 찾아내도 쓸만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행히도 요즘 들어서는 eBay 등을 필두로 하는 인터넷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중고 명품을 구할 길이 여러갈래로 열렸다. 하지만 역시 중고는 중고, 쓸만한 물건을 찾으려면 돈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일례를 들어보자. 필자는 eBay를 통해 애플 확장 키보드(Apple Extended Keyboard) I을 2기 구입한 바 있다. 하나는 가히 최고 수준의 키감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키감이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kant님이 Auction에서 구입한 세진 키보드의 경우, 그 처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케이스에 묵은때가 끼고 고정부위가 건들거리는데다 키감은 처참할 정도였다. 일부 키 스위치는 고장난데다 전혀 엉뚱한 키보드의 키캡을 대신 꽂아놓기마저 했다. 이쯤 되면 키보드가 아니라 폐품이라 부르는게 마땅하리라.

다시 말해 두개 주문해서 하나 건지면 다행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명품' 키보드는 중고 가격도 결코 싸지 않거니와 eBay등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에는 운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A/S도 불가능하다. 위험 부담이나 가격 부담이 너무 큰 셈이다.

그렇다고 최신의 명품 키보드를 구하기는 쉬운가 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용산 전자상가는 물론이고 인터넷 쇼핑몰 중에서도 키보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LG, 삼성, 혹은 이름모를 중국제 멤브레인 키보드를 파는게 고작이다. 아론 기계식 키보드를 파는 가게조차 극소수에 그치고 있으니 체리나 유니콤프, 키트로닉 등은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외국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 주문한다손 치더라도 운송비를 포함한 가격 부담과 고장 발생시의 A/S 문제는 여전히 피할 길이 없다. 특히 가격이 살인적이다.
키트로닉의 최상위 모델은 약 80달러, 체리 키보드는 제일 저렴한 모델도 백달러 가까이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토프레의 Realforce 106은 1만 6천엔, id-ee의 Blade16은 3만 8천엔에 육박한다!
물론 eBay나 일본 야후옥션 등을 뒤져 최신 키보드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불량품이 섞였을 가능성도 높거니와 성의있는 A/S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명품 키보드를 구입하기란 이래저래 쉬운 일이 아니다. 새것이건 헌것이건 국내에서 구할 길이 한정된 탓이다. 남은 길은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뿐이다. 즉 eBay나 Auction 말이다. 이미 당할만큼 당했지만 선택의 여지도 없고 별다른 대안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하다못해 CPU 냉각팬도 일제 고급품이 수입되는데, 손에 직접 닿는 제품인 키보드가 이렇게까지 무시당하는건 대체 뭣 때문일까?

-DJ.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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