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컴퓨터 주변기기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은 무선(無線)이란 단어다. 무선 랜(Lan)은 이미 생활의 일부나 다름없을 정도로 익숙해졌으며,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의 사용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얼마 전, 나이 지긋한 분에게서 쓸만한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가격 면에선 아무런 제약 조건이 없었기에, 대뜸 MS의 무선 옵티컬 데스크탑 엘리트(무선 키보드/마우스 패키지)를 추천해 드렸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유선형으로 잘 빠졌으며, 키감과 마우스 조작성은 괜찮은 편인데다, 드라이버 소프트웨어는 업계 최고 수준이니, 누구라도 만족스럽게 쓸 수 있으리라 여겼다.
헌데 이게 웬걸, 키보드와 마우스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왜 그런지 조사해 봤더니만 … 무선 옵티컬 데스크탑 엘리트의 드라이버 소프트웨어는 Windows 2000 이상을 필요로 하는데, 그 분의 컴퓨터에는 MS Windows 98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Windows 98을 지원하는 무선 키보드/마우스 패키지를 찾으려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어디서도 구할 길이 만무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의 CPU가 뭔지, 메인보드 칩셋이 뭔지, OS 버전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Windows 98같은 구닥다리 OS로도 웹서핑을 즐길 수 있고,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고,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아래아한글이나 MS 오피스를 쓸 수 있다. 더군다나 Windows 2000/XP의 정품 가격을 보고 나면 업그레이드의 유혹이 씻은듯이 날아가 버리기 일쑤다. 실제로 세계적 시장 조사 업체인 IDC에 의하면, 현재까지도 5,800만 카피의 Windows 98이 PC에 설치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2004년도 1월 기준).
어플리케이션 호환성도 무시할 수 없다. 98용 어플리케이션은 2000이나 XP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기존 어플리케이션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전혀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98을 고집하는 경우도 간간이 눈에 띈다. 특히, 많은 수의 PC방은 게임 호환성 때문에 아직껏 Windows 98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업체는 구제품의 유지보수보다는 신기술이 적용된 신제품 판매에 주력하기 마련이다.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많은 신제품을 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법을 동원한다. 앞서 언급한 MS 무선 옵티컬 데스크탑 엘리트만 해도 그렇다. 다른 회사도 아닌 MS에서 98용 드라이버도 내놓지 않았을 줄이야 미처 상상조차 못 했다. 설마하니 MS가 기술력이 없어서 못 만들었겠는가. 일부러 안 만든 것이 분명하다.

최신 기술의 혜택을 누리려면 최신 OS를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지고 보면 OS 업그레이드에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고, 안정성이 향상되는데다, 기본 지원되는 하드웨어 드라이버가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Windows XP의 서비스 팩 2에 이르러선 블루투스 지원 기능이 추가되는 등, 많은 기능이 추가되었다(SP2의 팝업 윈도우 차단 기능은 찬반이 엇갈리는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러나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4, 50대의 중장년층은 키보드 하나 때문에 OS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결국 무선 키보드를 포기하고 예전에 쓰던 키보드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새로운 하드웨어를 쓰기 위해 새로운 OS를 설치하느냐, 새로운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고수하느냐, 그것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이다. 하드웨어 업체에서 구형 OS용 드라이버를 개발해 준다면 좋겠지만, MS조차 98을 포기하는 이 시점에서 그런 걸 바라긴 무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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