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방향에서 거센 광풍(狂風)이 불어 닥쳤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이온화된 수소 가스가 붉은색 고함을 지르며 쏜살같이 달려가고 빛이 비뚤어지며 주변의 풍경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먼 바다의 별들이 한데 엉겨 붙었다가 길고 넓은 부챗살 모양을 그리며 떨어져 나가고 가까운 소행성의 윤곽이 걸레처럼 찢어지며 기괴한 추상화를 그렸다.

검붉게 녹슬어 이빨 빠진 칼을 부러뜨리고, 인간을 핏덩이로, 쇳덩이를 쇳조각으로, 물리적인 진공을 추상적인 허공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이 에카무드에 육박해 왔다. 그것은 상상을 초극하는 충격이었지만, 세시나는 이를 앙다물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가까스로 막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욱 무겁고 더욱 강하게 도끼질했고, 그것을 막아내는 소녀의 방패는 파편을 흩날리며 부서졌다. 세시나는 가중되는 압력과 신경을 손으로 잡아 뽑는 듯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온몸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너무 강해요, 너무…… 더는 버틸 수가……!"

"조금만 버텨!" 스카리인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의식을 집중하려 애썼다. '한 놈이라도 떨어져 나간다면……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긴다면……'

적들의 사념은 에카무드를 완전히 휘어잡아 걸레 짜듯 비틀기 시작했다. 그 강대한 힘에 맞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다. 도망칠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며 전력을 기울여 방어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정상적인 궤도를 일탈한 집념은 처절한 살의를 낳고 살의는 다시 광기를 낳았으니, 비뚤어진 광기는 고귀한 이성과 지성을 박탈하고 정상적인 사고(思考)를 마비시켜 오직 피 냄새를 쫓는 미치광이 야수를 낳았다.

'……그렇다면 저 개자식을 죽일 수 있을 텐데!'

그는 이빨을 부드득 갈며 사념을 확장했다. 그것은 방어를 위해서도 아니고 탈출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물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소녀의 목숨까지도 도외시한, 터무니없이 비정상적인 판단이었다.

 - 데스, 넌 정말 바보 멍텅구리야 - 렉클은 얄밉게 비아냥거렸다.

적들은 그의 공격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소모한 스카리인이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사념을 가다듬고 주포를 충전하고 어뢰를 장전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목숨이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순간, 하나의 느낌이 스카리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그것은 수천 년에 걸쳐 파도에 깎인 바위처럼 두리뭉실하고 수만 년에 걸쳐 풍화된 모래사장처럼 아름답고 수십억 년에 걸쳐 빛나는 별들처럼 반짝이는 머나먼 시간의 파편……

그리고, 그것은 강력한 힘이 되어 적 함대를 꿰뚫었다.

예기치 못한 타격에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이어져 있던 여덟 갈래 사념의 정신적인 연결이 맥없이 끊어져 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 찰나에 불과한 기회, 그러나 스카리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한 가닥의 원념(怨念)이 여덟 갈래 사념 사이로 쏜살같이 쳐들어가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공간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소리 없는 절규를 토해내면서 여섯 척의 발스레인이 휴지처럼 구겨지고 세 척의 오뤽이 깡통처럼 찌그러졌다.

초신성의 폭발과 맞먹는 강렬한 빛이 어그러진 공간에 악령과도 같은 기괴한 잔상을 남기며 퍼져 나갔고, 열기와 파편 조각이 격자선의 위로, 아래로, 옆으로 질주하며 주변의 전함을 덮쳤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쇳덩이에 두들겨 맞아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오뤽 한 척은 피를 흘리고 배를 뒤집으며 전열에서 떨어져 나갔고 태양열과 같은 온도의 플라스마를 뒤집어 쓴 세 척의 발스레인은 순식간에 두부처럼 뭉개졌다.

그리고 충격파가 뒤를 이었다. 스카리인은 조종간을 잡아당겨 에카무드를 뒤로 뺐고 살아남은 적 함대는 빛으로 뒤덮이고 충격으로 뒤집힌 가스층을 황급히 벗어나 일렬 횡대로 진형을 다시 짰다.

'남아 있는 건 오뤽 네 척에 발스레인 다섯 척, 사념은 셋이라…… 해볼만한 싸움이 됐군.'

스카리인은 볼을 굴려 에카무드를 반전시켰다.

"세시나, 지금부터 최고 속력으로 적 함대 중앙을 돌파한다! 사념 방어는 네게 맡긴다."

아까의 충격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눈 밑에 그림자가 지고 피로가 덜 마른 땀방울로 남았지만,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소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방위 스크린의 옆으로 소행성들이 스쳐 지나가고 가스의 빛깔이 엷어지면서 어둠의 깊이가 더해졌다. 눈앞에 있던 흐릿한 점들이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오뤽과 발스레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순간, 적함에서 쏟아져 나오는 입자포와 열선포의 섬광과 어뢰의 궤적으로 화면이 가득 메워졌다. 그러나 세시나의 사념에 붙들린 에너지는 휘어지고 꺾어지며 약화되고 마침내는 희미한 빛의 꼬리를 단말마로 남기며 암흑의 바다에 깊이 가라앉았다. 그 어떤 물질보다 단단한 사념의 방패에 충돌한 중어뢰의 흑철빛 몸통은 찢어져 가루가 되고 플라스마는 빛을 뿌리며 안개처럼 흩어지고 육중한 탄심은 꺾어지고 부러졌다.

하얗고 노랗고 파란 빛이 교차하는 화려한 불꽃놀이, 에카무드는 부서진 쇳조각과 번쩍이는 불빛을 헤치고 비뚤비뚤 줄지어 선 오뤽을 향해 달려갔고, 스카리인의 시선은 꼬리가 끊어진 오뤽에 못박혔다.

'네놈은 두 번 다시 날 비웃고 욕하지 못할 거다. 왜냐하면 곧 죽을 테니까!'

다시 눈부신 섬광, 비껴나갔다. 비처럼 쏟아지는 어뢰들, 바스러진 가루가 흩날렸다. 거리가 10에서 5로, 다시 1로 줄어들면서 코를 벌름대는 오뤽의 주둥이가 화면을 가득 채웠고 세 갈래 사념이 교차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혼란과 공포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 렉클, 네 단짝인 무라하이가 기다리는 지옥에 보내주마! -

스카리인의 사념이 폭발했다. 그의 정신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적들이 허둥지둥 세운 마음의 벽을 단숨에 깨치고 무너트려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그 빈틈을 노리고, 에카무드는 자신이 품은 화력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유트라이드 고폭 어뢰가 2초 간격으로 발사되고, 충격 어뢰가 1초 간격으로 튀어나갔다. 보조포는 100분의 20초 간격으로 열선을 퍼부었다. 반회전 주포는 100분의 40초 간격으로, 회전 주포는 100분의 80초 간격으로, 빛의 속도로 가속된 입자를 쏟아냈다.

쇳덩이도 증발시키는 광자와 입자의 행렬이 오뤽-라팔레스 함의 옆구리를 두들기며 두터운 외부 장갑을 짓이기고, 충격 어뢰의 탄심이 단단한 내부 장갑을 찢어발기고, 뒤따른 고폭 어뢰의 탄체가 핵폭발을 일으키며 그 속을 남김 없이 갉아먹었다. 모든 적들에게 빠짐없이 공평하게 돌아가는, 차가운 침묵과 찬란한 섬광을 등지고 펼쳐진 창과 칼의 향연!

1초, 2초, 그리고 3초, 에카무드는 대부분의 어뢰와 입자와 광자를 토해내고 홀가분하게 날아갔다.

4초, 만신창이가 된 렉클의 전함은 공기를 내뱉으며 쭈그러들었다. 그리고 수백 수천 갈래의 빛을 뿌리며, 수만을 헤아리는 조각으로 분해됐다.

'저것이야말로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최후지!' 스카리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솔직하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불길한 웃음소리!

5초, 한 척의 오뤽과 세 척의 발스레인도 렉클과 같은 운명을 밟았다. 소리 없이 울부짖는 죽음과 파멸은 어둠에 화려한 빛의 문양을 수놓았다.

6초,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로 크게 부서져서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는 오뤽이 충격파로 물결치는 가스층에 머리를 처박았다.

움직일 수 있는 전함은 오뤽 한 척, 그리고 발스레인 두 척. 그들 역시 깊은 손상을 입었기에 차마 에카무드에 맞서 싸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가스층 속으로 가라앉았다. 대파된 오뤽의 생존자를 구출해 도망칠 작정이었다.

"적 함대의 생존 전함은 4척. 중전함 1척은 에너지 반응이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든 엔진이 기능을 상실하여 정상적인 조타 및 항진이 불가능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중전함 1척과 경전함 2척은 전투 해역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습니다."

세시나는 보조 스크린에 떠오른 피해 상황을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도 순동 항행구로 진입하기 전에 로봇을 풀어 손상 부위를 점검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명예롭지만 죽음이 확실한 싸움을 하느니 치욕스럽더라도 한발 물러서는 것이 당연한 결정이라면, 섣불리 항전의 의지를 내보이는 대신에 등을 돌린 채 침묵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스카리인은 패배자들의 행동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완벽한 무시로 일관했다.

지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과거, 추억이었다.

스카리인은 헤드기어의 다이얼을 돌렸다. 생체 컴퓨터와의 연결이 끊기고 넓은 공간에 퍼져 있던 사념이 극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세포체가 헤드기어에 연결된 파이프의 컴컴한 구멍으로 스멀스멀 빨려 들고, 산소 마스크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묵직한 헤드기어가 나직하게 울어대며 위로 벗겨졌다. 무한대의 사념 공간에서 초라한 현실로 돌아온 충격에 손가락 끝까지 무력해지는 느낌, 탈력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내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세시나, 배를 찾아라."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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