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쓴 본격 하드 SF 소설입니다. SF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 보시고 따끔한 평을 날려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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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엘리베이터 보이였다. 고도 3만 5천 킬로미터 높이의 정지 위성에서 지상으로 내리 꽂힌 거대한 탑의 일부였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오르내리는 강철의 상자와 함께 호흡하고 함께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는 엘리베이터 보이였다. 하지만 소년은 아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래 전에 흘려 보내고 청년기로 접어든 사내였다. 태어난 고향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호두 농장, 마음의 고향은 높고 넓은 우주였다.

그는 원래 우주 비행사였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처럼 다듬어진 상반신 근육은 과거의 짧은 영광을 입증했지만, 이마에서 턱까지 얼굴의 절반을 가로지른 깊은 상처는 평생토록 남을 악몽을 상징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왼쪽 눈엔 깊은 절망이 어둠처럼 빛났고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오른손은 침울함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걸음을 옮길 때는 운명에 굴복하듯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절름대는 왼발을 질질 끌며 더러운 길바닥에 패배자의 낙인을 찍었다. 슬픔이 살갗에 문신처럼 새겨지고 설움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지만 결코 다른 이의 동정을 구걸하진 않았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 피츠제럴드 토마스, 두 형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삶을 택했지만 그는 무한한 가능성을 쫓아 우주인(宇宙人)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공군 전투기를 조종했고, 다음엔 스페이스 셔틀을 몰았고, 마침내는 우주 정거장에 안착했다. 2065년 5월 2일, 그는 스물 여덟 젊은 나이에 지구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우주 정거장 [관문]은 스무 해를 끌어온 궤도 엘리베이터 사업의 핵심이었고 최종 목표였으며 최첨단 우주 공학의 결실이기도 했다. 그것은 중력과 무중력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아 쓸쓸한 어둠의 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등대였다. 엘리베이터와 직결된 '실린더'는 은빛으로, 꼭대기에 고정된 십자가 모양의 태양광 전지판은 금빛으로, 물레방아 돌듯이 회전하는 '도넛'은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스페이스 셔틀을 타고 위성 궤도에 진입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별들이 제각각 다른 사연으로 반짝이는, 종말의 시간까지 영원히 계속될 냉엄한 밤의 장막에 둘러싸인다. 땅에서 두 발을 뗀 대가로 중력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고독과 왜소함의 덫에 걸린 우주인들은 자신감을 잃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과 푸른 지구를 구분하는 희미한 경계선 위에 걸터앉아 고고하게 빛나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발견하는 순간, 그들은 가슴 벅찬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인류가 나아갈 방향이고 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었다.

지름 110미터, 높이 420미터의 거대한 실린더는 4대의 우주선이 동시에 발착할 수 있는 우주 공항이었다. 실린더 밑바닥엔 창고와 격납고가, 중간에는 통제실과 관제실이, 위쪽에는 연료 저장고와 발전실이 있었다. 중심부를 굴대 삼아 초당 90미터 속도로 도는 외경(外徑) 2000미터, 내경(內徑) 1600미터의 도넛은 승무원의 침실로 과학자의 연구실로 기업의 생산 공장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마지막 16킬로미터 구간의 외장(外裝) 공사가 끝나는 6월 말이나 7월 초에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시험 운행이 가능하리라 예상되었다. 그래서 총 45명의 승무원이 [관문]에 모여 고된 훈련과 치밀한 점검을 되풀이하며 시험 운행에 대비했다. 무수한 보석이 반짝이는 광활한 침묵의 바다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토마스를 비롯한 승무원 전원은 긍지를 가지고 만일의 경우에는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일에 매진했다. 

그들의 각오를 증명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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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거장은 무한한 진공의 바다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산소 깡통이다. 좁쌀만한 이물질의 충돌이 파멸을 초래하고 조그만 불씨가 대폭발을 야기시킬 위험이 높았기에, 기술자들은 [관문]의 안팎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내벽과 중간벽과 외벽으로 이뤄진 3중 구조의 벽체는 20 밀리미터 크기의 우주 쓰레기와 부딪혀도 끄떡하지 않았다. 전력선이 지나는 내벽 안쪽에는 내화재를 빈틈없이 발랐고, 곳곳에 누전 차단기와 자동 소화기를 설치했다. 그러나 인간이 행하는 일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65년 5월 25일, 케냐 키수무 시간으로 새벽 06시 00분. 통제실의 컴퓨터 한 대가 다운되면서 백업 컴퓨터가 작동했다. 그러나 프로그램 실행 에러로 송전 전압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하면서 관제실에 전력을 공급하는 초고압 변압기에 한계치의 2배를 넘는 과부하가 걸리면서 조그마한 불꽃이 튀겼다.

라이터 부싯돌에서 튀는듯한 작은 불꽃, 그것은 지상의 평범한 변압기에선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도 3만 5천 킬로미터 높이에 떠 있는 정교하지만 허약한 우주 정거장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불꽃은 관제실 내벽에 감춰진 전선을 따라 미친 말처럼 내달리다 다른 변압기와 충돌하며 대폭발의 방아쇠를 당겼다. 뜨겁게 달아오른 코일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중간벽이 뚫리고 연료 파이프에 불이 옮겨 붙었다. 불타는 빛과 뜨거운 폭풍이 적막함과 고요함을 두들겨 부수고 견고함을 자랑하던 3중 벽체를 송두리째 무너트렸다.

시간은 06시 01분. 4교대로 운영되는 관제실의 근무 교대 시간이었다. 1주기 근무자 여덟 명은 같은 숫자의 2주기 근무자들에게 업무를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7명은 무중력의 자유를 만끽하며 문으로 헤엄쳐 갔지만 토마스는 자력 부츠의 스위치를 켜고 바닥을 밟았다. 조금이라도 근육을 움직여 운동 부족의 악영향을 떨치기 위해 그는 난간을 붙들고 뒤뚱대는 걸음으로 조심스레 철제 계단을 올랐다. 이 뒤에 도넛으로 옮겨가 체육 시설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가볍게 샤워를 한 다음에 침대에 누워 책장을 넘기며 잠을 청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토마스가 두 발짝인가 세 발짝을 옮겼을 때,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균형 잡힌 공간과 정체된 대기 속에서 망각하고 있던 그것은 진동이었고, 바람이었다. 고막을 찢는 폭음과 함께 동쪽 벽이 통째로 날아가 사방이 흔들리며 파도 쳤고 충만한 공기가 허공으로 빠져나가며 거센 폭풍우가 불어 닥쳤다. 방금 전까지 공중 유영을 즐기며 미소 짓던 사람들은, 흙빛이 된 얼굴로 절망스럽게 손발을 허우적대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무서운 속도로 쓸려나갔다.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려던 사람들은 부서져 나가는 책상과 의자 사이에 끼여 피를 뿌리고 고함을 지르며 발버둥치다가 엄청난 기세로 튕겨나갔다. 

토마스는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금방이라도 허리가 끊어질 듯이 끼익끼익 울어대는 난간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인간이 호흡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는, 인간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둘러싸는, 그 공기가 포악하게 날뛰며 그의 몸을 두들기고 관제실을 물어뜯었다.

계단에서 떨어져 나간 철판이 왼쪽 무릎을 강타하면서 무릎 아래가 한 바퀴 돌면서 꺾어졌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파열되는 고통이 신경을 따라 질주하며 끔찍한 비명이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두 팔은 난간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빙글빙글 돌며 날아온 부서진 벽체가 왼쪽 얼굴을 잔인하게 찍어 눌러 얇은 피부가 조각나고 연약한 눈알이 터져버린 순간, 그는 도살장의 소처럼 울부짖으며 손을 놓쳤다.

왼손으론 피 흘리는 얼굴을 감싸 안고 오른손은 실낱 같은 희망을 찾아 멀리 뻗었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격류에 휩쓸려 빙글빙글 돌면서, 시신경을 파헤치는 격통과 싸우면서, 하나의 눈동자로 우주의 실체를 목격했다. 참혹하게 찢겨져 구멍 뚫린 벽 너머에는 살아있는 인간의 목을 압도적인 힘으로 조이는 무자비한 진공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갑게 눈물 흘리는 잔혹하고 냉엄하고 허무하고 캄캄한 암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최대의 공포, 죽음이었다.

그에게는 영원이나 다름없었지만 실제로는 1,2초에 불과했던 공포의 순간은 극적인 형태로 막을 내렸다. 안전장치가 작동하며 순식간에 천장과 벽과 바닥에서 격벽(隔壁)이 튀어나와 삶과 죽음을 구분했다. 피가 끓어오르고 수분이 빠져나간 시체와 피갑칠을 하고 벌레처럼 꿈틀대는 몸뚱이를 갈라놓았다. 붉은 비상등이 공포와 혼란이 뒤섞인 관제실을 비추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뱃속까지 뒤흔들었다.

토마스는 흐린 눈을 깜박이며 몸을 추스르려 애썼다. 부러져서 기묘한 각도로 꺾인 다리를 외면하고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다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오른쪽 손목 아래가 격벽에 끼어 무참하게 으깨진 것이다. 정육점의 고깃덩이와 똑같이 새빨갛게 짓이겨진 절단면을 바라보며 그는 핏빛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고 암흑이 엄습했다.

꾸역꾸역 몰려온 승무원들이 정신을 잃은 토마스를 도넛의 의료실로 운반했다. 중환자를 치료할 설비가 없었던 탓에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벌어진 상처를 꿰매고 붕대를 감고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게 고작이었다. 몇 분 뒤에 깨어난 토마스는 머릿속에 새겨진 두려움과 신경을 조각내는 통증을 이겨내지 못해 야수처럼 날뛰었고 의사는 진정제를 듬뿍 주사했다. 그는 다시 기절했다.

시시각각 죽음으로 돌진하는 육신을 살리기 위해 나사의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스페이스 셔틀이 발진했다. 남아 있는 동료들은 관제실을 포기하고 통제실에서 셔틀을 유도했다. 여덟 시간 뒤, 토마스의 몸은 대기권 아래로 무사히 내려갔고, 땅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수술에 착수해, 무려 열한 시간에 걸친 마라톤 수술 끝에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죽은 이들은 거룩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그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헌신과 노력의 상징이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자를 돌보며 우주 정거장을 위기에서 구해낸 사람들에게 최고의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육신에 갇혀 신음하는 영혼은 잠깐의 동정을 샀을 뿐, 그나마도 이내 잊혀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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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만난 것은 5년 뒤인 2070년의 일이다. 궤도 엘리베이터가 정식 운행을 시작한지 4년째 되던 해였고, 내가 공단에 입사한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어린이의 심정으로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자, 한세기 전의 필름 영화에 나옴직한 영국인 집사처럼 고색창연하고 의기소침한 태도로 고개를 수그리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하늘을 향해 달리는 강철의 상자 안에서 그는 비 오는 날 주점에 홀로 앉아 기네스 맥주를 마시는 아일랜드 노인처럼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시간 20분의 지루한 여행을 끝내고 문 밖으로 나설 때, 나를 바라보는 살아있는 눈동자엔 부러움과 두려움이 공평하게 섞였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모터 소리를 내는 오른손을 달고 상처 입은 얼굴에 죽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는 남자를 구경거리로 취급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자연스런 호기심마저 억누르진 못했다. 청소부를 뽑을 때도 학위소지 여부를 따진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깐깐한 인사과에서 불구자를 채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2주일에 걸쳐 중앙 통제실의 설비를 점검하면서 승무원들의 고충을 듣고 의견을 모았다. 처음엔 낯선 애송이 과학자를 경계하고 얕잡아 보는 눈치였다. 나는 업무시간엔 미친 듯이 일하고 남는 시간엔 도넛의 맥주홀로 달려가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제서야 승무원들은 나를 쓸만한 놈으로 인정하고 자신들의 동료로 받아들였다.

몇몇 사람들하곤 허울 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는데, 2등 관제사 바실리 카라트조프는 그 중의 하나였다. 국적은 러시아, 나이는 마흔다섯, 키는 190에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는 건장한 금발 사내였다. 5년 전에는 3등 관제사로 사고 현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는 맥주잔에 담긴 하루 허용량 300cc의 맥주를 한 모금씩 성수를 마시듯이 경건하게 홀짝이며, 미라처럼 바짝 마른 친구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헬멧 안에서 억지로 눈물을 참아야만 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토마스에 관해서 묻자, 투명한 잿빛 눈동자는 보드카같은 우울함에 젖어 들고 일직선으로 굳어진 입가는 차가운 미소로 뒤틀렸다.

"도덕적인 배려라고 보긴 어렵겠지. 그 자식한테 엘리베이터 운전이란 일을 맡기고 '화물 및 여객 겸용 엘리베이터 1등 관제사'라는 겉포장만 그럴싸한 직함을 달아준 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배려야. '궤도 엘리베이터 공단은 여러분을 끝까지 책임집니다, 걱정일랑 부엌 찬장 속에 처박아 넣고 열심히 일하세요! 단, 목숨을 걸고서 말이죠' 라는 말을 웅변하는 존재로 선택된 거라고! 내가 녀석이라면 공단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대신에 일찌감치 퇴직금하고 위로금을 챙겨서 고향에 내려갔을 걸세."

"하지만 그는 아직 젊어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면 그만한 기회를 줘야죠."

내가 그렇게 반박하자 카라트조프는 미간에 깊은 주름살을 잡으며 짧은 한숨에 섞어 본심을 털어놨다.

"자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녀석을 볼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나서 괴로운 걸 어쩌겠나. 녀석은 더 괴롭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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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역사가들이 '혼돈의 시발점'으로 정의하는 21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빅토리아호 북동쪽에 자리잡은 키수무는 케냐의 고만고만한 중소 도시였다. 그러나 궤도 엘리베이터의 '지상탑'이 건설된 이후로는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늘고 규모가 커져 수도 나이로비를 훨씬 능가하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키수무는 평면으론 적도에, 수직으로는 해발 1820미터에 자리잡았다. 연간 평균 풍속은 초당 1.8미터, 기온은 섭씨 18도, 상쾌한 고원(高原)이었다. 빅토리아호의 물길은 우간다와 탄자니아로 이어졌고 잘 닦인 철도망은 아프리카 각지로 가지 치며 뻗어 나갔다. 2035년, 궤도 엘리베이터 공단은 여러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기지]의 건설 부지로 키수무를 낙점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과 자재가 키수무로 흘러 들어 시민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채웠다. 사람들은 번영하는 도시와 풍요로운 삶을 찬양하며 엘리베이터 공단을 위해 건배하고 시 외곽에서 진행되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사를 축복했다.

시계 침은 멈춤 없이 돌고 또 돌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고, 남한과 북한은 고려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동의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제 5차 중동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절반 이상의 영토를 팔레스타인 공화국에 넘겨줘야 했다. 일본에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나 수십만 명이 죽었고,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의 맹주로 부상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다.

15년이란 시간과 수십 조 달러의 자금은 1천 미터 높이의 지상탑 [기지]로 환산되었다. 그것은 탑이라기보단 원뿔에 가까웠고, 숫제 산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공사가 끝난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지의 정수리에선, 중국 북경대학의 재료공학 연구소에서 만든 인장력 150기가 파스칼의 탄소 나노튜브 케이블을 우주 정거장까지 늘어뜨렸다. 평균 너비 1미터의 좁다란 '기준 케이블'을 연결하기까지 다섯 차례의 사고가 있었고 백서른다섯 명이 죽어나갔고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후로는 일본 미쓰비시 공업이 납품한 자동 로봇이 기준 케이블을 쉼 없이 오락가락하며 나노튜브 케이블을 덧붙여 나갔다. 8년 뒤, 로봇의 숫자는 16대로 늘어났고 궤도 엘리베이터의 '통로'는 설계 도면에서 현실로 빠져 나왔다.

그 총합은 평범한 인간들의 상상을 초극했다. 산더미 같은 콘크리트와 철근의 덩어리, 지상탑의 발치에 선 인간은 자신의 왜소함에 절망했다. 아득한 하늘을 일직선으로 꿰뚫는 4개의 새까만 통로를 쳐다보며 자신이 얼마나 낮은 곳에 섰는지를 깨달았다. 존재의 미약함에 한탄하면서도 인류의 위업에 감탄하고 우주의 일부를 실감했다. 그것은 궤도 엘리베이터의 힘이었고 능력이었다.

선진 10개국이 공동 투자로 설립한 궤도 엘리베이터 공단의 최종적인 목표는 월면 개발이었다. 달에 인간이 거주하는 항구적인 기지를 세우겠다는 원대한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기지엔 9만 명이 넘는 사람이 버글댔고 통로에선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날이 없었다.

통로의 단면은 한 변이 25미터 길이의 육각형 모양이었다. 4개의 통로가 벌집 구조로 견고하게 등을 맞댔기에 거센 돌풍에도 위태롭지 않았고, 대전(對電) 처리된 위에 대열(對熱) 코팅을 덧입힌 외장은 10억 볼트의 번개조차 견뎌냈다. 내부에는 고온 초전도체가 빈틈없이 입혀져 높이 40미터, 최대 적재량 100톤의 묵직한 강철 탄환을 우주 정거장까지 쏘아 올리는 코일건의 총신 역할을 했다.

강철 탄환, 즉, 엘리베이터는 평균 초속 100미터로 움직였다. 기지에서 관문까지는 꼬박 96시간이 걸렸다. 각 통로와 엘리베이터에는 시계 방향 순서대로 번호가 붙었는데 1번부터 3번까지는 순수한 화물용이었다. 오직 4번만이 화물과 여객 겸용이었지만, 이마저도 거의 대부분의 공간을 화물을 싣는 데 할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승 공간은 결코 좁지 않았다. 총 720평방미터의 복층 구조로 1층에는 80명이, 2층에는 60명이 탈 수 있었다. 그러나 개통식 때를 제외하곤 만원을 기록한 사례가 없었고 평상시엔 기껏해야 열댓 명이 이용할 뿐이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철저한 실용주의의 산물이었지, 낭만적인 여행을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지상을 내려다보고 머리 위로 추락하는 우주를 쳐다볼 창문 하나 달려있지 않은 무표정한 벽이 몸을 조였다. 밝은 조명이 쏟아지는 천장을 머리에 짊어지고 푹신한 쿠션에 등을 기대면 마치 바닥 없는 늪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옆자리의 사람과 수다를 떨어도,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불안하고 갑갑한 마음이 가실 줄을 몰랐다. 가끔 가다, 아주 가끔 가다 폐소공포증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토마스는 상처 입은 육체를 부둥켜 안고 생기 없는 눈동자로 딱딱한 벽과 대화하며 고독한 마음을 넓지만 좁은 상자곽 안에 쓸어 담았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자살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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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의 최상층에는 엘리베이터 운행을 총괄하는 '관리국'이 있었다. 광장보다 넓은 곳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이 일했는데,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쟝 밥티스트 푸리에였다. 갈색 곱슬머리는 제멋대로 삐쳤고 둥글둥글한 눈은 여유를 잃지 않았고 메기처럼 큼직한 입에선 별의별 농담이 터져 나왔다. 나이는 마흔 다섯, 배가 불룩 나왔고 키는 중키, 느슨한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2급 운행 관리직에 속했으며 엘리베이터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잡아낸 단조로운 영상을 바라보며 햄버거를 뜯어먹는 게 주요 일과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19세기의 옛 과학자처럼 영민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즐겁고 유쾌하고 명랑한 전형적인 프랑스인이었다.

하지만 푸리에조차도 토마스를 언급할 때는 말투가 절로 무거워졌다.

"뭐랄까, 참 안 됐어. 불행한 괴짜지."

"괴짜라뇨? 좀 침울해 뵈긴 하지만, 괴짜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어리둥절해서 그렇게 물었더니 푸리에는 혀를 차며 반문하듯이 말했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수한 축제에 코빼기 한 번 들이밀지 않는 사람이 괴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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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수무에서 첫째 가는 산업은 운송업이고 그 다음은 관광업이었다. 전자(前者)는 엘리베이터 공단의 필요에 의해서, 후자(後者)는 궤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므로 인해 번창했다. 역사적인 불가사의로 공인된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지상탑과 궤도 엘리베이터의 웅대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관광업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거듭했다. 인도인들은 숙박업에 뛰어들고 현지민들은 가이드로 나섰고 급기야는 엘리베이터 공단마저 지상탑의 일부를 관광 코스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키수무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오만 가지 축제를 고안해냈다. 미국 독립기념일 축제, 프랑스 혁명 축제, 중국 통일기념일 축제, 베트남 대미항쟁 승전 축제까지, 낮이고 밤이고 평일이고 휴일이고 가리지 않고 이 거리 저 거리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피켓을 들고 드럼을 치며, 폭죽을 터뜨리고 고함을 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고 또 마시며, 노랑머리 푸른 눈의 서양인과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동양인과 고수머리 흑인이 좁고 넓은 거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며 행진, 행진, 행진하는 것이었다!

공단 직원들에게 있어서 축제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 간주되었다.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타향살이의 설움을 말끔히 씻어 내리기 위해서, 건전한 마음으로 밝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독한 술을 들이키고 낯선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몽롱한 정신으로 호숫가를 떠다니곤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려 연방 공화국 수립 축제에 참가해 내 이름을 잊어먹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딱딱한 길바닥에 콧구멍을 처박고 흐느적거렸다.

고위직과 하위직을 가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공단 직원은 누구나 한 차례 이상 그런 경험을 했다. 오직 토마스 하나만이 예외였다. 그는 모든 축제를 철저하게 무시해 버렸다. 마치 사막의 금욕주의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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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출신의 안나 드 파흐터 박사는 마흔다섯의 조그만 중년 여인이었다. 언제나 입고 다니는 하얀 정장 아래에는 벤치프레스와 역기로 단련된 탄탄한 근육이 숨어 있었고 두꺼운 안경 너머에선 네 개의 공학 박사 학위가 증명하는 깊은 지식이 푸른빛으로 번뜩였다. '기지'의 종합 연구실장이란 직책에 자부심을 가지되 자만하진 않았다. 세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났지만 마음에 묻어두고 내색하지 않았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잉게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는데, 틈만 나면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순진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찬 여걸(女傑)이란 세간의 평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뜻밖에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외톨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정말 불행한 사고였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사람만이 살아남았지." 그녀는 안경을 벗고 가냘픈 손가락으로 건조한 눈가를 비비며 말을 이었다. "나는 토마스를 이해할 수 있어. 혼자라는 게 무엇인지 잘 아니까."

혼자라서, 외로워서, 그래서 미치는 걸까. 화장기 없는 그녀의 맨 얼굴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박사님도 아시겠지만 엘리베이터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아닙니다. 저렇게 살벌한 곳에 사흘 이상 갇혀 있으면 누구라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할 겁니다." 내가 말했다.

"토마스의 정신 상태를 염려할 필요는 없네. 예전에 그를 검진한 정신과 의사가 말하기를, 아침 식탁에 놓을 브뢰첸을 사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는 함부르크 주부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하다는군."

"그 의사는 독일인이었나요?"

"아니, 베트남 계 미국인이었어. 웃기지 않아?" 그녀의 얼굴은 전혀 재미없다는 표정이었다.

"예, 재미있군요. 그 사람은 의사 노릇 그만두고 코미디언으로 나서도 되겠습니다." 나 역시 재미없다는 말투로 빈정거렸다.

"의사 일을 그만두긴 했어도 코미디언으로 나서진 않았네. 지금은 벨기에에서 초콜릿 장사를 하고 있다더군." 파흐터 박사는 엄한 눈빛으로 꾸짖듯이 말했다. "최박사.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오래된 상처는 잘 덮어서 아물게 내버려 둬야지, 뒤늦게 헤집어 봐야 덧나기만 한다네. 게다가 토마스가 1년 내내 거기 틀어박혀 있는 것도 아냐. 가끔 나와서 바람을 쐬기도 하니까, 지나친 걱정은 접어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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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에 걸쳐 통로를 1회 왕복한 엘리베이터는 반드시 정기 점검을 받아야 했다. 수십 명의 기술자와 수백 가지 장비가 엘리베이터 상자를 살피는 데는 꼬박 하루 종일 걸렸고, 그 동안 토마스는 하릴없이 기지 안을 어슬렁거렸다.

최상층 라운지의 푹신한 소파에 등을 파묻고,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케냐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탁 트인 유리창 아래 펼쳐진 쪽빛 호수를 떠다니는 좁쌀만한 배들의 움직임을 멍하니 쳐다볼 때도 있었다. 중국요리 식당의 귀퉁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뜨거운 상어 지느러미 수프를 후후 불어가며 떠먹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뺨의 수술 자국이 S자 곡선을 그리며 일그러졌다.

그는 결코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하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왼쪽 다리를 끌며 보기 흉한 자세로 상반신을 흔들면서 넓은 복도에 불규칙한 발자국 소리를 길게 퍼뜨렸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 정신이라곤 티끌만치도 섞이지 않은, 순전히 자학적인 행동이었다. 모르는 이가 눈살을 찌푸리면 못 본 체 했다. 아는 이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인사를 하면 반쯤 체념한 눈빛으로 맞장구를 쳐줬다. 

그게 토마스가 바람을 쐬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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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뮤엘 머글 박사는 '영국 불독'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한데 허리마저 구부정하고, 나이 예순을 넘긴 얼굴은 형편없이 쭈글렁했다. 뒷짐을 지고서 축 늘어진 입술로 입맛을 다시며 걷는 꼴이 영락없는 불독이었다. 

그나마 불독은 온순하기라도 하지, 사납고 거칠기는 독일산 셰퍼드를 꼭 빼 닮았다. 엘리베이터 공단의 관리이사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많은 원망을 샀다. 등 뒤에는 불평과 험담이 화살 더미처럼 꽂혔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만일 그가 한 나라의 독재자였다면 킬링 필드를 웃음거리로 만들기에 충분한 대학살이 벌어졌을 게 틀림없다. 머글 박사는 갖은 책략과 술수를 동원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의 위신을 과시하기에 딱 좋은 수단이었다.

"복직 신청서를 받았을 때, 이사회의 다른 사람들은 다 반대했지만 나는 끝까지 그 친구를 배려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 "

그는 가느다란 모가지를 꼿꼿이 세우고 이중 삼중으로 겹쳐진 턱을 쓰다듬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나 머글 박사가 '그 병신'의 모가지를 당장 잘라버려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었다는 소문은 결코 가라앉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악의적인 소문일 뿐이라네. 설마하니 그걸 진심으로 믿진 않겠지?"

나는 결코 소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거짓된 충성심을 입증했다. 머글 박사의 얼굴이 기분 좋게 찌그러지면서 가늘게 찢어진 입술에선 켁켁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좋아, 좋아. 그럼 됐어." 그러더니 본래의 거만함을 되찾아 쓸데없는 충고를 더했다. "다른 사람의 일엔 신경 끊게. 여기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거든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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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다라본트, 통칭 '마이키'는 전형적인 미국 흑인 청년이었다. 한쪽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랩 음악에 맞춰 어깨를 엇박자로 들썩이고 탄탄한 근육질의 팔다리를 흥겹게 흔들며 걸어 다녔다. 두터운 입술과 크고 둥근 눈망울에선 웃음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나이는 두 살 아래지만 키는 머리통 하나 반만큼 더 컸다. 일리노이 주립 대학 시절엔 1등 비행사 자격증을, 유럽 우주개발기구에서 연수를 받으며 우주 유영 자격증을 땄다. 불어와 독일어에 유창했고 일본어와 중국어는 대강 말이 통할 정도였다. 지금은 친하게 지내는 케냐인 잡역부에게서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있었다.

마이키는 500명이 넘는 3급 안전 관리 기사 중 하나였는데 주된 업무는 '포드(POD)'라 불리는 소형 비행정을 몰며 대기권내 통로의 외벽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무에 자부심을 가질 법도 했건만,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전 어디까지나 자유인입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거죠."

그리고 토마스에 대해서는 다소 색다른 견해를 내세웠다.

"그 사람도 자유인이에요. 확실해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의문을 제시하자, 마이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우주를 향해 올라가는 사람은 마음이 자유로운 법이죠."

"이봐, 마이키. 엘리베이터엔 창문도 없어. 자유고 뭐고 느낄만한 곳이 아니라고."

"창문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게 아니죠." 마이키는 어깨를 으쓱 했다. "마음이 원한다면 언제든 우주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창문이 없어도 꿈꿀 수는 있다…… 멋진 말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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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승객은 나 혼자였다. 그러나 손님이 한 명뿐일지라도 토마스는 결코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운전은 컴퓨터나 제삼자에게 떠넘기기엔 너무나 소중한 일거리였으니까.

둘만의 공간은 지나치게 넓은 공백이었다. 내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전세 낸 러시아 귀족이라면 토마스는 과묵한 집사였고, 우리는 적막함에 기대어 앉아 함께 침묵을 숨쉬었다. 출발은 아침 9시였고 도착은 나흘 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내 나이는 스물 여덟이고 토마스의 나이는 서른 셋이었다.

오전 내내 선객(先客)이 남겨둔 각양각색의 성인 잡지를 훑어봤고 점심에는 비상용 전투 식량처럼 딱딱하고 맛없는 식사를 우물댔고 오후에는 정체된 시간을 저주하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운전석에 파묻힌 토마스는 계기판의 액정 화면에 떠오르는 무의미한 숫자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웅웅대는 낮은 소리와 규칙적인 희미한 진동이 연출하는 견디기 힘든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것은 대화였지만 과묵한 사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방황하며 스스로에게 말재주가 없음을 원망하는데, 토마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매력적이진 않지만 가슴을 울리는 굵고 탁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부드럽게 타고 돌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답변을 꺼내야 했다.

"아니. 별 것 아닙니다. 아무래도 엘리베이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네요. 몸과 마음이 다 같이 붕 뜬 느낌입니다."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주시했다.

"최박사님이시죠? 서너 번만 더 타면 괜찮아질 겁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사원 명부를 보고 안 겁니다. 이 짓을 하다 보니, 쓸데없는 일에 머리를 쓸 시간이 남아 돌더군요." 토마스의 입가에는 쓰디쓴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흘간 간헐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삼십 대의 미국인과 이십 대의 한국인을 연결해 주는 첫 번째 열쇠말(Keyword)은 고향이었다. 그는 비단결처럼 곱고 푸른 하늘과 아름드리 호두나무가 줄줄이 선 죠지아 주의 농장 정경을 묘사했고, 나는 오붓한 호수를 끌어안은 조용한 도시 춘천의 풍경을 묘사했다.

"소양호는 빅토리아호에 비하면 코딱지만큼 작은 호수지만 아름다움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겨울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빙어 회를 즐기러 찾아오죠. 빙어는 아주 작고 가늘고 투명한 물고기인데, 잡아서 초장에 찍어먹으면 아주 맛있답니다."

토마스는 빙어가 어떤 생선인지 몰랐고 초장이 무엇인지는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알아들은 척 고개를 주억이는 예의를 잃지 않았다.

두 번째 화제는 직업이었다. 나는 난해한 과제와 씨름하는 연구직의 고충을 토로했고, 토마스는 엘리베이터 운전의 요령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올라가는 거든 내려가는 거든, 별 차이는 없습니다. 먼저 엘리베이터의 3중 출입문을 닫으면 자동 점검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점검이 끝나면 관제실 신호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움직이죠. 그리곤 아무 일이 없기를 기원하며 팔짱을 끼고 앉아 있으면 그만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정비반과 안전 관리반 친구들이 일을 제대로 해 준다는 증거겠죠."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보람도 없는 엘리베이터 운전이란 직무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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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한참 기승을 부릴 무렵, 하룻밤을 꼬박 새운 끝에 짙은 안개가 피어올라 넓은 빅토리아 호수를 희미하게 가리고 세상을 꿈꾸고 드높은 탑을 꿈꾸곤 했다. 원주민들은 재수없는 날이라며 외출을 꺼렸고 영국인조차 이런 지독한 안개는 처음 본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 불확실한 길을 더듬으며 호숫가를 산책했다. 끈적이는 공기를 호흡하고 모호한 대지를 밟으면서 나 자신이란 존재를 꿈꾸었다.

그럴 때마다 발을 끌며 풀밭을 거니는 토마스의 모습이 어김없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언가를 찾아 지상의 모든 풍경을 감춰버린 희끄무레한 안개 바다를 헤매었다. 목마름을 채워줄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며 불투명한 대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한밤에 장대비가 쏟아져 호수가 범람하면 싱그러운 아침의 풀밭은 간 데가 없고 온통 뻘 밭이 되었다. 그렇게 애매하고 위험하고 징그러운 진흙탕이 뒤덮인 어느 날, 발을 헛디딘 토마스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요란하게 넘어졌다. 때마침 가까운 곳에 있던 내가 황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사님." 토마스는 머쓱한 얼굴로 진흙이 묻어 엉망이 된 바지를 툭툭 털어댔다.

"이 정도 가지고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겠죠. 그나저나 여긴 진흙 천지군요. 이래서야 멀쩡한……" 나는 '멀쩡한 사람이라도 넘어지겠다'는 말을 겨우 삼키고 다른 말을 꺼냈다. "저기 큰 바위 근처는 단단하더군요. 저쪽으로 가 볼까요?"

"그러죠."

우리는 습한 공기에 싸인 미끄덩한 진흙 길을 피해서 납작한 거북이 등딱지를 닮은 큼직한 바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토마스는 불편한 왼발을 길게 뻗고 무거운 오른팔을 정강이에 기대면서 왼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께선 안개를 퍽이나 좋아하시는 모양이더군요."

"피차일반인 것 같습니다. 저도 관제사님을 이 길에서 자주 봤으니까요."

허여멀건 축축한 공기 너머로, 그의 얼굴에 떠오른 자조적인 미소가 보였다. '화물 및 여객 겸용 엘리베이터 1등 관제사'라는 거창한 직함에 대한 소리 없는 반감이 읽혀졌다.

"뭣 때문에 이런 날에 바깥을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아마도 고향 생각이 나서 그렇겠죠."

아침이면 샛강에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춘천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는 그렇게 싫어했던 안개가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곤혹스럽게 여겨졌고, 그로써 내가 나이를 먹었음을 실감했다.

"게다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골치 아픈 연구 과제나 턱밑까지 쌓인 일거리를 모두 잊어버리게 된답니다. 실마리를 잡는 덴 별 도움이 안 되지만 기분 전환엔 그만이죠."

"기분 전환이라. 그렇군요." 그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관제사님이야말로 뭣 때문에 이런 날씨에 산책을 즐기는 겁니까?"

토마스의 왼쪽 눈은 흐린 날의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지상탑으로 향했고, 그 위로 꼬챙이처럼 하늘을 꿰뚫고 사라진 궤도 엘리베이터를 더듬어 올라갔다. 오른쪽 눈은 그저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길게 뻗으면 손가락 끝이 매몰되어 보이지 않고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희뿌연 안개가 낀 날, 그 안개 속에서 찾을 수 없는 길을 찾아 한 발자국씩 옮기노라면 끝없는 자유와 방종이 허락된 공간을 헤엄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우주…… 그걸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은 기묘한 주장에 나는 면도한 자리가 까실까실한 턱을 긁적이며 엉거주춤했다. 토마스는 멀리 하늘을 따라 우주의 귀퉁이를 엿보며 일방적인 독백을 멈추지 않았다.

"중력이 몸을 붙들고 들이마실 공기와 발 디딜 땅이 있지만…… 전 여기서 우주를 발견합니다. 그곳을 그리워하니까,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니까, 이렇게 허망하고 불완전한 발견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끼며 걷는 겁니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는 지상에서 우주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팔이나 다리가 없더라도, 눈이 하나뿐일지라도, '관문'의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실존하는 우주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곳 직원이라면 누구나 공평히 누리는 권리였고, 그는 누구보다도 자주 '관문'을 드나드는 엘리베이터 보이였다.

"이상한 말이군요, 토마스. 당신은 엘리베이터 관제사 아닙니까? 관문에 올라갔을 때, 잠깐 짬을 내서 바깥을 내다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겠죠. 굳이 여기서 우주를 느낄 필요가 있을까요?"

흑백 영화처럼 무채색하고 꿈보다 불명료한 현실 사이로 침묵이 소리 없이 내달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소리,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 신경과 이어진 오른손이 징징대며 우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토마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왼손으로 핏기가 사라진 얼굴을 쥐어짜고 생기가 사라진 눈으로 삶의 저편을 응시하면서 고통스런 목소리로 뇌까렸다.

"아니, 그건 불가능합니다…… 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두려움에 마비된 허약한 몸뚱이를 강인한 의지력으로 일으켰다. 그리고 내게 미처 말 붙일 틈도 주지 않고 두터운 안개 장막 속으로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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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제인 톰프슨은 의무반의 정신과 의사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지만 겉보기엔 다섯 살 아래 같았다. 언제나 하얀색 정장을 차려 입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프랑스 대귀족의 외동딸처럼 고고하고 기품 있는 태도로 일관하며, 화장을 하지 않은 말끔한 얼굴에서 총명하게 빛나는 다갈색 눈동자로 세상을 관조했다. 밝고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거느린 애인은 한 다스가 넘을 거란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톰프슨은 할리우드의 멍청한 금발 미녀가 아니었다. 루머에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단 빙 에둘러 비꼬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글쎄요, 저와 사귈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가 그렇게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녀와 나는 195층 조망대의 카페테리아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를 나눴다. 신중하고 지루한 탐색 끝에 그녀는 나를 남자친구 후보에서 제외하고 친근한 말동무로 남겨두면서 그 이유를 재치 있게 설명했다.

"진짜 멋진 남자는 마지막까지 아껴둬야 하니까요."

"말만이라도 고맙군요."

괜스레 심술을 부려 봤지만 그녀는 감미로운 미소로 맞받아쳤다.

"어머, 전 진심이란 말이죠."

고향 땅 로스앤젤레스, 화려한 대도시를 등지고 이런 벽촌에 찾아온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채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매혹적인 입술을 아래위로 달싹였다. 

"[스타 트렉] 애청자인 우리 아버지한테서 무의식 중에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지만…… 빨간색 스포츠 카를 몰고 다니는 속물들과 데이트를 하느니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우주를 보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딴은 옳은 말이군요."

내가 선선히 동의하자,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했다.

"여긴 탑이에요. 인간을 지상에서 하늘로 유배 보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탑이죠. 무한대의 암흑을 가로지르는 반짝이는 별빛에 매료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죠. 단단한 땅과 흐르는 강물을 사랑하듯이 아득한 허공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세운 지구라트(주 1)예요." 그러더니 문득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어요. 우주를 그리워하지만 무서워하고, 가고 싶어하지만 갈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이 있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정신 나간 사람이 대체 누구죠?"

나는 짐짓 놀란 체하면서 목청을 높여 물었지만, 톰프슨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황금빛으로 춤을 췄다.

"설마하니 제가 환자의 비밀을 밝힐 정도로 타락한 의사인 줄 아세요?"

천만에, 만일 그랬다면 당신을 경멸했겠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뇌까렸다.

어차피 더 이상의 진술은 필요치 않았다. 답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주 1 : 지구라트 (ziggurat). 메소포타미아의 각지에서 발견되는 고대 건축물. 지구라트의 원래 의미는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성탑(聖塔) 또는 단탑(段塔)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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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외상'을 의미한다.

1미터 높이에서 떨어트린 석고상처럼 충격을 받아 산산 조각난 정신은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심각한 스트레스와 공포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항체를 만들어 대항하는 대신에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예를 들어 뜨거운 불길에 화상을 입은 사람은 성냥불을 보기만 해도 식은땀을 흘리며 도망치곤 한다. 무너진 건물에 갇힌 경험이 있는 사람은 꽉 닫힌 공간에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버스 사고를 당한 사람은 버스에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렇다면 한없는 어둠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팔과 다리와 눈을 하나씩 잃어버린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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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탑은 작은 도시나 다름없었다. 대형 할인 마트와 직원용 사택은 물론, 보육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150층부터 160층까지 차지하는 독신자 사택이었다. 직급에 따라 평수는 차이가 났지만 방 둘에 샤워실 하나인 구조는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토마스의 집은 155층, 5008-2호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엘리베이터에서 보내기 때문인지 집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거의 풍기질 않았다. 낮 시간에 집에 들어오면 커튼을 활짝 열고 넓은 창문에서 뜨겁게 작열하는 아프리카의 태양을 감상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면 피로에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고 불을 켠 채로 잠들었다.

밤이 깊어지면 엘리베이터 안의 조명이 하나 둘 꺼졌다. 승객들은 좌석을 뒤로 젖히고 발을 길게 뻗은 채 잠에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환한 불빛이 쏟아지는 운전석에서 변함없이 불편한 자세를 고집했다. 간혹 고개를 꾸벅이며 졸기도 했지만, 깊은 잠에 빠지기 직전에 용수철처럼 몸을 튕기며 일어나 핏발선 눈으로 불빛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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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리베이터 공단에서 한 명뿐인 고려인 연구원이었다. 다른 고려인들은 관리직을 꿰어차고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나 뒤적이면서, 연구원이 무슨 돈벌이가 되겠냐며 타박하기 일쑤였다. 나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려인 모임에서 멀어져야 했다.

토마스는 단 하나뿐인 장애인이었다. 갈갈이 찢어진 몸뚱이는 혐오의 대상이었고 녹슬고 피폐한 정신은 절망을 빚어냈다. 그는 외부와 단절된 엘리베이터를 피난처로 삼아 몸을 숨겼다.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낮에는 일에 몰두해서, 밤에는 지상탑의 불빛으로 화려하게 물결치며 빛나는 빅토리아호와 소박한 키수무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쓰디쓴 맛의 고독을 삼켰다. 그렇게 쌓인 후천적인 외로움이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겼고 만남이 거듭되어 대화가 중첩되면서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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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아프리카 연합 문학상에 빛나는 케냐의 '계관시인(桂冠詩人)' 모제스 키프로노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보고 느낀 소감을 한 편의 시로써 노래했다. 그의 다섯 번째 영시집 [삶을 회고하며]에 실린 [탑]이란 제목의 작품이었다.



무능한 인간을 조롱하며

지상에서 하늘로 추락하는

오만한 불멸의 탑이여!

 - 키프로노의 [탑] 중에서



토마스에게 그 시를 읊어줬더니 잿빛 하늘처럼 우울한 눈동자가 속삭였다.

"좋은 시입니다만, '불멸(不滅)'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리는군요. 인간의 창조물은 완벽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리곤 얼음보다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단언했다. "궤도 엘리베이터를 가장 잘 묘사한 시는 역시 [오지만디아스]겠죠."



*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로다  

나의 위엄을 보라, 너희 강대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할지어다!

옆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거대한 

허물어진 잔해 둘레에는, 끝없이 황량한, 

쓸쓸하고 평평한 사막이 멀리 뻗어 있을 뿐. 

 - 셸리(주 2)의 [오지만디아스] 중에서



(주 2 : 퍼시 셸리. 영국의 낭만파 시인.)



*

인간이 신을 섬기고 종교를 만들고 철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존경 받는 성인(聖人)은 죽음이 종결이 아닌 해탈이자 열반이자 완성이라 말하고, 우리네 범인(凡人)은 그것을 믿으려 애쓴다. 하지만 애쓸 뿐이지, 진심으로 믿지는 않는다. 죽음이란 그만치 낯설고 불가지(不可知)한 경험이니까……

모든 승객들이 깊은 잠에 빠지고 가늘게 흐느끼는 모터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한밤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운전석 앞자리로 초대받아 토마스가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자신을 옭아맨 두려움의 근원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그날, 나는 누구보다도 가까이 우주에 접근했습니다. 인간이 모래알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무한한 공간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음을 보았습니다. 함께 입사 원서를 내고 며칠 전에는 같이 영화를 보고 방금 전까지 야한 농담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그 속에 맨 살로 내동댕이쳐져 피가 끓어오르고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빠진 육포가 되었습니다. 내 다리는 망가지고 눈은 깨어지고 팔은 끊어졌습니다. 피할 수 없는 파멸 앞에서 피가 얼어붙고 예정된 죽음 앞에서 뇌수가 요동쳤고 마침내 나는 미쳤습니다."

그는 얼굴을 들었다. 밋밋하고 건조한 운전석을 밝히는 노오란 빛은 가짜 눈에 거짓 숨결을 불어넣고 긴 상처에 자기 연민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입술에는 붉고 흐릿한 생동감을 부여했다.

"오직 어둠만이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좁아진 시야로 빛을 보고 천장과 벽을 보고 살아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의사는 제가 정신을 차렸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미쳐 있었습니다."

오른손을 쫙 펼쳐 들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먼저 엄지가 위잉, "1년 뒤에는 인공 관절에 익숙해져서 목발 없이 걷게 되었죠." 다음엔 검지가 우웅, "그 다음 해에는 환상지 통증이 없어졌고 기계 팔에도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나머지들이 순서대로 윙윙윙, 모깃소리였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흘렀죠. 공군 시절의 군번과 직속상관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스페이스 셔틀 조종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내가 투자한 주식이 뭐였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주먹, 반투명하고 미끌미끌한 인공 피부 밑으로 유리 섬유로 짜여진 근육과 듀랄루민 합금의 골격이 비쳐 보이는 주먹, 타고난 주먹보다 강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약하기 그지없는 그 주먹을 단호하게 쥐고, 그는 단언했다.

"그러나, 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혐오, 남아 있는 몸뚱이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 대한 혐오로 전율했고 기계로 만들어진 부분은 그런 몸뚱이에 대한 혐오로 울부짖었고 매연에 물든 뉴욕의 밤하늘보다 암울한 눈동자로 그 모두를 혐오하며, 그는 독백했다.

"저는 우주인이었습니다. 지상을 박차고 대기권을 뚫고 나아가 지구와 달과 태양계의 모든 행성을 보듬어 안고 은하수를 넘나들며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제 희망이고 직업이고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사고 이후로 제 영혼은 공포라는 이름의 주사위 크기만한 감옥에 갇혔습니다. 무한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무중력이란 것을 상상하면 넋이 빠져 나갑니다. 심원한 어둠으로 칠해진 우주는 암흑의 타르타로스(주 3)고 광기로 불타는 별은 지옥 길을 밝히는 횃불이고 진공을 통해 울리는 끝없이 막막한 아우성은 악마가 토해내는 미친 웃음입니다. 거기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요? (목소리를 높여서) 그 저주받은 공간은 삶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숙명처럼 강요할 뿐입니다! 저는 이제 무한에 매료되고 초한에 집착하다 좌절을 맛보고 발광한 칸토어(주 4)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요, 그리고 음울함이 눈을 찔렀다. 알레프 제로, 알레프 원, 알레프 투, 알레……(주 5) 고통과 슬픔과 공포와 분노가 무한히 겹쳐져 노르웨이 해안선만큼이나 복잡한 표정으로, 바닥에 달라붙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는 한탄했다.

"지금의 저는 감히 우주를 꿈꾸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잠드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도, 해야만 했던 일도, 모두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뭣 하러 버둥대며 살아남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죽어버린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들은 영웅이 되었고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으니까요. 멋지게 죽을 기회를 저버리고 추한 꼴로 살아남은 나 자신이 한심할 따름이었죠."

허탈, 모순과 역설의 무게에 지친 어깨를 늘어트리고 발작적인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는 한숨지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보이가 된 겁니다. 여기선 끝없는 허무함을 직시하지 않고서도 우주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창문도 없이 밀폐된 공간에선 우주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곳은 제게 남은 마지막 탈출구나 다름없습니다."

창문이 없어도 꿈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꾸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그를 동정할 수는 없었다. 동정은 연민이고, 연민은 이미 넘쳐날 지경이었다. 다만 위로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건 좋은 겁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희망? 이미 끝난 거나 진배없는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는 냉소적인 의심을 품었고, 나는 어머님의 입버릇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테니까요."

"살아 있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씁쓸한 반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주 3 : 타르타로스(Tartarus).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한 지옥. 명계(冥界)의 가장 밑에 있는 지옥으로, 극악한 중죄인이 떨어진다고 한다.)

(주 4 : 게오르그 칸토어(1845~1918). 독일의 수학자로 집합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혁명적인 무한집합에 관한 연구로 당대 학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84년부터 정신장애를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해 여생을 마쳤다.)

(주 5 : 알레프. 히브리어의 첫 문자로써, 칸토어가 ‘무한’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

*

포드(POD)의 공식 명칭은 'A-24 수직 이착륙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선 언제나 포드로 통했다.

먼 발치서 보면 발딱 일어선 누에고치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지름 15미터에 높이 21미터의 육중한 몸통이 보는 이를 압도했다. 높이 솟은 정수리엔 접이식 덮개가 달렸고 오동통한 중심부엔 화물칸과 조종석이 자리잡았고 밋밋한 바닥은 대형 클러스터 팬 엔진이 둘러쌌다. 최대 적재량은 약 1톤, 이동 속도는 초속 15미터, 상승 속도는 20미터였고 최고 80킬로미터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포드는 크게 화물용 포드와 작업용 포드, 관광용 포드로 나뉘었다. 거의 대부분은 작업용 포드였고 여기엔 '봇(Bot)'이라 불리는 자동 로봇이 가득 실렸다. 잘 익은 수박만한 크기의 봇은 소형 가스터빈 엔진으로 30여분간 비행이 가능했고, 티끌만한 먼지를 분별하는 고해상도 기계 눈과 정밀 작업이 가능한 기계 손으로 통로 외벽의 문제점을 빠르게 찾아내고 정확하게 수리했다. 작업용 포드 조종사 - 마이키를 비롯한 안전 관리 기사들의 일과는 매우 쉽고 단순했다. 포드를 몰고 올라가 점검 지역에 봇을 뿌리고 30분 뒤에 회수해 연료를 채우고 다음 지역으로 옮겨가서 근무시간이 끝날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포드는 대기권 내에서 엘리베이터의 안전을 책임진 감시자였고 봉사자였고 조력자였다. 그리고 탈출정이기도 했다.

상부의 덮개를 열면 10명 정도가 빙 둘러설 수 있는 원형의 공간이 드러났다. 보통 '전망대'라고 불렀는데 바깥으로는 어깨 높이의 난간이 둘러쌌고 바닥엔 화물칸을 덮는 2중 뚜껑이 달려 있었다. 지저분한 적갈색의 화물용 포드는 여기까지 짐을 가득 싣고 항구와 '기지' 사이를 비척비척 돌아다녔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관광용 포드는 여기에 떠벌이 가이드와 어리숙한 관광객을 태우고 1천 미터 높이까지 올라가곤 했다. 하지만 은빛의 작업용 포드는 엘리베이터에 비상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 이 공간을 철저하게 비워 놓았다.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는 여러 가지 있었다. 멀리 처녀자리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던 행성이 폭발할 때 떨어져 나온 파편일지도 모를 유성에 부딪힐 가능성, 예전에는 믿음직한 군사 위성이었지만 이제는 한갓 폐품에 불과한 인공 위성과 충돌할 가능성, 변덕스런 날씨의 산물인 비바람에 삭아들 가능성, 치유할 수 없는 분노로 똘똘 뭉친 인간의 테러로 파괴될 가능성, 그 모든 가능성이 현실이 되어 대기권 안쪽에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정지하는 비상 사태가 일어나면 포드로 옮겨 타야만 했다. 사고 대처방안 매뉴얼에선 그 방법을 간단히 한 줄로 요약해 놓았다.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면 침착하게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탈출구 밖으로 나가 A-24 수직 이착륙기에 탑승한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는 것보다 훨씬 간단해 보였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랬다. 현실적으로는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관제사가 구조 신호를 보내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포드가 날아온다. 엘리베이터는 외벽 케이블 일부를 벌려 2미터 지름의 원통형 트랩을 내보낸다. 트랩이 약 40에서 50미터 정도 사출되면 출구 부분이 아래로 꺾어진다. 포드 조종사가 조심스레 비행해서 여기에 포드 윗머리를 들이밀면, 3중 잠금 장치가 작동하면서 트랩이 단단히 고정된다. 뒤이어 엘리베이터 내부 비상구와 트랩 출구의 해치가 열리면 포드도 덮개를 열고 최대 적재량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의 바르게 승객들을 받아들인 뒤에 꽃을 떠나는 나비처럼 떨어져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승객들이 탈출할 때까지 줄지어 선 포드들이 차례로 트랩에 입을 맞춘다.

매달 5일에는 150미터 고도에서 탈출 연습이 행해졌다. 탄소 나노튜브 케이블은 음탕한 여인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다리를 벌렸고 길쭉한 탈출 트랩은 여보란 듯이 불쑥 튀어나와 맥아리 없이 풀썩 고개를 수그렸다. 포드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트랩에 도킹했고 참가자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이 왁자하게 떠들면서 포드로 옮겨갔다. 연습은 언제나 성공으로 끝났고 모두들 그 결과에 만족했다. 그러나 숙련된 포드 조종사, 마이키는 못내 회의적이었다.

"연습은 어디까지나 연습일 뿐이죠. 정말로 사고가 터지면, 이렇게 매끄럽게 잘 될 리가 없다구요."

불행히도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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