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국 건물에서 남쪽으로 세 블록을 내려가면 시내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넓은 운하가 나타난다. 세 개의 달이 두둥실 떠오른 물줄기에 높은 강둑을 따라 달리는 차들이 흘린 전조등 불빛이 부딪히면 극광(極光)처럼 찬란한 빛을 뿌리며 흩어졌다. 불빛과 별빛, 달빛이 어우러져 춤추는 물 위로 붉은색 구름다리가 길게 이어져 그림 같은 야경을 연출했고, 양 옆으로 세워진 격조 높은 건물들은 운치를 더했다.

구름다리 부근에는 단아한 장식이 돋보이는 12층짜리 석조 건물이 있었다. 높다란 회갈색의 화강암 기둥이 지탱하는 건물, 그 꼭대기에는 [푸른 들]이란 고급 식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은 한 번에 2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형 연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연한 비취색이 감도는 하얀 대리석 바닥은 투명하게 반짝였고 사각형의 테이블은 단정했고 의자의 등받이는 푹신했고 창가에선 도도한 물길이 내려다 보였다.

여기선 겉이 하얗고 속살이 까만 잉야르-에졸 물소 고기를 주재료로 삼는 에졸의 전통 요리를 선보였는데, 최고의 요리를 하나 꼽아달라고 부탁하면 종업원부터 단골 손님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멧실리드'를 추천했다.

멧실리드는 물소 안심을 허벅지만한 두께로 큼직하게 썰어서 비전(秘傳)의 양념 국물에 서너 시간에 걸쳐 삶아 속까지 두루두루 익힌 뒤에 얇게 잘라 검은 쌀밥에 올리고 매콤한 양념을 끼얹어 먹는 요리였다. 단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요리였다. 잘 숙성된 좋은 고기와 오랜 세월에 걸쳐 맛이 배인 양념 국물과 정확한 타이밍을 아는 숙련된 요리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푸른 들]에는 그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스카리인과 세시나, 뮬 소령은 창가에 접한 테이블에 앉아 멧실리드를 맛보았다. 이빨로 씹으면 탄력 있게 끊어지고 혀끝에 올리면 부드럽게 녹는 맛과 한 순간에 입천장까지 불태우는 강렬한 매운 맛, 그리고 감미롭고 달콤한 향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고기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나 부질없고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들은 오직 고기를 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마침내 자기 앞에 놓인 접시를 깨끗이 비운 스카리인은 포크를 내려놓고 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에졸에는 적어도 1년에 서너 번은 들립니다만 이렇게 맛있는 식당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군요. 좋은 가게를 소개해 줘서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스카리인은 공공장소에선 뮬 소령을 '부사장'이란 가짜 직함으로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뮬 소령은, 부사장 에팅거 뮬은, 포크로 마지막 남은 고기조각을 찍어 접시 바닥에 남은 양념을 듬뿍 묻히면서, 접대에 도가 튼 경영자처럼 나긋나긋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다음 번에도 좋은 요리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인 양도 만족하셨습니까?"

세시나는 다른 사람들의 절반에 못 미치는 양을 먹었을 뿐이지만, 매운 요리에는 익숙지 않은지 자그마한 이마가 온통 콩알만한 땀방울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땀을 훔치고 물로 입가심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적게 드신 거 아닌지요?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려면 맛있는 요리를 많이 드셔야 합니다."

"꼭 매운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죠." 스카리인은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정색을 했다. "그런데 부사장님, 항구에서 알시트의 '유령선'에 관해 어떤 소문이 도는지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참 묘한 데 집착하는군요." 뮬 소령은 매운 양념을 두루 묻힌 고기조각을 꿀꺽 삼키고 진한 흑맥주로 입을 씻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그쪽은 제 소관이 아닌데다가, 항구의 풍문은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됩니다."

"믿을만한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소령은 빨간 양념이 묻은 입가를 꼼꼼하게 닦으면서 거무칙칙한 눈동자로 상대편을 지긋이 바라봤다.

뮬: - 아까 말한 대로 웃기는 이야기뿐입니다 -

눈짓과 더불어 온 것은 사념(思念)이었다. 사념을 주고받는 방법은 멧실리드를 요리하는 것보다도 훨씬 단순했고, 그렇기 때문에 훨씬 어려웠다. 한쪽은 말을 하듯이 정신을 집중해 사념을 보내고 다른 쪽은 귀 기울여 듣듯이 마음을 열고 사념을 받아들인다. 사념의 전달과 수용이 가능한 4급 이상의 사념 능력이 필요 조건이고 세련된 화술(話術)은 충분 조건이다.

스카리인: - 어떤 이야기입니까? -

뮬: - 알시트 해역 근방을 항해하다 보면 갑자기 레이더 화면에 질량 불명의 물체가 나타나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는군요. 급히 고개를 들어 육안으로 확인해 보면 반투명한 은빛의 유령선이 스크린을 꽉 채울 듯이 돌진해 오다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는 겁니다. (왼쪽 입가에 잔주름을 잡으며) 항구의 술집을 전전하는 주정뱅이 선원들이 무책임하게 퍼뜨린 뻔하디 뻔한 괴담이죠. 진지하게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

스카리인: - (뮬 소령의 충고를 무시하고 진지하게) 그 배는 군함이랍니까, 아니면 상선이랍니까? -

뮬: - 글쎄요, 그 부분이 좀 애매모호합니다. 십자 연맹의 부호가 몰고 다니는 개인 요트와 비슷해 뵌다는 이야기도 있고 중무장한 전함 같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문득 고개를 숙여 손목시계를 보더니 손을 들어 창 밖을 가리키며) 이런, 저녁 8시가 다 됐군요. 이제 슬슬 구름다리에 점등을 할 겁니다."

정교하고 복잡하지만 신뢰성은 낮은 기계식 태엽장치로 시계바늘을 돌리는, 대단히 예스럽고 값비싼 식당의 벽시계의 분침이 89분에서 0분으로 넘어가며 시침이 8시로 움직였다. 우아한 아치형 교각의 철재(鐵材) 난간에 붙어 있는 등불이 빛을 발하며 붉은 화강암 블록이 깔린 다리 상판을 은은한 주황빛으로 물들이며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길을 희미하게 밝혔다.

차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구름다리는 연인들의 공간이었다. 맨바닥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거리의 악사가 우아한 손놀림으로 현악기를 뜯으며 하늘에 아름다운 악보를 그리면, 손에 손을 맞잡은 남녀가 다리를 건너며 은밀한 말을 속삭이고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어 도시의 야경과 하늘의 달빛을 비추는 거울을 내려다보며 사랑을 나눈다. 소녀는 긴 머리카락 끝을 휘감은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창에 뺨을 바짝 붙이고 앉아 그들에게 축복과 부러움이 섞인 눈길을 던졌다.

스카리인: "(힐끗 바깥을 보며) 꽤 멋진 풍경이군. 세시나,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않냐?"

 - 어쩌면 십자 연맹의 신형 전함일지도 모르겠군요 -

세시나: "(급히 얼굴을 창에서 떼고 어깨를 움츠리며) 아, 아뇨. 아닙니다."

뮬: "저 다리는 이곳 명물이죠. 공식 관광 안내서에도 올라갔을 정도랍니다."

 - 개인적으로 그 가능성은 꽤 낮다고 생각합니다. 알시트 해역은 일반 상선과 여객선에게 개방된 중립 해역입니다. 그런 곳에서 신형 전함을 실험할 리 없겠죠 -

스카리인: - 그렇다면? -

뮬: - 상상력 넘치는 선원들이 표류하는 우주선의 잔해를 유령선이라 지레짐작하고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괴담을 참조해 제멋대로 지어낸 이야기겠죠 -

정신적인 침묵과 실질적인 침묵의 배경에 웨이터의 경쾌한 발소리가 겹쳐졌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나온 것은 눈처럼 새하얀 아이스크림에 달콤쌉싸름한 잉야르-네이졸의 붉은 계피 가루를 살짝 뿌린 후식이었다.

뮬: "(은제 스푼을 들어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맛보더니 입을 열어) 저 다리가 세워진 건 고작해야 1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헌데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선, 세 개의 달이 높이 뜬 밤에 연인과 함께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이 오래된 전설처럼 떠돌고 있더군요. 근거 없는 소문이지만 요행수를 바라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사실 믿어서 나쁠 것도 없는 귀여운 소문이죠. (스카리인을 바라보며)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쉽지 않습니까? 레인 양과 함께 천천히 다리를 건너 보며 경치 구경이라도 하시지요? 삼월야(三月夜)는 결코 자주 오는 게 아닙니다."

 - 다리 끝에서 카디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레인 양을 안가로 데려다 줄 겁니다 -

세시나의 얼굴은 홍당무가 따로 없었지만 스카리인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스카리인: "그것도 괜찮겠죠."

 - 알겠습니다. 당장 가도록 하죠 -

그는 아이스크림 컵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세시나의 팔목을 붙들며 일어섰다.

"가자, 세시나." 그리고 뮬 소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저녁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부사장님."

가녀린 소녀는 오늘의 호스트에게 깊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노련한 중년 사내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답례를 대신하자 그녀의 얼굴에 생긋 때아닌 봄이 피어 올랐다. 하지만 천진한 소녀의 미소는 거친 남자의 손에 붙잡혀 허둥지둥 끌려 나갔다.

또박또박 구둣발 소리가 한동안 귓바퀴에서 맴돌다가 점차 멀어져 갔다. 뮬 소령은 입 안 가득히 관능적인 포만감을 선사하고 혀 위에선 보드라운 단 맛으로 돌변하고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상쾌한 계피 향기를 남기는 아이스크림을 음미하다 말고, 그들이 남긴 아이스크림 컵을 바라보며 눈가에 살짝 주름살을 잡았다.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지 못하고 미친 남정네한테 질질 끌려 다니는 신세라니, 레인 양만 불쌍하군. 이건 같은 나이 또래 아가씨들이 아주 자지러지는 맛인데 말이야. 이 아이스크림을 맛보지 않고 가는 건 범죄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충고해 줄 걸 그랬나?'

그는 아이스크림을 신경질적으로 떠 먹으며 안타까운 눈동자를 깜박이더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열일곱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단 맛을 실컷 본 놈에겐 지나치게 과분한 먹거리야. 저런 놈에겐 달콤한 것보다는 최고로 매운 고추를 처먹이는 게 옳겠지.'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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