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리인은 가볍게 어깨 관절을 돌리고 조종간을 잡은 오른손을 쥐락펴락하며 엄지 부근의 볼과 검지 부근의 휠을 살짝살짝 건드렸다. 쭉 뻗은 막대기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우주선의 상승과 하강과 좌우 롤링을 제어하고 둥그런 볼로 동체를 회전시키고 유연한 휠로 좌우 회전각을 미세하게 조절한다. 과도한 긴장이나 지나친 방심은 절대 금물이고 필요한 것은 얼어붙은 수면처럼 잔잔한 평상심이다.

헤드기어를 쓴 상태에선 구태여 조종간을 손에 쥘 필요가 없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듯이 본능적인 감각으로 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주먹을 휘둘러 탐탁잖은 사람의 턱뼈를 부수듯이 주포와 보조포와 어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게 제일이지.'

사관학교 시절의 혹독한 교육은 전선과 센서가 내장된 금속제 조종간을 여섯 번째 손가락으로 탈바꿈시켰다. 조종간을 움직이는 것은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과 다름없으리만치 자연스럽고 친숙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는 헤드기어를 쓰고서도 여전히 조종간으로 배를 움직이길 고집했다. 다만 생체 컴퓨터와 연동되는 화기 관제 시스템의 편리함과 효율성마저 외면하진 않았다.

 - 선두의 중전함을 주요 표적으로 설정한다 -

백일몽처럼 불분명한 사념의 경계선을 지나, 숫자의 재해석에 지나지 않는 레이더 화면의 한계를 뛰어넘어, 카메라가 잡아낸 실제 영상에 다섯 척의 중전함과 아홉 척의 경전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쪽은 물론 상대편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탓에, 그 윤곽선은 모서리가 흐리멍텅하게 뭉개져 보였다. 그리고 앞장서서 돌격해 오는 전함의 뱃머리에 반투명한 노란 원이 차례로 겹쳐졌다.

- 주포, 보조포 작동 준비 -

가상 공간을 부유하는 보조 스크린에 에카무드의 입체도가 투시되었다. 뱃머리의 회전 주포, 좌현과 우현과 상하갑판의 반회전 주포가 목표물을 향해 머리를 들었다. 각부에 설치된 보조포도 함께 움직였다.

 - 전방 4개 발사관에 유트라이드 14식 충격 어뢰 장전 -

뱃머리 부근에 배치된 어뢰 발사관에 어뢰가 차례로 장전되었다. 번개처럼 날아가 끌처럼 날카롭고 바위처럼 묵직한 탄두로 중장갑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중어뢰는 좁은 발사관 속에서 무한대의 바다로 뛰쳐나갈 순간만을 기다리며 숨 죽이고 웅크렸다.

"접촉까지 앞으로 200초." 세시나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좋아, 이제 불꽃놀이를 할 시간이군."

먼저 중어뢰를 풀어놓고 순차적으로 주포와 보조포를 화려하게 쏘아대며, 적함을 젖히고 순동구로 뛰어든다, 그것이 스카리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사념이, 단 하나의 사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그 계획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 데스, 너라는 얼간이는 아직도 악몽보다 못한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구나…… -

낯익고 익숙하지만 친근하긴커녕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파동(波動), 오래된 상처가 꿈틀대며 악물린 잇새로 짧은 이름이 새어 나왔다.

"렉클……"

무라하이와 렉클, 제둑스의 충실한 개, 간교한 언어와 막대한 뇌물로 순박한 사람들을 구워삶아 앞잡이로 삼고 저항하는 자는 쇠발톱으로 목덜미를 낚아채서 밑바닥 없는 갱(無底坑)에 처넣은 배신자들……

이미 적 함대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왔다. 푸르죽죽한 오뤽의 뱃머리는 상어 주둥아리를 닮았다. 좁은 이마엔 칠흑같이 새까만 십자가가 양각되었고 콧잔등에선 두 문의 회전 포탑이 튀어나왔다. 몸통은 날치처럼 생겼고, 좁은 등에 길쭉한 포신을 짊어졌다. 금방이라도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이 과묵하고 도도하게 행보하는 그들의 모습에 세시나는 어깨를 가늘게 떨며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스카리인은 달랐다. 그는 핏발선 눈으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목청이 터지도록 울부짖었다!

 - 표적 변경, 적 중전함 모두를 표적으로 설정한다. 어뢰 전탄 사출, 주포 발사, 보조포 발사! –

선두 전함을 겨눴던 노란 원이 흩어지더니 화면에 비친 모든 중전함에 하나씩 혹은 둘씩 겹쳐진다. 발사구가 열리면서 어뢰가 빗발치듯 쏟아져 나가고 고출력 레이저 포와 입자 가속포가 연달아 죽음과 파멸을 촉발하는 섬광을 던졌다. 광기(狂氣)어린 살의는 선체 내벽을 감싸고 있는 녹색의 세포체 사이를 야생마처럼 내달리다가 증폭 엔진을 관통하며 막대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허공 속에 뿌려졌다. 어뢰와 포격의 합중주를 등지고 직선을 곡선으로, 사각형을 원으로, 둔각(鈍角)을 예각(銳角)으로 일그러뜨리는 충격적인 사념이 공간을 강타했다.

그것은 하나의 함대가 머문 자리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그 힘은 너무나 간단하게 소멸해 버렸다!

이미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다섯 갈래 사념이 교차하며 어뢰를 우그러트렸다. 플라스마가 폭발하며 탄체가 찢어졌고 탄두는 엉뚱한 방향으로 멀리멀리 튕겨 나갔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며 고열의 빛과 전자기장으로 가속된 입자의 흐름이 휘어지고 꺾어지더니 깊은 심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광포(狂暴)한 사념은 단단한 벽에 부딪히며 나동그라지고 세찬 바람에 휩쓸려 무력하게 꺾어졌다.

그리고 새빨간 적의(敵意)가 모여서 튼튼한 새끼줄처럼 꼬인 사념이 그의 목을 옥죄며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 발버둥쳐 봐야 소용없어. 넌 여기서 죽을 운명이니까 -

 - 렉클, 네놈이야말로 날 쫓아온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
스카리인은 다시 이빨을 갈았고……

 - 내가 널 쫓았다고? 천만의 말씀, 난 여기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야. 지난 2개월간 내가 흘린 미끼를 낼름낼름 집어먹다 덫에 채이고 사냥개에 물려 상처투성이가 된 늑대가 발을 절룩대며 나타날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데스, 이젠 알겠지? 네놈이 얼마나 멍청하고 어리석은 놈인지를! - 소리 없는 도발적인 웃음이 공간을 뒤흔들면서……

적들의 사념이 회오리치며 에카무드를 졸라맸다!

만일 스카리인이 있는 힘껏 그들의 속박을 뿌리쳤다면, 당장의 위급을 피해 앞으로만 달렸다면, 만일 그랬다면, 아주 좁은 틈새를 찾아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전과(戰果)와 초라한 노획품이 자신을 치밀한 함정으로 꾀어 들이는 미끼였다는 사실에 놀라지도 않았고, 황폐한 전투로 만신창이가 된 배를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중장갑함 오뤽-라팔레스의 위용에 겁먹지도 않았고, 다섯 명이나 되는 강력한 사념 능력자의 위협도 무시했다.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뜨거운 분노와 치열한 증오심에 영혼을 내맡기고 조종간을 잡아당겨 크게 만곡하는 곡선을 그리며 절망적인 전투를 준비했다!

"주인님, 왜 그러십니까? 지금은 적 함대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되돌려서 전투를 준비할 때가 아닙니다."

실속 없는 허세를 부릴 때도 아니었고 이득 없는 공격을 할 때도 아니었다. 그러나 광분한 야수에게 냉정한 판단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닥쳐!"

다음 순간, 전방위 스크린이 찬란한 섬광으로 뒤덮였다. 오뤽-라팔레스 함의 아케데우스 5형 입자포와 24식 열선포가 조그만 소행성을 분자 단위로 분쇄시키는 파괴적인 화력을 한 점에 쏟아 붇기 시작한 것이다. 1파, 에카무드는 짧은 반원을 그리고 몸을 비틀며 빠져 나왔고, 2파, 소나기처럼 퍼붓는 포격 사이로 무모한 돌격을 감행했고, 3파, 스카리인의 사념이 확장되며 뜨거운 광파(光波)가 궤도에서 벗어나 어둠의 장막 너머로 퇴장했다.

오뤽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발스레인이 쇠꼬챙이처럼 생긴 경어뢰(輕魚雷)를 거푸 쏘아댔지만 견고한 사념의 방어막에 가로막혀 대나무 쪼개지듯 갈라지며 단속적인 핵폭발의 섬광을 남기면서 자멸해 버렸다. 에카무드는 넓게 퍼진 함대 사이로 진입해 사방팔방에서 덮쳐 드는 사념의 세례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렉클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오뤽과 그 주변의 발스레인을 향해 돌진했다.

죔쇠처럼 조여 드는 사념에 붙들린 발스레인 두 척이 기우뚱 몸통을 기울이더니 바로 옆에 있던 오뤽의 꽁무니에 머리를 처박았다. 탄약고와 연료고가 터지고,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장갑(裝甲)이 녹아 내렸다. 그리고 섬광, 두 척의 전함은 순수한 빛과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충격과 열기, 오뤽의 뱃꼬리(船尾)가 갈래갈래 찢겨나갔다. 거대한 선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 그러나 침몰할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다.

'제길!' 스카리인은 욕설을 내뱉었다. '조금만 더 앞쪽에서 폭발했더라면 완전히 끝장났을 텐데!'

입자포와 열선포, 경어뢰가 우박처럼 퍼부어 내렸다. 에카무드는 몸을 위로 솟구치고 옆으로 비틀고 회전하면서 죽음의 속박에서 화려하게 탈출했다. 세계 최고의 기동력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 테리어스 성단 연합의 중전함 클로벨조차 흉내내지 못할 현란한 움직임이었다.

"세시나, 요격 어뢰의 남은 개수는?" 스카리인이 소리 높여 물었다.

"잔탄(殘彈)은 25기뿐입니다."

"적이 어뢰로 공격하면 요격 어뢰와 사념으로 처리해."

그러자 긍정적인 대답 대신 다급한 외침이 돌아왔다.

"후측방에 있던 적 함대가 상대방위 8-2, 30키엔(약 3600킬로미터) 거리까지 접근…… 포위당했습니다!"

"빨리 사념을 확장시켜!"

세시나가 왼손을 들어 팔걸이의 붉은색 버튼을 누르자 머리받이가 접히면서 헤드기어가 올라왔다. 검은색 헤드기어는 그녀의 양쪽 귓바퀴를 가볍게, 포근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감싸 안았다.

에카무드는 등 뒤를 덮치려는 적 함대를 향해 몸을 돌리며 머리를 곧추세웠다. 레이더 화면은 뒤로 엎어지고 옆으로 회전하며 요동쳤지만 세시나의 눈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추적했다.

"적 함대 어뢰 발사. 전방 함대에서 76발, 하방 함대에서 104발의 중어뢰와 경어뢰를 발사했습니다!"

 - 처리해! - 스카리인은 사념으로 명령하면서 조종간을 당기고 볼과 휠을 굴렸다.

벌떼처럼 달라붙는 어뢰를 피해 에카무드는 불규칙하게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꾸고 요란하게 회전하며 뿌연 가스의 바다를 헤집고 다녔고, 헤드기어에 흡수된 세시나의 사념은 증폭(增幅) 엔진의 힘으로 강화되어 넓은 공간으로 퍼져 나가 단단한 방패가 되었다.

 - 자동 대응에 들어갑니다. 후방 발사구에 요격 어뢰 장전, 발사! -

남아 있는 요격 어뢰 25기가 한꺼번에 발사되고, 그것은 다시 3000발의 요격탄으로 분리되어, 꽈배기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어뢰를 둘러싸는 광범위한 그물을 쳤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요격탄이 촘촘한 그물눈을 그리며 어뢰를 잡아먹기 직전, 30여 기의 어뢰가 빈틈을 젖히고 빠져 나와 에카무드의 꼬리에 바짝 달라붙었다. 눈이 멀듯한 섬광이 번쩍이고 산산 조각난 어뢰의 파편이 벚꽃처럼 흩날리는 사이로, 적함의 입자포와 열선포가 뚫고 들어왔다.

세시나의 사념이 공간을 왜곡시키며 입자와 광자의 흐름이 크게 휘어지며 에카무드의 선체를 얇게 훑고 지나갔다. 뒤를 쫓던 어뢰가 궤도에서 벗어나 서로 머리를 부딪히며, 부서지고, 폭발하면서, 강렬한 충격파가 가스층을 난타했다. 순간적으로 배가 크게 흔들리며 사념의 방벽을 쌓아 올린 벽돌이 무너져 내렸고, 그 틈새로 두 기의 중어뢰와 세 기의 경어뢰가 날아들었다.

 - 적 어뢰가 최종 방어막을 돌파, 이젠 막을 수가 없습니다! -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연상시키는 경고음, 중어뢰가 망치처럼 두들기고 경어뢰가 끌처럼 파고들면서 전방위 스크린의 뒤쪽이 새하얗게 질렸다. 스카리인의 의식에도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몸뚱이가 덤프 트럭에 부딪히는 듯한 충격과 함께, 귀를 찌를 듯한 세시나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발꿈치가 절단된 배는 고개를 떨구고, 거칠게 일렁이는 가스층 위를 비실거리며 날아갔다. 꽁무니에 휑하니 뚫린 구멍에선 귀중한 공기와 무가치한 쇳덩이와 부서진 기계가 아무렇게나 뒤섞여 피처럼 흘러 나왔다.

 - 피해는? - 스카리인은 급히 세시나에게 사념을 보냈다.

반쯤 풀려 있던 소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보조 스크린에 떠오른 정보를 읽으면서 조작 패널 위에서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렸다.

 - 충격 어뢰에 관통 당한 선미(船尾) 외부 장갑의 45%가 파괴되었습니다. 4번, 9번 창고가 유실되고, 20번부터 24번까지의 어뢰 발사구가 손상되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226번부터 242번 블록까지 격벽으로 폐쇄하고 '거품'으로 막고 있습니다 -

스카리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보다 피해가 깊었고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뒤통수에 달라붙은 오뤽은 8척, 발스레인은 14척, 사념은 다섯에서 여덟으로 늘어났다. 뿌리치고 도망갈래야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그 동안의 전과(戰果)는 두 척의 발스레인을 격침시키고 한 척의 오뤽에게 가벼운 피해를 입힌 게 전부였다. 암담해지는 기분이었다.

 - 데스, 엉덩이에 불이 붙은 기분이 어떤가? -
불쾌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고……

 - 꼬리를 물어뜯긴 네놈보다야 훨씬 낫지 - 이를 갈며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고……

 - 잘난 체 해봐야 소용없어. 이제 곧 통구이로 만들어 주마 - 뻔한 도발에……

그는 증오심을 폭발시키며 외쳤다!

 - 죽는 건 네놈이다! -

세포체가 숨가쁘게 빨아들인 사념은 강대한 힘이 되어 방출되고, 끓어오르는 분노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사이로 분출되었다.

"화기 관제 등급을 1-1로 바꿔!"

"화기 관제 등급을 1-1 접근전(接近戰)에 대비한 수동 대응 방식으로 변경합니다."

스카리인은 사념을 제어하는 데 모든 의식을 집중했고 육신은 끝없는 우주로 탈출한 영혼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껍데기로 전락했다. 손끝에서 감각이 사라졌고 목덜미에 흘러 내리는 땀방울의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터질 듯이 고동치는 심장의 리듬에 호응하듯이 꿈틀거리며 맥동하는 세포체의 미끈덕대는 불유쾌한 감촉마저 딴 세상의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꺾이지 않는 의지로 증오심의 원천이 도사리는 스무 남은 척의 함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발사관에 어뢰가 장전되고, 입자 가속기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투입되고, 레이저 발생장치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 세시나, 너는 방어에 전념해라. 나는 지금부터 놈들을 공격한다! -

육중한 전함이 가볍게 고개를 틀면서 집행자를 자처하는 사내의 차가운 사념이 줄지어 선 함대를 압박하고 소녀는 뒤에서 그를 묵묵히 지원한다.

그러나 여덟 명은 너무 많았다.

그들 하나하나의 능력은 스카리인은 물론이고 세시나에게조차 미치지 못했다. 사념 증폭 엔진의 성능에 있어서도 에카무드가 오뤽을 훨씬 앞질렀다. 하지만 낱개의 화살은 꺾기 쉬워도 한데 묶인 화살은 꺾기 어려운 법이다. 이십여 척의 전함과 초일급 사념 능력자 여덟 명을 단 둘이서 상대한다는 것은 사실상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스카리인은 수평으로 펼쳐지고 수직으로 세워진 격자선을 따라 넓게 흩어진 마음을 맹수의 이빨처럼 뾰족하게 곤두세웠다. 집채만한 돌덩이를 조그만 점으로 응축(凝縮)시키는 힘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폭풍우처럼 몰아치면서 공간이 크게 일렁이고 함대의 진형이 어그러졌다.

하지만, 무너뜨리진 못했다!

여덟 갈래의 사념이 한꺼번에 힘을 모아 반격했다. 원호를 그리며 떨어지던 칼날은 순식간에 녹이 슬었다. 티끌만한 손상도 입지 않고 왜곡장(歪曲場)을 벗어난 적 함대는 험악하게 웃으며 창칼을 곧추세웠고 스카리인은 녹슨 칼을 떨어트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고조되는 긴장감을 억지로 삼키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도무지 먹혀 들지 않는군……'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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