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


거리의 황톳빛 포석은 덜 마른 빗물로 싯누렇게 얼룩졌다. 햇빛이 사라진 자리를 먹물처럼 짙은 구름이 빈틈없이 채운 하늘에선 언제 다시 빗방울이 떨어질지 몰랐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살갗에 끈적이며 달라붙었다.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파도에 깎이고 바람에 부서진 절벽처럼 보기 흉하게 무너진 잿빛 돌담길이 숨어 있다. 폭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길이는 반 블록 정도에 불과한 짧은 길이었다. 곳곳에 기괴한 형상으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가 쌓였고 바닥엔 다 타버린 연탄처럼 지저분한 빛깔의 콘크리트 포석이 깔렸다. 그리고 그 위로 규칙적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가 크고 몸집이 건장한 청년이었다. 흐린 날씨처럼 우울한 검정 코트를 걸치고 주머니에 깊숙이 두 손을 찔러 넣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푸른 머리카락을 바람에 내맡기고 녹색으로 번들대는 시선을 길바닥에 처박은 채 걸음을 옮겼다. 고인 빗물을 첨벙대며 짓밟고 너저분한 쓰레기를 사뿐히 걷어차며 스무 발자국쯤 갔을 무렵, 그의 등 뒤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구둣발을 포석 위에 올리는 소리였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오른발로 빗물 안에 반쯤 잠겨 있던 오래된 깡통을 걷어찼다. 빨간 깡통은 데굴데굴 굴러가다 돌무더기에 부딪히며 요란하게 쨍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사내는 오른손을 품 속 깊이 집어넣으며 몸을 홱 돌렸다.

위태롭게 선 돌담 사이로 한 사람이 막 발을 들여놓는 찰나였다. 중키에 몸매가 가느다란 젊은이로, 무릎까지 내려온 암회색 반코트를 입고 머리엔 챙이 넓은 갈색 중절모를 썼다. 눈가와 콧잔등은 모자챙이 만든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푸른 머리칼의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오른쪽은 면도칼처럼 날카롭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각상보다 차가웠다. 왼쪽 이마, 왼쪽 뺨, 왼쪽 턱, 왼쪽은 온통 붉으죽죽하고 울퉁불퉁한 화상 자국으로 뒤덮였다. 왼쪽 귀는 귓바퀴의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고 보기 흉한 검붉은 상처는 목덜미를 따라 어깨까지 이어졌다. 그는 에메랄드처럼 선명한 녹색의 눈동자로 젊은이를 쏘아보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넌 누구지?"

모자를 쓴 젊은이의 움직임이 돌장승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잠시 머뭇대다가 모자챙 쪽으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푸른 머리칼의 청년이 호통을 쳤다.

"움직이지 마! 가슴팍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으니까 서툰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그는 겨드랑이에서 철회색 권총을 뽑아 들고 엄지를 튀겨 안전장치를 풀었다. "무슨 목적으로 내 뒤를 밟은 거냐? 연맹의 스파이냐?"

그러자, 모자 아래 그늘진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떠올랐다.

"데스 스키더 대위님이십니까?"

푸른 머리칼의 사내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이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십자 연맹의 정보부원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죠."

"반대?"

총구가 아주 약간 아래로 내려갔고 젊은이는 모자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벗어 들었다. 짧게 깎은 금발 머리가 흔들리고 맑은 하늘처럼 시원하고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저는 랏스 연합군 정보국 소위, 젤러드 홀스입니다."

"증명해 봐."

푸른 머리칼의 사내는 거칠게 말했다. 홀스 소위는 모자를 왼손으로 움켜쥐고 오른손을 주머니로 옮기며 물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도 괜찮겠죠?"

"물론이지. 하지만 지갑이 아닌 다른 걸 꺼내진 말게. 그랬다간 머리통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저도 아직 머리통이 날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홀스는 가죽 지갑을 펼쳐 들었다. 투명한 명함칸에 랏스 연합의 문장이 선명한 금속제 명함이 끼워진 것이 보였다. 그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스키더 대위님, 이걸 보고도 절 쏘진 않으시겠죠?"

"그게 진짜라면 말이지." 스키더는 총구를 까딱거렸다. "홀로그램을 띄워 봐."

젊은 소위는 명함을 꺼내서 가장자리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랏스 연합군의 상징, 서부 법회의 대천사장, 투명한 유리 날개를 휘날리는 '평화의 날개'가 뭉게구름처럼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홀스의 얼굴과 이름, 계급이 정직하게 표시되었다. 스키더 대위는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권총을 권총집에 돌려 넣으며 비꼬듯이 말했다.

"그래, 홀스 소위. 숨김없이 말해 보게. 내가 은성장(銀星莊)에서 나올 때부터 계속 뒤를 밟은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뭔가? 정보국 소위가 해군 대위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 거지?"

"결코 대위님을 놀라게 할 뜻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모자를 다시 머리에 눌러쓰며 말을 이었다. "실은, 아까 긴요한 볼일 때문에 은성장 호텔에 들렀습니다. 거기 로비에서 우연히 스키더 대위님을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진짜 대위님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뒤를 쫓은 겁니다."

그의 변명에 스키더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진짜인지 아닌지 무슨 수로 확인할 건가?"

"이미 확인했습니다."

홀스 소위가 손에 들고 있던 명함에서 새로운 홀로그램을 비췄다. 한쪽에는 스키더 대위의 홍채 패턴과 성문(聲紋) 그래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거기서 도출된 '해군 대위 데스 스키더'라는 결과값이 나타났다. 으레 붙어 있어 마땅한 가족 사항이나 진급 경력, 전공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대위님의 개인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군요." 홀스 소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중에 정보국 본부에 연락해서 기록을 찾아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래 봤자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걸." 스키더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는 몸을 돌려 홀스 소위를 외면했다. "그럼 잘 가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스키더 대위는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홀스 소위가 다급히 달려와 그의 팔을 붙들며 호소했다.

"대위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제발 제 말을 좀 들어 주십시오."

"자네가 할 말이 뭔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어. 내가 맞춰 볼까? 나더러 바라쿠사로 가 달라고 부탁하려던 거 아닌가?"

"잘 알고 계시군요." 홀스 소위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바라쿠사는 우리 랏스 연합군의 마지막 거점입니다. 그곳마저 잃어버리면 더 이상 발붙일 곳도 없습니다. 지금, 그곳에서 우리 장병들은 한 조각의 땅을 내줄 때마다 열 사람의 피를 받아내겠다는 각오로 싸우고 있지만 물자는 물론 사람조차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특히 해군은 아주 비참할 지경이죠. 그러니까 대위님처럼……"

하지만 스키더 대위는 홀스의 손을 뿌리치며 퉁명스레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나와 내 전함을 제물로 삼고 싶다 이거군."

홀스 소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제물이라뇨? 대위님처럼 경험 많고 노련한 군인이 바라쿠사 방위전에 합류하면 분명히 큰 힘이 될 겁니다!"

"빌어먹을, 그게 바로 제물이 되어 달라는 말이잖아? 저리 꺼져!"

스키더는 벌컥 화를 내면서 손으로 힘껏 홀스 중위를 밀쳤다. 젊은 중위는 좌우로 비틀대며 물러서다가 낡은 돌담 벽에 부딪히며 모자를 떨어트렸다. 엉성하게 쌓인 돌담 틈새로 먼지가 풀썩 솟아올랐다.

"난 희생양이 되고 싶진 않아. 그러니 억지로 끌어들일 생각은 일찌감치 집어 치워."

송곳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뿌리고, 스키더 대위는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척척 큰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홀스 소위는 어리둥절한 낯빛으로 멀거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참수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목을 떨어트리며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들었다. 고운 펠트 천으로 만들어진 멋진 중절모는 새카만 먼지와 썩은 빗물로 더러워졌다. 홀스 소위는 씁쓸하게 웃으며 먼지만이라도 떨굴 요량으로 손바닥으로 툭툭 가볍게 모자를 두들겼다. 그러다가 손등에 뭔가 뚝, 뚝 차갑게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설마, 또?"

가느다란 빗방울이 하나씩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홀스 소위는 어깨를 움츠리며 코트 깃을 여미고 모자를 눌러썼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며 처음엔 콩알 볶는 소리 같던 빗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요란해졌다. 발 밑이 물에 잠기고 턱밑까지 습기로 차오르고 겨드랑이는 끈적거렸고 기울어진 모자챙을 따라 빗줄기가 주르르 눈앞으로 흘러 내렸다.

그리고 쌀쌀한 가을이 떠나가는 것을 전송하는 슬픈 눈물은 거리를 투명하지만 침울한 물빛으로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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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슬론 4 자치구가 테리어스 성단 연합의 슬론 연방에서 행사하는 정치력은 코딱지처럼 가벼웠고 경제력은 발톱에 낀 때만큼도 못했다. 한마디로 변두리였다.

이곳의 중심지는 세 번째 행성인 뷕스 행성이었는데 주요 산업은 농업과 목축이었다. 공기는 맑았고 땅은 넓고 시간은 한가로웠다. 목초지에선 소와 양이 뛰어다녔고 풍요로운 논밭에선 곡식이 자라고 사람들은 팔베개를 하고 누워 느긋하게 세월을 보냈다.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눈코 뜰새 없이 뛰어다니는 도시다운 도시는 오직 하나, 우주항(宇宙港)이 자리잡은 뷕크렌 시(市)뿐이었다. 우주 정거장은 초라하고 궤도 엘리베이터는 너무 낡았고 지상 터미널은 지저분했지만, 이곳이 항구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스키더는 이곳을 즐겨 찾았다. 외진 곳이기 때문에, 한가롭기 때문에, 또는 항구이기 때문에.

여기엔 가장 신뢰하는 정비소가 있었다. 은밀하고 믿음직한 정보통도 있었다. 외지고 쓸쓸한 곳이기에 번잡한 시선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는 이곳의 휴양지에서 해적질에 수반되는 산발적인 교전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귀중한 정보를 수집하고 전함을 수리하며 다음 원정(遠征)을 준비했다.

알시트 14 요새를 떠난 지도 벌써 햇수로 3년째였다. 그는 여전히 혼자만의 싸움을 고집했지만 귀까지 닫진 않았다. 풍문으로 두리뭉실한 전황을 전해 듣고 정보통을 통해 연합군의 상태를 상세히 파악했다.

사실, 제둑스의 군사 정권이 십자 연맹에 무조건 항복하고 합병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랏스 연합군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이드문 제국에 망명한 '정통 랏스 연합 정부'의 지휘를 받는 연합군은 어중이떠중이 패잔병들의 모임이었다. 가지고 있는 장비는 고물이나 다름없었고 탄약과 에너지도 모자랐다. 십자 연맹군의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 앞에서 연합군의 거점은 차례로 함락당해 폐허가 되었다.

'요새 행성' 바라쿠사는 랏스 연합 영토에 남아 있는 연합군 최후의 거점이었다. 연맹군은 석 달 전부터 엄청난 함대를 동원해 마치 오렌지를 쥐어짜듯이 바라쿠사를 압박했다. 랏스 연합군의 대대적인 반격은 기록할만한 참패로 이어졌고 필사적인 저항은 개죽음으로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한 잔의 술과 함께 바라쿠사의 함락이 머지 않았다고 속삭였고, 스키더 역시 그렇게 예상했다.

그는 궤멸 직전의 연합군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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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터미널이 있는 곳에서 버스로 다섯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초라한 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거리가 있다. 길은 좁고 건물은 추레했고 간판은 투박했다. 낮에는 유령처럼 조용하지만 밤에는 흥청망청 떠드는 소리가 요란한 거리다.

여기 술집에선 한 병으로 만취하고 두 병이면 고꾸라지는 독한 막소주를 팔았다. 냄새는 지독하고 맛은 씁쓸하지만 가격은 저렴했다. 밤이 깊어지면 토사물을 게워내고 입에선 악취를 풍기며 쓰러지는 취객들이 길가에 즐비했다.

'초롱불'은 그런 싸구려 술집 중 하나였다. 낡아빠진 3층 건물의 꼭대기에 자리잡은 평범한 술집으로 테이블은 스무 개가 조금 넘었다.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가면 어둠과 함께 장사꾼과 여행자, 불한당들이 찾아와 만원 사례를 이뤘다.

그리고, 스키더 대위는 어두운 구석 자리에 정보통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홀스 소위라고? 전혀 모르겠는데.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

서글서글한 인상에 넉넉한 몸매를 지닌 중년 여인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지만 첩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솎아내는 능력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류였다.

"알레세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일급 정보통 행세를 하겠다는 거야?"

스키더의 핀잔에 알레세스는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었다.

"다 망해 자빠진 랏스 연합 정보국의 소위 나부랭이가 여기서 뭘 하고 다니는지, 그런 걸 궁금해 할 줄은 몰랐지." 그녀는 말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 실례. 네가 연합군이란 사실을 깜박했어."

"아니, 괜찮아." 스키더 대위는 소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 망해 자빠진 연합군 정보부원이 이런 시골 벽촌까지 온 이유가 뭔지 짚이는 건 없나?"

"시골 벽촌이라 미안하게 됐군." 그녀는 투덜거리며 소주를 마셨다. "짐작이야 가능하지. 아마도 군자금 때문일 거야."

"군자금?"

"그래, 알다시피 여긴 예전부터 랏스 연합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던 동네야. 지난 수백 년간, 축산물이나 농수산물을 먹기 좋고 보기 좋게 가공해서 랏스 연합에 수출하는 걸로 짭짤한 수익을 올려 왔지." 알레세스는 한 모금의 소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십자 연맹이 들어서면서 그 거래가 모조리 끊긴 거야.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 그래서 이곳 자치 정부에선……"

"랏스 연합군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한 거군."

"'지원'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냐. 의회에서 지원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말짱 꽝이니까 말이지."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소주를 비웠다. 스키더는 소주병을 들어 알레세스의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통과될 가능성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가능성과 같지. 반반이야. 주지사는 지원 법안을 노골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의원들 중에는 반대파도 적지 않거든." 그녀는 스키더에게 술을 따르며 답했다.

"그래서 몸이 달아오른 랏스 연합이 이 근방에 흩어져 있던 인력을 총동원해서 반대파 의원들의 회유 공작에 착수했다는 말이로군. 홀스 소위는 그 중의 하나일 테고."

알레세스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문제는 말이지, 그 사실을 알아차린 십자 연맹이 정보부원을 대거 급파했다는 거야. 랏스 연합의 떨거지들을 제거하고 반대파를 공고히 규합하기 위해서."

스키더 대위의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알레세스는 소주를 마시고 얼굴을 찡그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소주 맛은 역시 여기가 최고야!" 그녀는 텅 빈 소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보라고, 데스. 지금 이 동네에는 상대방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인간들이 떼거지로 모여들었어. 부글부글 끓어서 언제 넘칠지 모르는 솥과 비슷해. 아주 위험하다고."

"잘 알았네. 가능한 빨리 여길 뜨도록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소주병을 잡았다.

투명한 소주가 졸졸졸 유리잔을 채우는 것을 멍하니 보며, 알레세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야. 대체 바라쿠사의 연합군은 뭘 믿고 싸우는 걸까? 십자 연맹의 막강한 화력 앞에선 그저 고깃덩이가 될 뿐일 텐데……"

"글쎄." 그는 즉답을 회피하고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아마 거기 모인 사람들은 데스, 당신처럼 멍청하고 용감한 사람들일 거야."

"용감하다고? 놈들이나 나나…… 구제불능의 멍청이들일 뿐이야."

그는 차디찬 비웃음을 날리며 뜨거운 불길과도 같은 술을 들이켰다. 단숨에.



은성장의 일급 객실에는 대형 스크린이 비치된 넓은 거실이 딸려 있었다. 웃통을 벗어제친 스키더 대위는 푹신한 가죽 소파에 등을 파묻고 스크린에 비쳐진 광경을 유심히 살폈다.

어두운 바다, 우주 정거장의 크고 긴 부두에 한 척의 전함이 정박해 있었다. 수백 대의 로봇이 흑철빛의 전함 안팎을 드나들며 부지런히 손을 봤다. 부서진 갑판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망가진 기계를 수리하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파 뒤쪽에 놓인 미니 바를 쳐다봤다. 한 사람의 노인이 둥근 의자에 앉아 커다란 유리잔에 담긴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하르라비 영감님, 보조 엔진 수리는 언제 끝납니까?"

스키더가 그렇게 묻자, 노인은 유리잔에서 입을 떼고 시커먼 얼굴 가득히 주름살을 잡았다

"보조 엔진 수리는 내일 새벽까진 끝날 걸세." 그러더니 하르라비는 혀를 끌끌 찼다. "이거야 원, 여기 포도주는 너무 달착지근해서 마실 수가 없군."

나이는 예순 중반, 아스팔트처럼 새까맣고 단단한 피부와 솜털처럼 부드럽고 새하얀 머리카락이 흑과 백의 대조를 이뤘다. 오랜 노동으로 손에는 못이 박혔고 오랜 경험으로 검은 눈에는 지혜가 쌓였다.

"하지만 엔진 제어 장치를 조절하는 일은 로봇한테 맡길 수가 없지. 모레 오전에 마라바르하고 같이 처리할 걸세."

"마라바르? 영감님 조카가 똑똑하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일솜씨도 여간내기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래. 이젠 그 녀석이 나보다 훨씬 낫지." 늙은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한숨을 쉬었다. "난 이젠 완전히 늙었어. 머리는 물론 손도 제대로 움직여 주질 않아."

스키더는 몸을 일으켜 팔걸이에 걸쳐 둔 하얀 셔츠에 팔을 꿰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님답지 않군요. 정비대대의 도깨비란 별명이 아깝습니다."

하르라비는 새빨간 포도주에 비친 자신의 입술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깨비라, 그렇게 불린 적이 있었지. 하지만 이젠 그조차도 까마득한 옛날 일로 여겨지는군."

"시시한 얘기는 그만 두죠. 그보다……"

딩동댕, 딩동댕, 고전적인 벨 소리가 귀를 때리며 말을 끊었다. 스키더 대위는 셔츠 위에 권총집을 두르면서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르라비 영감님, 저쪽 방에 숨어 계시는 편이 좋겠군요."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같군. 룸 서비스일지도 모르잖아?"

"룸 서비스는 아까 왔다 갔습니다. 한 시간 만에 또 올 리가 없죠."

스키더는 살짝 발소리를 죽여 문 앞으로 걸어갔다. 딩동댕, 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 문가에 붙은 카드 크기만한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 밑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빌어먹을, 또 자넨가?"

조그만 스크린에 비친 것은 거무죽죽한 얼룩이 진 중절모를 눌러쓴 홀 소위였다. 스크린 양옆의 스피커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 대위님. 접니다."

"자네한테 볼 일 없으니 어서 돌아가게."

"그럴 수야 없죠."

그 때 하르라비가 나섰다.

"이봐, 데스. 대체 누구길래 그러나? 외판원이라도 찾아온 거야?"

"아니, 그보다 더 지독하죠. 랏스 연합군의 정보부원입니다."

그 말에 하르라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연합군이라고? 좀 들여보내주지 그러나? 여기선 자네 말고 다른 연합군 사람하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체로 없다네."

스키더는 떫은 감을 씹은 표정을 지으며 문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단단한 금속제 문이 조용히 미끄러지듯 열렸다.

"들어오게."

"고맙습니다, 대위님." 홀스 소위는 모자를 벗고 거실로 들어와 하르라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할르 하르라비 상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전 랏스 연합 정보국 소속의 젤러드 홀스 소위라고 합니다."

"반갑네.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나?"

하르라비가 악수를 나누며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그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 걸 알아내는 게 정보부원의 일이죠." 그는 대형 스크린 쪽으로 눈을 돌리더니 눈을 크게 뜨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게 스키더 대위님의 전함이군요! 물론 저건 샤카무트겠죠?"

"글쎄, 어떨까? 샤카무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무뚝뚝한 대위를 대신해서 늙은 정비공이 싱글벙글 웃으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졌고, 젊은 소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응시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샤카무트하곤 다르군요. 몸집은 훨씬 날렵하고, 회전 주포가 넷이나 달렸군요. 잠깐만…… 저건, 패전 직전에 개발이 중단된 샤카무트 837형 아닙니까?"

스키더 대위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팔짱을 끼고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홀스 소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연맹군에게 빼앗기기 전에 자침(自沈)시켰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저건 샤카무트가 아니야." 스키더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에카무드야."

"죽음의 날개? 묘한 이름을 붙이셨군요."

그 때, 하르라비가 그에게 유리잔을 내밀고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감사합니다."

"뭘, 내 것도 아냐. 저 친구 거지. 헌데 정보부원이 이런 벽촌까지 온 이유가 뭔가?"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죠."

홀스 소위는 태연한 표정으로 질문의 답을 포도주와 함께 삼켰다.

"정보부의 일이라 그건가? 그렇다면 그건 묻지 않겠네. 지금, 바라쿠사의 사정은 어떤가?"

젊은 장교의 얼굴이 납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유리잔을 입에서 떼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최악이죠."

늙은 정비공은 포도주를 음미하듯이 마시며 어깨를 움츠렸다.

"별 수 없는 일이겠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는 싸움이니까."

"싸워 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할 수야 없는 노릇이죠."

홀스 소위의 반박에 하르라비는 어깨를 움츠렸다.

"자네야 아직 젊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느니 물러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법이지. 나만 해도 그래. 연합이 망하자마자 여기로 도망쳐 와서 정비소 일을 하고 있거든."

"별로 자랑할만한 이야기는 아니군요."

젊은이는 빈정대듯이 말했고, 늙은이는 담담한 말투로 응수했다.

"나는 목숨 걸고 싸우는 데 지친 늙은이야. 빗발치듯 쏟아지는 포격을 두들겨 맞아 반쯤 걸레가 된 전함에 갇혀 죽을 순간만 기다리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 줄 알기나 하나? 숨막히는 전쟁터에서 아무 탈 없이 몸을 빼냈다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수치스런 일인가? 이렇게 마음 편히, 조용히 살 수 있다는 건 자랑할만한 이야기 아닐까? 얻을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는 무익한 전쟁을 고집하는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하라고 충고하는 게 지나친 참견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홀스 소위는 목소리를 높였다. "바라쿠사의 싸움이 무익하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당장의 패배와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곳을 사수하는 이유는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맹군은 거기서 한 뼘의 땅을 빼앗으려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를 계산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숨으로 놈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안겨주고 있는 겁니다. 그게 어째서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이란 말입니까?"

하르라비의 두껍고 붉은 입술이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그 뒤에는 침울함이 숨어 있었다.

"그러니 자네가 젊다는 걸세. 아무튼 논쟁은 이쯤에서 그만 두세."

"아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갈밭 아니면 모래밭만 계속되는 황량한 벌판에서 총 한 자루로 전차를 상대하는 사람들을, 어둡고 침침한 바다에서 낡은 전투함 한 척에 몸을 싣고 수백 척의 함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늙은이는 젊은이의 성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짧고, 불쾌한 침묵, 그 침묵을 깨고 차갑게 말라붙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보 멍청이들이지."

스키더 대위였다. 홀스 소위는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푸른 머리칼의 짐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악몽과도 같은 눈빛으로 홀스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바보 멍청이라고 했네."

입술이 달싹이며 적갈색의 흉터들이 요동쳤다. 하르라비는 당황한 낯빛으로 그의 어깨를 붙들고 간절하게 타일렀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 데스."

그러나 늙은이의 충고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스키더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언성을 높였다.

"나는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겠네. 자기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는 놈들이 바보 멍청이가 아니면 대체 뭐지?"

그것은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홀스 소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에 든 모자와 유리잔을 내던지며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스키더의 멱살을 움켜쥐고 반대편 벽까지 밀어붙였다. 모자가 펄럭이며 소리 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얇고 투명한 유리잔이 쨍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빛으로 흩어졌고 스키더의 넓은 등이 하얀 벽에 부딪히며 쿵 소리가 났다.

"그러는 당신은 뭡니까?"

바라쿠사의 청옥빛 하늘과도 같은 푸른 눈은 분노로 시뻘겋게 타올랐고 스키더의 셔츠 깃을 붙잡은 손은 노골적인 적개심에 와들와들 떨렸다.

"전 여태껏 대위님을 애국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 겁니까? 당신이 그렇게 잘났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기껏해야 변경(邊境)에서 노략질이나 하는 변변찮은 해적 주제에, 어떻게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을 비웃을 수 있는 겁니까? 뭣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바보 멍텅구리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입니다!"

순간, 스키더의 왼손은 홀스의 양손을 번개같이 낚아채 비틀었고 오른주먹은 그의 명치께에 화살처럼 꽂혔다. 둔탁한 소리와 짧은 비명이 뒤섞이며 홀스 소위의 몸뚱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스키더 대위는 어깨를 들썩이며 두 손을 툭툭 털었다.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게. 나는 받은 만큼 틀림없이 돌려주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예전부터 계산 하나는 확실했거든."

미니 바 밑에서 표주박처럼 생긴 청소 로봇이 튀어나와 웅웅대는 울음소리를 흘리며 깨어진 유리잔을 치웠다. 하르라비는 서둘러 홀스 소위를 부축해 일으켰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괜찮습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허탈감과 낭패감이 뒤섞여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스키더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차분하게 말했다.

"자네는 자네 마음대로 말하게. 날 바보라고 부르든, 멍텅구리라고 부르든, 그건 자네 자유야. 나도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 테니까 말이야."

그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집어 들었다. 유리조각과 먼지를 손으로 대강 툭툭 털어내서 홀스 소위에게 내밀었다.

"그러니 피차 번거롭게 하지 말자고. 자네가 날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을 테니까."

홀스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모자를 뺏어 들며 적의와 실망으로 뒤범벅이 된 눈을 깜박였다. 그곳에 존경할만한 군인은 보이지 않았고 자기 변명에 급급한 해적만이 있었다. 젊은 소위는 싸늘하게 웃으며 조롱하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뭐라고 생각하건 말입니까?"

"그래."

짧고 간단하게 답하고 스키더는 등을 돌려 창가로 다가가 밝고 따사로운 햇빛 아래 넓게 펼쳐진 도시를 관조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감상하듯이, 그러나 그 얼굴에는 환희나 애정이나 감동이라곤 전혀 섞이지 않은 완벽한 무표정뿐이었다.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야!" 홀스 소위는 그의 등에 대고 냅다 소리질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바보 멍청이야!"

그는 구겨진 모자를 펴지도 않고 이마에 대강 걸치고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그는 문을 열기 직전, 다시 한 번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비겁한 바보 멍청이라고!"

스키더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등 뒤에선 스르릉 문이 열렸고, 불쾌한 발소리가 멀어지면서 다시 문이 닫혔다.

푸르른 하늘 아래, 높고 낮은 건물들을 새하얗게 단장시킨 햇살이 창틀에 부딪히며 은빛으로 부서졌다. 그러나 그의 눈은 금속처럼 냉정했다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하르라비였다. 피로와 노쇠가 어우러져 삽시간에 늙어버린 얼굴이었다. 스키더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를 쫓아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늙은이는 대답 대신에 긴 한숨을 내뱉었다. 스키더는 재차 입을 열었다.

"모르겠군요. 달리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요? 달리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하르라비는 유리잔에 반쯤 남아 있던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마시고는 소매로 입가를 쓱쓱 문질렀다.

"나도 모르겠군. 싸움을 피해 도망친 비겁한 놈이 뭘 알겠나? 뭐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겠지."

미니 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스키더는 그 말을 부인하듯이 고개를 크게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영감님이 없었더라면 우리 편 전함들은 일찌감치 고철이 되었겠죠. 영감님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이 먹어 은퇴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진심 어린 위로였다. 그러나 노인은 한차례 헛웃음을 터뜨리며 풀 죽은 얼굴을 떨어트렸다.

"다 지난 일이야. 내가 최전선 정비대대에 복무했던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라고. 하지만 자네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지." 하르라비는 스키더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헌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한 건가? 그렇게 심한 말로 쫓아낼 필요는 없지 않았나?"

스키더는 바 위에 놓인 소형 냉장고를 열어 작은 맥주병을 꺼냈다. 뚜껑을 이빨로 물어뜯고 하얀 거품이 솟아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물처럼 들이켰다. 그는 주둥이에서 입술을 떼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따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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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싸늘하다. 따스한 온기가 섞인 바람이 부는 지상의 밤과는 달리, 우주 정거장의 낮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선 뼛속까지 식어버리는 싸늘함만이 느껴진다.

인공 태양이 꺼진 밤거리엔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은 숫제 유령들의 도시처럼 조용했다. 마치 영원과도 같던 침묵을 깬 것은, 흠집과 패인 자국이 훈장처럼 새겨진 낡고 오래된 고동색 승용차였다. 차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뒤로 흘리고 밝은 전조등을 길게 드리우며 미끄러졌다. 그러더니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길가에 몸을 눕혔다.

문을 열고 내린 것은 홀스 소위였다. 그는 코트 앞섶을 풀어헤치고 밋밋한 콘크리트 블록에 입맞춤이라도 하려는 듯이 허리를 깊이 숙이고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어제 낮에 가졌던 스키더 대위와의 만남이 못내 마음에 걸려 머리가 무거웠다.

그는, 단 한 척의 전함으로 엄청난 규모의 함대를 거느린 십자 연맹에 홀로 대항하는 사나이를 영웅으로 숭배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 사나이는 자신만만하고 패기 넘치는 영웅이 아니라 살아남기 급급한 상처 입은 짐승이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젠장!"

홀스는 분풀이라도 하듯이 때마침 발에 걸린 음료수 병을 냅다 걷어찼다. 투명한 플라스틱 병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잔디밭에 처박혔다. 문득 목을 자라처럼 빼고 멀리 앞을 쳐다봤다. 듬성듬성 들어선 건물 너머로는 지평선이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그리고 높은 천장과, 사방을 온통 둥글게 둘러친 거대한 내벽과, 키는 작지만 옆으로 넓은 창고 건물과, 선착장으로 곧장 이어지는 플랫폼이 보였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쪽이 하르라비 노인장의 정비소가 있는 곳이군. 스키더 대위의 전함은 지금쯤 수리가 다 끝났을까?' 홀스는 혀를 차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 지금 그런 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 넣어야 했다. 반대파를 협박하고 구워삶을 재료를 잔뜩 가지고 있는 공작원과 접선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불투명한 어둠이 양탄자처럼 내려앉은 영역을 관통해 허름한 5층 벽돌 건물로 향했다. 가까운 길가에 선 가로등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떨리는 불빛으로 건물 주변을 희미하게 밝혔다. 1층에는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빈스 운송'이라고 씌어진 간판이 붙어 있었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는 길 건너편의 시계탑으로 눈길을 돌렸다. 칠흑의 스크린에서 노랗게 빛나는 시간은 오전 4시 47분이었다. 약속 시간에서 이미 2분이나 지났다. 홀스 소위는 급히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시계탑 아래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밤 그림자에 녹아들 것 같은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였다.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도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홀스 소위는 본능적으로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는 잽싸게 금속제 문틀에 몸을 붙이고 손을 코트 안쪽으로 집어넣어 권총 손잡이를 잡았다. 꿀꺽, 목울대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들렸다.

'둘, 아니, 셋인가? 조용히 빠져나가긴 어렵겠군.'

잠시 후, 짧은 폭발음이 연이어 울리며 정체된 공기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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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상쾌하다. 산들바람을 타고 온 가느다란 햇빛이 지평선 끄트머리부터 밝히는 지상의 새벽과는 달리, 우주 정거장에선 인공적으로 빚어낸 푸른 빛이 사방을 공평하게 조명한다.

노란 택시 뒷좌석에 앉은 스키더는 차창에서 쏟아지는 건조한 조명이 부담스러운지 연신 눈을 깜박였다. 컴퓨터가 운전하는 과묵한 택시는 침묵에 잠긴 시가지를 말없이 빠져나가 줄지어 누운 창고 건물을 끼고 돌았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화물 플랫폼을 스쳐 지나가며, 완만하게 굽은 내벽을 따라 시원하게 달렸다.

그리고, 택시는 점차 속력을 줄이더니 작은 여객용 플랫폼 앞에서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운전석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 왔습니다, 손님. 요금을 결제해 주십시오."

스키더는 품에서 얇은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 허공에 대고 흔들어 택시비를 치렀다. 문이 닫히기 직전, 로봇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공허하게 소리쳤다.

"안녕히 가십시오, 손님.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십시오."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는지, 택시는 바람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스키더는 멀어져 가는 소음을 등지고 야트막한 플랫폼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눈앞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역사처럼 빛 바랜 구릿빛의 플랫폼 옆에 초라한 고동색 승용차가 바짝 붙어 섰다. 넉넉한 곡선을 그리는 운전석 지붕 위로는 거무튀튀한 얼룩이 진 중절모가 삐죽 솟아나 있었다. 홀스 소위였다. 소위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눈가를 비볐다.

"정비는 다 된 겁니까?"

"아직 멀었네."

스키더는 플랫폼 위로 연결된 철제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홀스 소위는 다시 한 번 하품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전함을 만든 건 에릭 반더빌츠 박사였죠?"

"잘 아는군." 그는 쿵쿵대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반더빌츠 박사와 대위님은 친구였다면서요?"

"에릭. 그래, 녀석은 내 친구였지."

스키더는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플랫폼 위에는 [하르라비 정비공장]이란 입간판이 세워졌고, 그 옆에는 커다란 철문이 붙어 있었다. 그가 문가에 붙은 금속 패널에서 인터폰 단추를 찾아 누르려는 순간, 홀스 소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훌륭한 사람이었죠. 샤카무트 라인의 개발 책임자인 동시에 구국회(救國會)의 간부였고……"

"그런 건 아무 소용 없었어!" 스키더는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몸을 돌려 플랫폼 밑에 있는 홀스 소위를 노려봤다. "그는 죽었어."

불꽃이 넘실대는 성난 눈동자를 피해 젊은 소위는 머리를 수그리며 말했다.

"그 죽음이 아무 소용 없었다는 말이군요?"

스키더는 입을 다문 채, 무겁게 고개를 주억이기만 했다. 홀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이제 나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겠군요……"

그의 몸뚱이는 마치 흰개미가 파먹은 나무 기둥처럼 무너져 내리며 맹렬한 기세로 땅바닥에 부딪혔다. 스키더는 눈을 크게 떴다. 쓰러진 젊은이의 코트 자락 사이에서 선홍빛 핏줄기가 부글부글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인터폰 단추를 누르면서 패널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하르라비 영감님, 마라바르, 아무나 좋으니까 빨리 대답해! "

패널 위에 붙은 조그만 스크린이 켜지면서 졸린 눈을 깜박이는 젊은 흑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키더는 그가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마라바르, 당장 군용 구급 키트를 들고 뛰어나와! 서둘러!"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플랫폼에서 훌쩍 뛰어내려 홀스 소위에게 달려갔다. 평탄한 무채색의 아스팔트 도로에 선명한 붉은색 피가 지독하게 복잡한 추상화를 그리며 번져 나갔다. 아름답지만, 잔혹한 광경이었다.

"어떻게 된 건가? 중위."

스키더는 홀스 소위의 몸을 바로 눕혔다. 코트의 왼쪽 앞자락은 너덜너덜했고 속에 받쳐 입은 방탄 조끼에는 수백 개의 바늘로 찌른 듯한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옆구리에선 조각난 내장이 튀어나와 은빛으로 반짝였다. 단침총에 당한 흔적, 치명적인 상처였다. 젊은이는 고통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띄웠다.

"어떤 놈들한테 당했는지는 알만하지 않습니까?"

스키더는 그의 상처를 손으로 눌러 막으면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마라바르, 하르라비! 빨리 나오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연맹 녀석들이었습니다……" 홀스 소위가 뇌까렸다.

"이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러나 홀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껄였다.

"한 시간쯤 전이었죠. 원래는 공작원을 만날 예정이었는데…… 정보가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세 놈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는 발작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두 녀석은 금방 처리했지만, 나머지 하나를 해치우기 직전에 당한 겁니다. 하지만……"

그는 사시나무 떨 듯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새파랗게 질리고 땀으로 도배를 한 얼굴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스키더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홀스, 이제 그만 좀 떠들게."

갑자기 홀스 소위가 이를 악물고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손을 내뻗어 스키더의 어깨를 붙잡았다. 젊은 생명이 단말마를 지르며 검푸른 빛깔로 꺼져 드는 눈빛, 죽음과 직면한 눈빛, 그 눈빛에 압도당한 스키더는 차마 그의 말을 가로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는……" 젊은이는 또 한 차례 힘겨운 발작을 일으키며 옆구리에서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아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새벽의 푸른 빛이 지워지고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맑고 투명한 푸른 호수처럼 잔잔한 눈동자를 마주보며, 스키더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 것 같군."

격심한 통증으로 무참하게 일그러진 얼굴 한구석에 희미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느리게 상영되는 영화 필름에서처럼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힘들게 입을 열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보기엔 쓸데 없는 죽음이겠지만……"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다음 말을 입에서 내뱉으려 애썼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주파수를 놓친 라디오처럼 말을 잃어버린 머리는 좌우로 잠시 흔들리다 앞으로 푹 꺾어졌다. 스키더는 그를 부둥켜 안고 어깨를 세차게 흔들며 소리쳤다.

"홀스, 홀스 소위!"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는 더 이상 땀을 흘리지도 않았고 피를 흘리지도 않았다. 부릅뜬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멍하니 벌린 입술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죽은 것이다.

플랫폼 위의 철문이 열리면서 마라바르가 뛰어나왔다. 그는 피로 물든 도로와 무참하게 죽은 시체를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녹색 구급 상자를 떨어트리며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맙소사!"

"놀랄 것 없어. 죽었으니까. 이제 구급 키트는 필요 없으니 빨리 경찰이나 부르게." 스키더는 침중하게 말했다.

"맙소사, 우리 가게 앞에서 사람이 죽다니!" 새까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겁을 먹은 마라바르는 막 문을 열고 나오던 하르라비를 붙들고 호들갑을 떨었다. "큰아버지, 저거 보세요. 시, 시체에요!"

하르라비는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세상에나, 홀스 소위 아닌가?" 그는 서둘러 마라바르에게 일렀다. "안에 들어가서 빨리 경찰을 불러!"

마라바르는 문 안으로 도망치듯이 튀어 들어갔고 하르라비는 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해야 피로 흠뻑 젖은 아스팔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를 쳐다보며 한탄하는 것뿐이었다.

"늙은이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젊은이만 자꾸 죽어 나가는군."

구차한 삶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반기는 듯한 눈, 스키더는 그 눈을 감겨 주며 중얼거렸다.

"결국 또 보고야 말았군요."

"뭘 말인가? 사람이 죽는 건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보지 않았나?" 하르라비는 어리둥절해했다.

스키더는 시신을 정중히 바닥에 눕히고 싸늘하게 굳어져 가는 손을 가슴에 포개 얹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처참한 전쟁이었습니다.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그들은 친구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졌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었죠."

"그래. 아무 소용이 없었지."

늙은이는 눈을 감고 괴로운 옛일을 돌이켜 보며 탄식했다.

"지키고자 했던 것이 허무하게 사라지면서 죽은 사람들은 어떠한 보상도 위로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영웅적이긴커녕 쓸데 없는 개죽음이었죠." 그는 시체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일어섰다. "에릭을 끝으로, 로리아를 마지막으로, 저는 더 이상 그런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스키더 대위는 허리를 펴고 넓은 가슴에 수평으로 손을 댔다. 그것은 랏스 연합 해군의 경례였다. 하르라비도 같은 자세로 경례를 했다. 귀청을 때리는 예포 소리도 없고 심금을 울리는 장송곡도 없지만, 그들은 엄숙하게 묵념했다.

"경찰이 수사를 끝내면, 이 친구 장례를 잘 치러 주십시오." 스키더가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건 걱정 말게."

"그리고, 정비는 언제쯤 끝날까요?"

"오늘 오전 중에 제어 장치 조절만 끝나면 다 끝난 셈이지. 연료와 무기는 이미 다 실어 놨다네."

"그렇다면 출항일을 앞당겨야겠군요."

그 말에 하르라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네 설마?"

스키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바라쿠사는 멉니다. 함락당하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죠."

"희생양이 되겠다는 건가?"

"별 수 없죠. 한 명 죽었으니," 스키더 대위의 결연한 녹색 눈동자에 힘찬 광채가 돌았다. "대신에 한 명이 가야겠죠."

하르라비는 큼직한 손바닥으로 스키더의 어깨를 두들기며 쾌활하게 말했다.

"역시, 결국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자네는 언제나 계산 하나는 확실했으니까 말이야."

"아니요, 이건 계산이 아닙니다."

그는 푸른 머리칼을 흩날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인위적인 햇빛이 들불처럼 번진 푸른빛의 금속 천장 너머에서 끝없이, 영원히 계속되는 운명처럼 잔혹한 검은 바다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입술 사이로 혼잣말처럼 뇌까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지 애국자를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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