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분 에피소드를 보니 제가 겪었던 일이 떠오르네요.

두어달쯤 전에, 그동안 신내림으로 인해 구매했던 물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했었습니다.
하루에 직거래 택배거래 3~4개씩 일주일을 팔았으니 장난 아니었죠.
매물 중에 T5라고 팜 계열 PDA가 하나 있었습니다.
물건을 올려놓은 다음날 연락이 왔고, 동네도 가까운지라 별 고민 없이 물건을 팔러 나갔습니다.
물건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팜의 텅스텐 시리즈 단종된지가 좀 돼서 신동급의 물건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연식에 비해 배터리도 쌩쌩한 물건이라 거래에 어려움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했었습니다. 가격 역시 수업료로 시세에서 만원정도 더 빼고 나갔던거구요.

그런데 이 사람 당최 오질 않는겁니다. 전철 세정거장 거리에 있다는 사람이 버스 30분거리에서 오는 저보다 30분을 늦게 도착하더군요. -ㅅ-
전 시간 맞춘답시고 분당에서 퇴근하고 군포 집까지 와서 가방만 내려놓고 다시 약속장소로 나갔던 터라 저녁도 못먹은 상태로 8시 반까지 기다렸습니다.
배는 고프고, 춥고, 기분은 점점 나빠져 가고... 그냥 갈까 생각 굴뚝같이 났습니다.
결국 약속시간에 30분을 늦은 그분께선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하면서 물건 보여달라시네요.
그리고는 꼼꼼히 물건을 체크하시더군요.
아주 꼼꼼히, 버튼까짐, 뒷판 실기스, 액정 실기스 , 케이스 흠집, 스타일러스 펜 흠집(!) 등 하나하나를 저한테 들이대면서 확인을 시킵니다.
그리고 전원을 켜고 어플 하나하나 다 실행 시켜 보고 에러 뜨나 안뜨나 죄다 검사 해 봅니다. 파탈 하나 나면 큰일 날 분위깁니다.
어플에서 별 문제가 없자 이제는 이리저리 뒤집고 버튼을 '두들겨' 봅니다. 눌러보는게 아닙니다.
버튼을 두들겨도 오류가 안나니까 이젠 기기를 뒤집어서 손바닥에 대고 탁탁 쳐 봅니다.
액정달린 PDA를, 그것도 남의 물건을 들고 숫제 내구성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가격 물어 봅니다.
분명히 게시물에 가격 명시했고, 문자 주고받으면서 가격 두번세번 확인해 보고 또 가격 묻습니다.
이정도면 뻔한겁니다. 네고 해 달라는 압박이죠.
암말 안하고 있으니 또 뒤집어가면서 모서리마다 탁탁 쳐 댑니다. 슬슬 짜증이 납니다. 아니 짜증은 아까부터 나 있었죠.
지갑을 꺼냈다가 넣었다가 다시 켜 봤다가 꺼 봤다가...살건지 말건지 말도 안하고 그렇다고 깎아줄 수 있나 물어보는것도 아니고 계속 그럽니다.
바라는게 뻔해보여서 - 그럼 만원 빼 드릴테니 그냥 갖고 가세요 - 저도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 짓을 지루하게도 반복하고 있었죠.
결국 제가 먼저 지지 쳤습니다. 더러워서 팔기 싫어지더군요.

"맘에 걸리시면 사지 마시죠. 맘에 안드시는것 같은데 거래끝나고 반품하네마네 실랑이 길게 하고싶지 않네요."

하면서 기계 뺏어서 박스에 넣고 집에 가려고 하니까 바로 지갑에서 돈 나옵니다.
돈 건네받고 나니 빼앗듯 상자 받아들고 뒤도 안돌아보고 가더군요.
나오면서 시계 보니 9시 15분이었습니다.
기다린 시간 30분에 실랑이같지도 않은 실랑이 45분.
차라리 어러이러하니 깎아달라고 했으면 기분이라도 덜 나빴을 텐데 트집은 계속 잡으면서 네고 제의도 없고 산다 안산다 의사도 뚜렷이 안밝히고 자기 물건도 아닌걸 두들겨 댄걸 생각하니 신경질이 확 나는겁니다.
글 쓰는 지금도 그때 기분이 또 다시 떠오르네요.

그래서 그날 이후론 제가 살때건 팔때건 현장 네고는 절대 안합니다.
내가 생각한 가격과 물건 상태 안맞으면 미련없이 돌아섭니다. 팔때도 생각했던거랑 물건 다르시면 안사셔도 됩니다 하고 바로 들어 옵니다.
거래할땐 거의 제가 그냥 그 장소로 가구요. 이러면 차비 실랑이도 할 일 없고, 거래 결렬된 분도 헛걸음할 일은 없지요.
단돈 일이만원에 인간이 한시간넘게 꾸준히 치사해질 수 있다는걸 깨달은 뒤의 교훈인 셈이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