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키보드를 사모은다.

키보드를 계속 해서 사게 된다. 사고 또 사고, 사고 또 사고. 컬렉션을 만들려고 한다.


2단계 키보드를 팔게 된다.

중고 키보드도 팔린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터에 올린다.


3단계 인두기를 잡는다

납땜 관련 제품을 사면서 몇 번 쓰지도 않을 텐데 이렇게 비싸게 돈을 들여서 사야 하나 고민한다. 조금 지나지 않아 왜 이걸 안 샀지 하는 자책과 함께 납 걸이도 사고 팁크리너 수세미도 사고 인두 팁도 모양별로 사게 되고 쓸 줄도 모르는 테스터기까지 사고 거기다가 페이스트 찌꺼기가 플럭스로만 알았던 오해를 풀고 플럭스와 플럭스 제거제까지 사게 된다.


4단계. 톱과 줄을 잡는다.

공작소가 생기기 전까지 고민했던 톱과 줄. 세이버를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했던 톱과 줄. 공작소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없었다면 지금도 청계천을 헤매고 다녔을지 모른다.


5단계. 전자 부품을 사 모은다.

인두기를 잡기 전까지 반도체는 다 메모리라고 생각했다. 메모리처럼 생기면 반도체고 반도체는 다 메모리라고 생각할 만큼 아무것도 몰라도 전기전자 카페에 가입하게 된다. LED를 사고 저항을 사고 가변저항을 사고 딥스위치를 사고 게이트를 사고 버퍼를 사고 별놈의 부품을 다 사게 된다. LED도 크기별로 색깔별로 모양별로 사모으기 시작한다. 결국, 전자부품도 1단계에 돌입한다. 그리고 사모은 부품을 가지고 전기전자 카페에 물어본다. 이거 어떻게 조립하는 거예요? 물어 볼 때마다 별놈 취급을 받는다.


6단계. 화학제품을 사게 된다.

도색과 윤활의 세계에 빠져들어 화학제품에 눈길을 돌린다. 도색을 위해 프라모델 카페에서 도색 노하우 정보를 뒤지고 윤활과 하우징 개조를 위해 키보드가 아니었으면 관심도 없을 다우코닝, 뒤퐁, 신예츠, 에이씨이 등의 사이트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한다. 급기야 넘치는 화공약품을 이용해 러버돔 개조를 시도한다. 바닥 치는 러버돔, 통통 튀는 러버돔, 충격 완화 러버돔 등등. 러버돔 가지고 별 엽기스러운 짓을 다 한다. 결국, 기계식 키보드보다 러보돔 키보드가 더 많아지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7단계. 보호용품을 사게 된다.  

몸을 보호려고 보호용품을 하나둘씩 사모은다. 납연기를 빨아들이는 제연기를 만들고 줄 질에 날리는 가루를 막아주는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와 화공약품용 마스크를 사게 된다. 개조와 화공약품에 찌든 손을 보호하기 장갑을 사게 된다. 수술용 장갑이면 다 좋은 줄 알고 외과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사게 된다. 파우더 있는 제품과 파우더 없는 제품, 둘 중에 골라야 하는 갈림길에서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는 생각에 파우더있는 제품을 사게 된다. 알레르기와 담쌓고 사는 나에게 파우더 알레르기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화학제품에 찌든 손에 파우더 알레르기까지 겪게 돼 고통에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똥파리 다리 비비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어린이 납치 살인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저 파란 손. 감식반은 뭔데 파란 손으로 쓰레기통도 뒤지고 화장실도 뒤지고 더러운 하천물을 뒤져서 시체를 찾아내지. 급기야 검색에 들어가 파란색 니트릴 장갑을 찾게 된다. 화학성분으로부터 손을 보호해준다는 설명과 함께 파우더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구매를 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키보드보다 키보드 개조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다.


8단계. 뭐가 될지 모르지만 두렵다.
키보드의 세계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외쳐본다. 가지 말자 8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