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델 M을 들고 왔습니다. 82G로 시작되는 시리얼로 95년 제작된 것이더군요. 인기있는 연식은 아닌거 같지만 그래도 모델 M은 다 똑같아~, 라고 자기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거의 새제품의 모델 M의 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사실 모델 M의 키감이 무겁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많은 힘이 들어 가네요. 자꾸 리얼포스와 비교가 되는데...약 3배 정도의 힘을 요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투캉투캉 철커덩하는 소리가 날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고속 타이핑시에는 팅팅거리는 스프링 소리가 기분좋게 들립니다. 손가락에 힘을 쫙 빼고 타이핑하는 것에 익숙해 진 탓인지는 몰라도 키가 제대로 눌려지지 않을 때도 제법 있습니다. 특히 ㅂ, ㅁ,ㅋ 부분이...ㅡ.ㅡ;

그러나저러나  모델 M의 외관은 정말이지 그 주위의 모든 것들을 압도해 버리는 신비로운 아우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략 확장1과 거의 비슷한 가로 세로 폭에 무게는 약간 더 나가는 것 같습니다. 확장1의 단아하고 산뜻한 이미지와는 달리 어딘가모르게 묵직하고 험악한 인상이라고 할까요? 10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견뎌낼 것 같은 강인함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더구나 키캡의 높이가 또 장난이 아니네요.

이러한 이유로 모델 M 앞에 앉으면 전선으로 나가는 병사처럼 약간의 긴장감을 느낍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서 힘빠진 노인처럼 그르릉거릴 수 있었던 리얼포스에 비하면 이 녀석의 카리스마는 대단합니다. 그냥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자꾸만 키를 누르게 됩니다. 모델 M에 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무지막지한 키압의 압박때문에 메인으로 쓰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서브로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경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극과극의 키감을 제공하는 전혀 다른 개성의 리얼포스와 모델 M을 함께 써도 되는 것이지.... 모델 M 앞에서는 이전의 타이핑 자세는 말할 것도 없고 타격의 리듬, 또는 더 중요하게는 정신상태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문제는 키보드를 그 본래 용도의 도구 목적으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유희적 효용성을 강조한 수단으로 취급할 것인가, 로 귀결되는 군요.

최적화냐 분산화냐....무지 갈등됩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기능적인 완성도가 높은 공산품들은 자신의 실용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영적인 단계로 진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도 -해피 해킹 키보드- 하시기를 바라며..

ps : 이곳 키보드매니아에서는 모델 M의 인기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나름대로 개성출중한 아름다운 키보드라고 생각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