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지금까지 키보드의 키감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애플 2로 '카멘 센디에고를 찾아서'라는 게임에 열중 했을 때부터 무려 10년이상 키보드를 똑딱거려 왔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키보드에 관해서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던가 봅니다. 전산학과 다닐 때조차 제게 키보드 미학을 전수해 준 급우가 없었으니 참 황량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썬 스팍2 서버에 붙어있던 키보드를 똑딱여보며 '역시 비싼 컴은 키보드도 다르군'하고 잠시 딴청을 피워본 것이 제 기억에 남는 유일한 키보드 체험이었으니...

다시 생각해 보면 무의식 중에 키보드란 입력장치를 증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10년 이상 컴퓨터를 만지작거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0타 미만의 독수리타법를 사용하고 있는 이 기막힌 사실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386머신에 터보씨 깔때 저는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맥킨토시에 씽크씨를 깔았더랬습니다. 맥을 선택한 이유란 참 단조롭게도 마우스로 커버되는 범위가 꽤 넓다는 것, 그리고 마우스 버튼이 단 하나! 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변의 예비 크래커들이 '마우스는 장난감이쥐~'하고 쓴소리를 해도 휴먼인터페이스의 논리로 귀를 막았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행보가 저를 키보드痴로 만들었으리하는 생각을 자근자근 해봅니다. '하이퍼텍스트 만쉐이~'를 외치며...

그런데 역시 예정된 수순처럼 불행이 찾아오더군요. 몇 년 전 부터 글쟁이 비슷한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컴으로 문서 작성하는 빈도가 늘어가기 시작하자... 키보드는 영감의 원천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사악한 존재로 각인되게 됩니다. 눌러야 할 키를 확인하는 동안 사고의 리듬이 끊어져 버리는 현상...이런 것을 학술적으로 뭐하고 할까요? 저도 모릅니다. ㅡ.ㅡ 결국 손으로 휘익 휘갈겨 쓴 글을 다시 차곡차곡 하드디스크에 옮기는 노동을 반복해왔습니다. 이런 이중고를 해결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었지만 그 해법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타블렛피씨 같은 것에 눈길이 가더군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

그러던 어느 날, 사용중이던 메카닉 키보드의 지존 아론의 키가 눌려지기를 몇차례 거부하는 바람에 저를 무지 화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망연자실.... 키캡의 모서리를 누르면 여지없이 걸리는 그 기분 나쁜 무엇이 흥분을 잠재운 저에게 심오한 각성의 계기를 주었습니다. '좋은 키보드를 사용하면 워드작업할때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그 생각이 충동적으로 몇번의 구매를 감행케 했지만 '키보드란 거기서 거기'라는 맥없는 결론으로 되돌아 오는 반복....

그 와중에서도 '키보드'라는 검색어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써핑하다가 결국 귀향해서 발견하게 된 키보드매니아!  키보드 찬가가 메아리치는 곳. 복음이 전파되는 곳. 키보드에 대한 무한애정이 증식되는 곳. 키보드에 품은 증오를 눈 녹듯 정화시켜 주는.....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 그래도 세상의 키보드란 녀석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더군요.
어떤 소설가가 몽블랑이나 파커 만년필에 집착하듯이, 또는 마라톤 타자기에 집착하듯이  저에게도 궁극의 키보드가 있으려니 하는 기대로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

결론은 '리얼포스101' 이더군요. 바로 중고구매해서 사용에 들어간 후, 지금은 10손가락을 다 이용한 타자법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영문자판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정도로 급레벨업 했습니다. 어느덧 '리얼포스'에게도 애정이 소록소록... 잘빠진 키보드 하나가 비뚤어진 한 인간을 갱생의 길로......라는 것은 오버~고요 ^^, 지금은 문서작성이 매우 즐겁습니다. 그런데..예상치 못한 현상이...

어느때 부터 인가 제가 장터란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 이 예상치 못했던 뽐뿌의 압박~ 도대체 이게 뭡니까. 오디오나 카메라의 뽐뿌도 장난이 아닌데...이젠 전혀 예상 밖의 키보드까지...ㅜ.ㅜ^ 결국 오늘 확장1도 예약했습니다. 올드맥에 연결하려고요...

휴~ 너무 테이크만 있어서 기브를 한다는 취지로 두서없이 쓴 글이 여지없이 길어지고 말았군요. 나중에 또 시간내서 리얼포스랑 확장1 사용기도 올릴 생각입니다. 너무 유명세를 타는 녀석들이지만 뭐 어떻습니까. 리얼포스하고 확장1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지...음 너무 유치한가요? 그래도 재미있겟네요. ^^; 어제는 리얼포스를 노트북에서 메인 컴으로 옮겼습니다. 문서작성 용도로 쓰이는 노트북엔 다시 새로 키보드 하나 더 달아줘야 겠습니다. 얼마동안은 장터란을 계속 기웃거릴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