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아끼는 마음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키보드매니아'란 동호회 사이트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고 있다가 최근 키보드에 관해서 서칭을 하던 중 우연하게 발견해서 회원 가입 바로 하고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었다.
'정말 앞서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꾸준히 이루면서 인생의 한 칸을 만족이라는 단어로 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며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키보드매니아'라는 동호회 사이트에 매일(?) 들어오고 있다.

정말 여기서 얻어가는 것은 많다. 특히 키보드를 아끼는 입장에서 키보드를 어떤 의미에서는 컴퓨터보다 더 아끼는 입장에 있는 나를 주변의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다.

이것은 처음 내가 고향인 경주에서 매킨토시를 구입해서 지방에선 극복하기 힘든 그 많던 현실속에서도 꾸준히 매킨토시에 대한 정보(심지어 판매회사의 팜플렛 하나까지도 스크랩하며 아끼던 마음)를 하나라도 더 구하고자 철마다 전시회에 혼자 5시간을 달려 서울에 전시회에 참석하여 구경하고 구걸하다시피 정보를 열심히 모으며 다니던 나의 모습을 다른 친구들이 하던 말.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일 뿐이다. 왜 그리도 컴퓨터에 애정을 쏟느냐? 그 컴퓨터를 가지고 도대체 넌 무얼 하는거냐? 결국 해 놓은 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등의 말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매킨토시는 인간적인 면이 있고, 내가 애정을 쏟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그런 친구들의 비웃음(?)을 꿋꿋히 극복해 오고 있던 나다. 그때는 DTP 있었으니....

또 난 엉뚱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 순간 키보드에 빠져 있었던 것.
갑자기 남들은 몇천원이면 구할 수 있던 키보드가 나한테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남들이 5천원 1만원이면 구할 수 있던 키보드가 나는 10만원이 되고, 7~8만원이 되었던 것.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무선마우스와 남들이 하지 않던 광마우스에 대한 환상, 그리고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시작된 인체공학키보드 등등...
아예 이것은 밖으로 내세울 수 없었던 남들이 보면 낭비투성이의 일들. 심지어 가족마저도 이렇듯 압박의 말을...
"또 샀나? 키보드. 아니 삼성키보드 있는데 뭐할라고 샀는데? 이번에는 얼만데?"
"...."
"얼마주고 샀는데?"
"으~ 음~ 대충 10만원 정도..."
"뭐? 10만원? 1만원도 아니고 10만원? 어이구~ 10만원이면 지금 애들한테 들어갈 돈이 얼만데, 지금 10만원이나 주고 키보드에 낭비를 한단 말이고?"
"...."

그렇게 시작된 키보드에 대한 환상. 결국 생활비의 압박때문에 그 모든 걸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구입가격의 2/3가격으로라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입장...
결국 인체공학을 포기하고, 2004년 8월 28일 집사람의 용인하에 7천원짜리 ABSOLUTE Thin III를 구입했다.

사실은 그 옆에 있는 3만원짜리 ABSOLUTE MechanicalX 가 무지 가지고 싶었지만, 몇번 두들겨 보고 마누라 눈치보니 눈꼬리가 휘어져 올라가는 모습과 함께 은근히 턱으로 옆에 7천원짜리를 가리키는 바람에 모든 걸 접고 그기에 감지덕지 7천원으로 낙찰.

간만에 이걸 구입해서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기며 기계식에서 느껴야 하는 감촉을 대충이나마 느끼고자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옆에 있던 MechanicalX의 환상이 떠나질 않는다. 갈수록 Thin III의 감촉이 미워진다.
끝의 두리뭉실함이 기계식 Mechanical X에서 느꼈던 딱딱 끊어지는 맛에 정말 ...

그래도 삼성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이크로소프트의 길기만 한 이름 'Microsoft Intelligent Wireless Optical Pro' 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아파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늘 불만이었던 그 키보드의 찝찝함(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니었던)을 잊혀졌다. 그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키감도.

7천원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비싼 10만원이상의 키보드를 찾아 환상속에서 떠돌았던 내 모습이 못내 안타깝게 느껴진다.
지금 내 손가락은 무지 행복하다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속에선 끊임없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사용기나 소개글 정도로만 쓸려고 했던 이 글이 이렇게 길어졌는지도.... ㅎㅎㅎㅎ
비록 특수키인 '파워키', '슬립키', '웨이크' 키가 엉망으로 작동해도 좋다. 그냥 키감으로 대충 만족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