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 소개를 드리자면 의무소방으로 복무중인 휴학생입니다.
이 의무소방이 육군이 받는 월급 이외에 수당이라는 것이 (정확한 명칭은
아닙니다. 이발비라던가 목욕비라던가 기타등등을 소규모로 운영되는 의무
소방내에서 집행하기 힘드니 니들이 알아서 써라 - 라고 하면서 나눠주는
것이지요) 나와서 한달에 통장으로 도합 5만원 정도가 입금이 됩니다.

저는 담배를 안피웁니다. 술도 사회에 나가서 맥주 한두병 정도 마시는
것이 전부이고 군것질조차 안합니다. 고로 날이날이 갈수록 통장에 돈이
쌓이지요. 한달에 5만원이면 그렇게 큰 돈은 아니지만 반 년 쯤 지나면
무시못할 정도가 됩니다.

이런 여건에 PC 관련기기에 관심이 지대하니 월급은 모조리 PC 부품 펌프질
하는데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IBM X20 이라는 노트북을 써 본 후로 그
독특한 키감에 반해 넓직하고 타이핑하기도 좋은 데스크탑 키보드를 버리고
리포트건 뭐건 장문의 글이라면 전부 노트북으로 써 댔기에 좋은 키보드에
대한 갈증은 언제나 넘쳐흐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KBD매니아 같은 사이트를
알게 되었으니 월급이 모조리 새 나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난해에 여자친구가 미국에 1년간 연수를 가길래 꼭꼭꼭 IBM 키보
드를 구입해달라고 애원을 했건만 무심하게도 귀국할 때 빈손으로 와버렸습니
다. 예전에 compuhat 인가 하는 쇼핑몰을 우연히 찾은적이 있었지만 살인적
인 바가지에 두손 두발 다 들어 버렸었고, 나는 고급 키보드와는 인연이 없는
존재이구나~ 라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 술로 허우적 ..  은 아니고 구입 포기
를 하고 지내던중 케이벤치를 통해 체리 키보드와, 키보드 매니아를 알게 되
었습니다.

PDA 팜 군이 저를 유혹하고, 로지텍의 트랙맨 양이 제 눈앞을 가려 체리 키
보드 구입을 저지했지만 결국 좋은 키감에 대한 굳은 의지를 어찌하진 못했
습니다.

그래서 구입을 결심. 통장에는 136,725 원이 남아있길래 만원을 여자친구에게
갈취, 146,745원의 총알을 장전했습니다. 아이 모 쇼핑몰의 체리의 압박 배너
를 누르고 나도 구입이라고 감동하며 구매 버튼을 누르니 뜨는 메시지, 키보드
자판을 선택해주세요. 헉, 하면서 4000원을 더 보탰습니다. 배송란에 가보니 배
송 요금으로 4000원이 더 붙더군요. 가슴이 철렁 했습니다. 그리고 입금주를
보고 또한번 쇼크를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은행이라니요, 하나은행이라
니요. 138,000 원에서 146,000원이 된 것으로 모자라 은행 수수료까지 붙어버
리게 된 것입니다. 은행 수수료가 800원이면 결재 실패가 되는것이고, 500원이
면 구입 가능이 됩니다.

은행 이체 버튼에 마우스를 올리고 모니터를 끄고 버튼을 꾸욱 누른 후 다시 모
니터를 누르니 146,500 원이 빠져나가있고 잔액 245원이 뜨더군요.

아아, 과다출혈이 있었지만 그정도야 몸으로 다시 석 달만 때우면 차는 돈. 감동
의 도가니 속에서 다음번 펌프질 목표인 로지텍 트랙맨을 향하여 오늘도 열심히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