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쳐보면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적어도 제 주관은 그렇네요.


축전식 키보드야말로 치다 보면 가장 빠르게 손이 저리는 키보드입니다. 리얼포스 30g이나 노푸ec108등의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요. 45g 이상의 무접점 방식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보다 훨씬 빠르게 손이 저린 키보드라고 느낍니다. 손목이나 손등이 저리다는 게 아니라, 손 끝이 무감각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같은 키 압력을 가진 키보드라도, 피라미드형 스프링이 내장된 러버돔을 쓰는 무접점 방식과, 스프링이 연결된 축을 쓰는 기계식 방식은 손이 체감하는 압력이 다릅니다. 45g의 무게추를 사용해서 45g의 축전식 키와 기계식 키를 누른다면 모두 바닥까지 눌리겠지만, 30g의 추를 사용해서 축전식 키와 기계식 키를 누른다면 축전식은 입력이 안 되는데 기계식은 입력이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기계식 축의 키 압력은 키 스트로크 도중에도 큰 변화가 없이 거의 일정하며 축의 특성에 따라 미미한 수준의 걸림이 생길 뿐입니다. 이건 축 내부의 스프링과 별개로 뻗어 있는 걸쇠가 걸리는 것이며 잘그락 거리는 느낌을 전하긴 해도 압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접점 방식은 스프링이 내장된 러버돔을 쓰는 덕에 키 스트로크가 중간 지점으로 갈수록 손가락이 전해야 하는 압력이 체감될 수준으로 커지고, 어느 정도 이상의 압력이 스위치에 전해졌을 땐 겨우 겨우 버티고 있던 러버돔이 허물어지며 덜컥 하고 바닥을 칩니다. 이 언덕을 오르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듯한 압력의 변화를 우리는 '구분감'이라고 느끼며, 손이 저리는 원인은 여기에서 옵니다.


키 하나만 살살 눌러보셔도 느끼실 수 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는 키를 누르다가 입력이 인식된 지점에서 바닥을 치지 않고 중간에 손을 떼실 수 있는 반면, 무접점 키보드는 키를 인식이 가능한 지점까지 누르려고 하면 키가 안 눌러지고 버티고 있다가, 덜컥, 허물어지며 구분감을 줌과 동시에 바닥을 내려치게 됩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빠르게 바닥에 '찍힌' 키는 키에 붙어 있던 손가락 끝에 약간의 진동을 전해줍니다. 경미한 진동이지만 장문을 빠르게 타이핑 하게 된다면 손 끝에 만만치 않은 저림이 옵니다. 기계식 청축 키를 하나만 눌러보면 소리가 높지 않다고 느끼지만 직접 고속 타이핑을 해보면 상당한 소음이 되듯이 말입니다.


구분감이 기계식 리니어 축 수준으로 약한 축전식 키(리얼포스 30g)의 경우엔 이런 현상이 거의 없습니다. 손가락에 들어가야 하는 힘이 크게 변하지 않으며, 키가 빨리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바닥을 치는 충격도 거의 없지요. 하지만 키를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 구별도 안 될 정도의 구분감과 압력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흑축 키보드는 키의 압력으로나마 눌렀음을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