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국민일보에 키보드 관련 스토리가 1면 전체에 실렸습니다. 그중 재밌는 기사를 하나 올려드립니다. ^^; 기자분이 기사를 참 잘 쓰셨더군요.. 꼭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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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能書不擇筆)’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은 당나라 초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구양순(歐陽詢)이다. 그는 왕희지의 글씨체를 계승하여 익힌 후 자신의 개성을 담은 솔경체(率更體)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서예가와는 달리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아 더 유명해졌다.

- 디지털,그리고 아날로그의 상생
- 10m거리의 ‘무선시대’가 오다

하지만 그 역시 붓을 가릴 땐 가렸다. 행서(行書)를 쓸 때는 그 글씨에 맞는 붓을 선택했고 초서(草書)를 쓸 땐 또 다른 붓을 선택했다.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조잡한 붓으로 글씨를 쓰더라도 그의 대가다운 경지에는 변함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어느 붓이든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릴 땐 가리자.’

이것이 전문 타이피스트인 나의 슬로건이다. 나 뿐만 아니라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 자판,아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작업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누구나 해당된다. 소설가나 번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의 교수,교사는 물론 상당수 직장인들도 포함된다.

대부분 PC에 부속처럼 딸려 나오는 6000∼7000원 상당의 키보드를 쓰는 사람들은 가끔 ‘가릴 땐 가리자’는 나의 슬로건을 낭비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왜냐고? 나는 이보다 20배 정도 비싼 키보드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마우스로 대부분 일을 해결하고 그저 어쩌다 한두 번씩 키보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이렇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능률도 오르기 때문에 이것을 쓰지 않을 방법이 없다’.

키보드를 잘못 선택해서 오랜 시간동안 작업을 하면 당장 손가락에 무리가 오고 곧 손목에서도 이상신호가 나타난다. 손목의 이상신호를 방치하면 어깨와 목으로 옮겨지고 심지어 어깨를 넘어 허리까지 충격이 미쳐 운동장애나 마비가 오기도 한다. 소위 ‘VDT 증후군’의 일종인 경견완 장애다.

엄청난 양의 타이핑 작업을 할 때는 손의 느낌,소위 ‘키감(key感)’이 능률을 크게 좌우한다. 손이 리듬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키감이 좋으면 일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지만 키감이 나쁘면 쉽게 피로해지고 손에도 무리가 온다. 한 장의 필름에 해당 문자 전극을 올려놓고 이를 연결시켜 입력하는 방식의 일반 키보드와 달리 내가 쓰는 ‘기계식’ 키보드는 모든 자판에 별도의 스위치가 들어가 있어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탄력을 느끼게 해준다.

그 정도로는 20배나 비싼 키보드를 쓰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는 수 없다. 사실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이에게는 키보드는 그저 키보드일 뿐이고 ‘딸깍’거리는 소리나 탄력적인 손가락 느낌을 오히려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불편을 느꼈거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이들이 있다면 한 번 키보드에 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그런 고민을 했던 이들 중 제법 많은 이들이 키보드를 바꿈으로써 상당히 만족해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키보드는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방식으로 처리되는 PC 환경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주변기기다. 디지털 기술은 비록 필름에 전극을 올려놓는 방식의 전자식 키보드를 내놓긴 했지만 아직 인간의 손으로 이를 두드리는 아날로그 환경까지는 바꾸지 못했다. 키보드에는 0과 1의 조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정승훈기자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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