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컴퓨터를 장만한 것은 20년도 훨씬 전에 구입한 286 AT모델이었지만 이때는 별다른 사용도 없이 방치해두었기때문에 실제로 무엇에 써본 기억은 딱히 없었네요.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95년도에 뉴텍 586을 구입해서 리포트도 쓰고 게임도 하고 했었는데 이게 아무래도 첫 PC 같은 느낌이 있군요. 특히 이때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내추럴키보드를 처음 내놨을 때였는데 가격이 꽤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 옵션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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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특이한 디자인의 키보드를 만지게 되면서 키보드라는 물건에 대해 조금은 특별한 감성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보기에만 남달랐던 게 아니라 실제로 타이핑을 하면서 처음에는 어색하고 점점 익숙해지다가 다른 컴퓨터에 달려있는 키보드를 만지면 오히려 불편한 느낌을 받게되는 그런 과정들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가지 PC며 노트북, 타블렛 PC 등을 접하게 되지만 그것들이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렇게 여러가지 물건들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유일하게 키보드와 마우스는 비교적 구체적인 사용감이 남아있습니다. 체리 ML4400은 느낌이 얕으면서도 정확한 뉘앙스가 있었고, 해피해킹 라이트는 키보드가 부드럽다는 느낌을 주었고, 리얼포스는 그냥 채팅으로 수다를 떨더라도 웬지 내가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는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할 만큼 전문적인 사용감을 가지게 하더군요.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 결과 해피해킹의 미니멀한 레이아웃과 리얼포스의 키감의 조합을 뛰어넘을 만한 것은 더이상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을 수가 있었죠. 그러는 와중에 유난히 키보드에 집착을 하고 물건에 유별나게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개인적인 체감의 정도를 남들에게 설명할 방법은 없었고 남들의 눈에는 괜히 비싼 물건에 집착하는 별난 인간으로 비쳐지기도 했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싼것이 최고는 아니라는 겁니다. 각각의 키보드들이 가진 개성과 개인들의 취향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무궁무진해 보이니까요. 불과 몇년전만해도 이제는 키보드들이 더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까지도 넘쳐나는 아이디어와 제작기법들을 보면 그게 섣부른 생각이었던 것 같네요. 더군다나 꽤 여러해전에 알게된 키보드매니아 동호회가 발전을 거듭해서 회원님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의 공유와 구현의 장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키보드매니아의 무궁한 발전을 빌면서 짧은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