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PC에 더 좋은 입력기기를~!!]


얼마전 벼르고 별러서 컴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원래 집 한구석을 지키고 있던 구 컴은 거실로 나와

나름 멀티미디어 PC로 변경되었고(말이 좋아 멀티미디어지 집사람이 1겜 더블맞고 할때 씁니다...)

지난 가을 내내 "더 좋은 PC에 더 좋은 입력기기를~!!"이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언젠가 저희 형님의 컴에 물려있던 아범사의 모델 M을 생각해내기에 이르렀죠.

(언젠가 타이핑을 해봤는데 특유의 소리와 손에 착 달라붙는 키감은 정말 맘에 들더군요...

그게 모델 M인지도 몰랐었고... 여하간 어디서 누가 쓰다 버린것같은 낡은 키보드를

사용하고있는 저희 형님이 그저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기왕이면 새거 구입해서 쓰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키보드에 관해 이곳 저곳을 서핑하다가 우리가 흔히 쓰는 키보드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기계식"키보드가 제가 찼던 바로 그 키감을 구현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어, 지난 봄 형님의 생일선물로 리얼포스 101을 주문했던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시는 바로

그 온라인 쇼핑몰을 들어가서 눈팅하길 며칠째...



'흠... 같은 기계식 키보드도 이렇게 천차만별이구나...'

'흠... 이건 저렴하지만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다네...쩝...'

'이건 너무 번떡거려서 쫌 유치해보일것 같다...'

'미니키보드는 집에서 쓰기엔 쫌...'

'이긍... 가격으로보나 뭘로 보나 이게 맘엔 드는데 한글 인쇄 옵션이 없네..ㅜㅠ'

'이건 너무 비싸지 않을까?? 마눌이 알면 나 죽는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샌가 제 손은 체리 넌클릭 블랙 콤보를 결제하고

있더군요...(마눌한테 혼날까봐 로지텍 무선 키보드 마우스 세뚜도 함께 구입했습니다. 뭐가 일케

비싸냐고 호통치면"그게 당신 키보드랑 마우스가 무진장 비싸~ 내껀 걍 서비스로 껴주는 정도야~~"

라고 둘러댈 요량으로 말이죠...)



[기계식 키보드에 눈을뜨다]

"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이소리는 3484의 키보드 소리입니다.)

한바탕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3484가 예의 육중한 무게감으로 제 모니터 앞을 장식해주었고,

한동안은 아주 만족을 하면서 살았더랬습니다. 컴맹인 저를 위해 자주 저희 집을 드나들던 아는

형님도 "야~ 고것참 서걱서걱거리는 맛이 쥑인다~~"라고 신기해 하셨고...

그렇게 올 가을이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이때까지도 제 익스플로어 즐겨찾기엔 키보드 매니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여전히 아범사의 모델 M이 주는 타이핑의 행복은 찾을 길이 없더군요.

다시한번 인터넷을 뒤적뒤적... 회사에서 쓸만한 "클릭"키보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종종 회사에선 시끄러운 키보드를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하시는분들 계십니다만... 그런 점에선

전 축복받은 겁니다. 회사에 유일한 컴퓨터가 오로지 제 차지거든요... 저 외엔 아무도 컴을 건

드리지 않으십니다. 모두들 연세들이 지긋하셔서요^^)

아마 이때부터인듯 싶습니다. 키보드 매니아를 알게 된것이 말이죠. 모델 M은 이미 국내에서

신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마침 세진 키보드가 눈에 띄였고, 국산 키보드임에도 착하지 못한 가격이 마음에 걸렸습니다만,

키보드 매니아의 수많은 고수분들이 적극 추천해 마지 않으며 나름 키보드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

에겐 수집 1순위 품목이라는 말을 믿고 다시 한번 클릭~클릭~!!



세진 1080. 정말 좋습니다. 키를 누를때 어느정도의 위치에서 손가락 뼈로 느껴지는 "또각!"

소리는(물론 클릭스위치를 가진 기계식 보드가 가지는 공통된 특성이겠습니다만...)

정말 재미있습니다.문서작업 이외에도 윗분들 몰래몰래 하는 웹서핑중에도 무작위의 키를 살짝살짝

눌러대기도해보고...

여하간 뭔가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더군요..



[여전히 모델 M을 그리워하다]

열심히 일하고 있던 어느날.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다시 형님의 집을 찾게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느라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는 통에 비어있는 형님의 방을 조용히

들어가 보았습니다.



평소 어마어마한 컴퓨터 매니아로 지금도 그쪽분야에서 일을 하고있고 컴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최강,최고의 하드웨어를 자신의 유일한 이상으로 알고있는 사람답게 저희 형님의 방에는

이런저런 신기한 물건들이 정말 많습니다.

장식장을 기웃거리다가 지금은 리얼포스 101에게 메인의 자리를 넘겨준 빛바랜 IBM model M이

예의 육중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하고 있더군요.



조용히 손가락을 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브라운 아이즈의 "언제나 그랬죠"를 흥얼거리며

키보드 자판으로 튕겨보기 시작했습니다.(군에 있을때 브라운 아이즈의 1집 앨범을 엄청 좋아라

했었습니다. 행정병으로 있으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풀때는 한글 새창을 열어서 저 노래를 타이

핑하곤 했었습니다. 타이핑 연습도 하고 마음도 가라앉히고... 지금도 가끔 저러고 열을 식힙니다.)

키보드 타이핑하다가 술 한잔 생각나면... 저 중증인거죠??



[유니콤프를 기웃거리다]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키보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모델 M은 일반적인 기계식 스위치를 이용한

기계식 키보드가 아니라는 점, 그렇다고 멤브레인도 아니라는 점. IBM특유의 버클링 스프링 방식의

키보드는 현재 유니콤프라는 회사에서만 생산하며 현재 국내에선 구입이 어렵고 굳이 구입을 하려면

저 물건너 본사에 주문을 해야 한다는 점...



구글 검색창을 띄우고 유니콤프를 입력했습니다. 역시나... 저의 짧은 영어실력으로 그 물건을

구입한다는건 힘들겠더군요. 거기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배송료도 그다지 메리트 없어보이고...


영어 잘하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볼까 하다가도 괜시리 키보드 하나땜에 여러사람 불편하게

한다는 욕들어먹기가 싫어서(제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합니다.) 걍 꾹꾹 참았습니다.

하지만 컴을 켜고 한번, 끄기 전에 한번, 집에가서 또 키면서 한번, 또 다시 끄기 전에 한번...

워우... 이건 완전히 피를 말리더군요...



[형보다 똑똑한 아우 없다]

어느날 형님을 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죠...

"M을 나한테 넘겨."

형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더군요.

"싫어."

그리곤 자신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야기 하더군요.

"이러저러한 이유로다가 저 M은 너한테 못준다. 이해해라."

풀이 죽어있는 제게 형님 말씀하시더군요.

"키보드 매니아 장터란에 모델 M 많이 안올라오니?? 거기 되게 자주 올라오던데??"

ㅇ.,ㅇ;

허구헌날 키보드 매니아를 들락거렸음에도 장터를 한번도 안들어가봤습니다.

문제는 로긴의 귀찮음...(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장터는 블라인드 되죠^^;)

이긍...

그 다음 날부터 제 컴이 키보드 매니아는 언제나 자동로긴이 됩니다.


장터 눈팅을 열심히 열심히 하면서 대충 모델 M의 시세도 알아보고 여타 다른 모델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모델 M이 매물로 올라왔습니다~!!

..만 이미 다른 분께서 예약을 하셨고...

판매자께서 올리신 다른 모델 M이 눈에 띄더군요. M5-1...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하셔서 다른 구매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으신게 오히려 제겐 행운이

됐습니다. 거기다가 가격도 매우 저렴했고...

컴을 앞에 두고 몇시간을 고민하다가 결국 문자를 날리고 리플로 예약~!!

두근두근... 설레이더군요.ㅎㅎ



[나가는 말]

오늘 오전중에 저희 회사로 모델 M5-1이 배송되어왔습니다.

꼼꼼하게 포장된 걸로 봐서 판매자분의 배려가 느껴지더군요.

무엇보다 놀란건 키보드의 상태입니다. 하우징 벌어지는것 제외하곤 아주 깨끗합니다.

그나마 하우징 벌어지는건 키보드 손에 들고 치는거 아니니 크게 사용하는데 지장 없고

그 흔한 흠집하나 안나 있더군요. 게다가 케이블도 신품수준입니다.

제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ㅎㅎ


이제 더이상 키보드와 관련된 지름신은 없을 듯 하네요.

이 글을 빌어 정말 좋은 녀석 분양해주신 "잉비"님께 감사 드리며

이만 초보 키보드 맨은 이만 글을 줄이려 합니다.

모두 해피한 타이핑 즐기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