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간만에 자게에 글 남기네요.

26~27일까지 휴가를 내서 이틀째 빈둥빈둥거리고 있는데, 넘흐 좋군요.
돈으로 돌려받지도 못할 휴가인데 왜 그렇게 못 써왔는지 후회가 됩니다.
(저희 회사는 남은 휴가에 대해서 돈으로 보상해주지 않는답니다.-_-;;
그러면서 휴가가면 엄청 눈치주고, 제 업무성격상 잘 빠지지도 못하죠.
그래서 연차휴가의 절반가까이 남았다는...제길슨...)

하루 죙일 시체놀이하다가 (어제 친구넘이랑 새벽녘까지 달리느라고요...)
오늘 2주전에 약속한 소개팅을 위해 약속장소인 광화문에 갔습니다.
교보빌딩 1층에 있는 식당인데, 상대 여자분께서 아는데가 거기뿐이라고 해서 거기로 갔습니다.
저역시 광화문은 거의 모르는지라 상대 여자분께 맞춰드렸습니다.(묻어가기...)
근데, 상호를 모르고 인터넷 검색해도 안 떠서 예약을 못한 관계로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서 대기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대기걸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담배피고 통화하고 와서,
제 차례까지 얼마남았냐고 물어보는데, 대기자 명단 속에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 보이더군요.
바로 제 앞의 대기자분 성함이 2년여전에 헤어진 여친의 이름이더군요.
"XX혜"
하도 흔한 이름이다 보니, 그당시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팀에 있는 계약직 여직원분 성함도 똑같은 이름입니다. 거래처에도 똑같은 이름이... 쿨럭...)

그런데, 차례가 되었다 싶을 즈음(소개팅 상대 여자분이 15분 정도 늦게 와서 그때까지 제 옆에 안 계셨었습니다.) 자리 생겼다고 대기자 이름을 호명하는데, 그 이름을 부르더군요.

지금도 잊지 못할 그 이름...
그러나 아무리 호명해도 나타나질 않더군요.

예약대기할 당시 직원에게 앞뒤 안보고 달려가서 예약해 달라고 하고 나서 바로 담배를 피러 나갔던 게 생각나고,
담배피고 통화하고 10분 넘게 밖에서 시간을 보냈었던 걸 떠올리며,
혹시 그 친구가 제 모습을 보고는 피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른 분이고, 대기시간이 길어 다른 식당으로 갔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도 말이죠.)

문제는 그런 느낌이 계속 절 지배했다는 거죠.
소개팅 상대분이 늦게 오는 동안 밖을 계속 확인하는게 상대분이 오는 걸 확인하는게 아니라
옛 여친이 근처에 있을까 아닐까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상대분이 왔음에도 저는 상대분에게 눈을 맞추면서도
시선을 돌리는 척하면서 다른 테이블에 옛 여친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이는 이성을 계속 탐색하고...
자리를 옮겨 이동하는 중에도, 2차 장소인 카페에서도 좀처럼 탐색을 그칠 줄 몰랐죠.

한번 과거의 미련에 파묻히고 나니 바로 앞의 이성분은 그냥 현재의 짐이 되버리더군요.

오늘 만난 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그렇다고 좋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옛 여친의 잔광속에 묻힌 관계로 더이상 만날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분명히 제 옛 여친보다 못했으니까요. 더 나았다면 몰입하고 후일을 기약했겠죠.
세월 지날수록 관계의 업그레이드가 있어야 하는데, 과거의 여친을 상회할만한 인연도 생기질 않고,
참 힘드네요...

주변분들은 제게 눈높이를 낮추라 하지만, 상상 속의 그대도 아닌 실제로 만나고 사겼던 이보다 못한 이를
택하라는 건 아직 심정상 청춘인 제게 너무 가혹하네요.

여튼, 참 오늘 묘했습니다.

제가 만나고 만날 이들이 과거의 스쳐지나간 인연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현재의 제 자신이 옛날보다도 못하다는 자책적인 회환도 들고,
왜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는지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이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철들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강박...

아놔... 왜 이렇게 힘들죠.


이상 저를 좀 안다고 생각했던 누님이 해주신 소개팅이 남긴 여운이었습니다.
(누나~ 여자가 해주는 소개팅은 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저를 아는 누나가 해주는 소개팅이니까 스키장 포기하고 한거예요. 근데, 이러면 곤란하잖아요. 퍼퍼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