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멀리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해설>
고전의 가치는 그 세월만큼이나 넒고 깊은 것입니다.
오래되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 생활에 대한 성찰과 관조를 담고 있음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의 고전인 '논어'의 가장 첫머리입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면서 즐거운 인간이 어디 있냐고 친구들끼리 비웃었던 기억을 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나이를 조금이나마 먹고 나니 이 글에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1.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주자께서는 주석에 '사람의 본성은 모두 善하나 깨달음에는 먼저 깨닫는 사람과 나중에 깨닫는 사람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善이란 좋은 것을 뜻하며, 이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기 때문에, 마땅히 먼저 깨달은 자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좋은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건은 너무 많고 일개 개인이 사용해 볼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질러서 깨달은 이들이 작성한 사용기와 리뷰 등은 뒤에 지르는 이에게 커다란 지침이 됩니다. 마땅히 먼저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찾아서 배우는 것을 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習이란 무엇인가? 바로 배운 것을 익숙히 몸에 체득시키는 것입니다.
배운 것을 체득하는 것은 무엇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인가?
바로 지름을 통해서만이 체득할 수 있습니다.
빌려 쓰거나 매장에서 보면 된다는 학설이 일부 학파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진정한 체득은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쓰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빌려 쓰는 물건을 어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공자께서는 '배우면 질러야 한다'라는 것을 이미 2500년전에 설파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주자께서는 주석에 '친구란 같은 부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부류라 함은 그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 즉 同志이며 동호인입니다.
이미 우리는 번개를 빙자한 정모를 통해서 동호인간의 정과 애환을 나누는 현장을 여러번 경험하였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의 기쁨은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이 구절에 이르러서 우리는 의자 뒤로 고개를 넘기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친구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에 대해 알지 못하며, 심지어 무시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그들이 어찌 체리와 알프스, 버클링의 위대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알아 주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지조를 지키며 꿋꿋하게 지르니 진정 군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공자께서 지름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전하셨는데 후학들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지름의 길은 성인께서도 설파하신 것이니 회원님께서는 망설임 없이 지름에 임하셔도 될 것입니다.


.
.
이런거 써도 되는 걸까나.. 사문난적으로 사약을 받을지도...
반응 썰렁하면 삭제하겠슴다.. 그저 체리 승화인쇄키캡을 시험에 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날림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