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만진 컴퓨터는 286 AT기종이었습니다. 멋 모르고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C언어 책을 구해서 이것저것 만져 보았던 것이 제가 IT에 입문하게된 계기였지요.

10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HHK pro를 써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던 키보드와는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그것도 잠시... 잡지사에서 원고료 대신에 엎어 왔던 놈이었는데, 저와는 인연이 없었던 탓인지 다시 돌려 주어야만 했습니다.

또다시 4년 후, 쓰고 있던 싸구려 키보드를 교체하기 위해 kbdmania.net에서 이런 저런 키보드들을 기웃거리게 되었지요. IBM의 태국산 넷피니티, 체리의 빨간불 미니, HHK Lite 2를 소유하게 되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 남아있는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만졌던 키보드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도대체 무슨 키보드 였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어제 사고팔고 게시판에서 IBM M2의 판매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체리 구형 청색축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당시의 키보드라면 혹시 IBM의 버클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과감하게 구입을 하게 되었지요.

집에 들어오자 마자 M2를 연결하고 타이핑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사용하던 키보드... 바로 그 느낌이더군요. 찰칵찰칵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 손가락은 이젠 오랜 기억 속의 버클링 시스템을 잊은 모양입니다. 집에서 사용하던 넷피니티에 익어서인지 1시간 정도 코딩을 하고 나니 손가락이 아프더군요.

마음은... 느낌은... 예전의 기억 속에 행복 했지만, 몸은... 손가락은...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지만,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M2를 메인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한켠에 고이 모셔두고 간혹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뿐... 조만간 방출시켜야만 할 것 같습니다.

컴퓨터를 오래 다루어 오신 분이라면 저와 같은 키보드의 추억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추억의 키보드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저는 그 종착지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만, 웬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