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컴퓨터라는 걸 만지기 시작한 지 30년 가까이 된 사람입니다.

한창 젊을 때는 본체 내부 하드웨어의 성능에 집착을 했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신경쓰게 되는 것이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스피커 같은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본체는 아무리 좋아져도 인간의 감각을 직접 자극하는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컴퓨터에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것은 인간의 감각에 와 닿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본체라도 키보드와 마우스 없이는 어떤 작업도 불가능하고

모니터 없이는 어떤 결과물도 못 보여주며

스피커 없이는 어떤 소리도 들려주지 못하지요.

따라서 비싸더라도 조금이라도 눈에 더 좋은 모니터,

조금 더 값을 치르더라도 조금이라도 손에 더 편안하고 감이 좋은 키보드와 마우스,

조금 비싸더라도 좀더 귀가 편안하고 소리가 좋은 스피커를 찾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PC의 성능 보다는 주변기기의 편의성이 더 중요해집니다.

 

예전에는 그저 컴퓨터가 작업도구에 불과했을 뿐이지만 지금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갑니다.

그러다보니 단순한 작업도구를 넘어 자신의 개성을 담아 즐기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지요.

아래 재키님의 논리대로라면 핸드폰도 굳이 아이폰 같은 것은 살 필요 없어요.

전화기는 전화만 잘 되면 되는데 뭐 그렇게 비싼 스마트폰을 사고, 또 비싼 케이스에 악세서리를 쓴답니까?

왜 PC 주변기기로는 극한의 취미생활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지극히 까다로운 취미 중 하나인 오디오 시스템도 PC-Fi 개념이 등장하는 마당에 말입니다.

키보드는 단순한 작업도구일 뿐이다, 라는 생각은 20년 전에나 통용될 생각입니다.

아무리 아이패드 같은 터치 스크린 방식의 포스트PC가 등장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어도 

여전히 키보드는 PC와 소통하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하고 원초적인 수단입니다.

제아무리 컴퓨터 시스템이 성능이 좋아도 키보드 없으면 반쪽입니다.

그렇다면 이왕 즐기는 거 좀더 촉감 좋고 느낌 좋게 즐기겠다는게 그렇게 이상한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음악에 심취하다보면 좀 더 좋은 스피커나 헤드폰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과 같지요.

 

재키님 본인도 키보드에 관심이 없으신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 동호회에 시비를 거시려고 쓰신 글보다는

다만 왜 내가 지금 키보드를 개조해 가며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의문에 던져보신 질문이 아닐까 해요.

바로 이게 정답이겠지요. 그게 즐거우니까요.

 

이곳에 오게 된 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주변기기에 점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제 모습이

이상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많이 받습니다.

동호회라는 것은 그렇게 특정한 취미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적어도 그런 취미의 세계를 긍정하고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구요.

어떤 이유에서든 더이상 공감할 수 없다면 그 취미를 접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분란이 되는 글을 쓰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설마 여기 회원분들이 지금까지 활동해 오면서 재키님과 같은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보고

그저 맹목적으로 키보드에 미치기만 하셨으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