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시간을 넘어서 어제 배송받은 마제 갈축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기까지
이곳 키보드 매니아에서 접한 많은 정보들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제가 느낀 경험이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네요...^^
글이 조금 길고 부족하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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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터 대략 15년전인 1993년으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당시 저는 육군 훈련소에서 전경으로 차출되는 바람에, 서울 경찰청의 어떤 부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하던 일은 훈련 및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문서작성 및 전산쪽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구요... (당시 486 컴퓨터가 최신 기종이었음!)

지금 생각해봐도 각 부서마다 있었던 당시의 컴퓨터 키보드는 역시 멤브레인 방식이
주종이었던것 같습니다. 거의다 비슷비슷한 키감 및 소리들...

그런데 딱 2군데의 어느부서에 있던 2대의 컴퓨터 키보드만이 정말 다른 키보드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뭔가가 있더라구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중 한개는 세진 1080 키보드하고 거의 동일한 모습 및 키감을
보여줬던것 같고, 나머지 한대가 'WANG' 이라는 상표가 붙어있던 조금 독특한 모양의 키보드였는데
"또각~ 또각~" 거리면서 확실하게 구분감 있는 소음(?)과 함께 손이 즐거웠던 키보드라서
시간이 날때마다 일부러 찾아가서 만지작 거리곤 했습니다.(얼마전에야 이 2개의 키보드가
기계식이었다는걸 알게 되었구요...^^;)

그러던 어느날, 우리부서의 어떤 고참(당시 컴퓨터 매니아)이 휴가후 귀대하면서 키보드를 한개
가지고 오더군요. 그 고참이 말하길 "우리 부서의 키보드는 정말 아니야~, 할 수 없이 예전에
사용하던 정말 아끼는 키보드를 안가져올 수 가 없더라구..."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부서의 컴퓨터중 한대에다가 자신의 키보드를 연결하더군요.
지금도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좌우 길이 44 Cm 정도의 한쪽 귀퉁이에 어떤 상표도
안붙어있던 완전 순백색의 키보드...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판을 외우지도 못했었고, 따라서 타이핑 속도도 느렸던 터라 그 고참이
가지고 왔던 키보드를 몇번 타이핑 해본후의 첫느낌은 "심심함!" 그 자체 였습니다.
다른 키보드 보다는 부드럽고 뭔가 다르기는한데 조금 심심했던 그런 느낌 이랄까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자판도 외우게 되고 양손으로 자판을 안보고도 제법 빠르고 능숙하게
타이핑이 되기 시작하던 그 무렵! "짤칵~ 짤칵~" "또각~ 또각" 거리는 타부서의 2개의 키보드를
연신 들락거리며 타이핑 하던 순간, 그 고참의 키보드가 눈에 얼핏 들어오길래, 그냥 심심해서
빠른 속력으로 타이핑을 해보았는데...

"사각~ 사각, 도각~ 도각~, 쫀득~ 쫀득~"

딱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당시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지금도 그 느낌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이 키보드가 이런 키보드였나?" 빠른 타이핑에 드디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 독특한 느낌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미친듯이 일부러 그 고참의 키보드만 가지고 거의 8개월 동안 정말 즐겁게 타이핑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부터 타부서의 키보드에는 더이상 눈이 가질 않더라구요...^^;)

당시에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어서 그 고참의 키보드와 같은걸 살려고 휴가때마다 컴퓨터 가게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키보드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 혹은 비슷한 모양을 권해주더라도 도저히
고참의 그 키보드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흔하디 흔한 키감에, 결국에는 고참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 키보드를 저한테 달라고...-_-;

"이 키보드는 미국에 계시는 삼촌이 선물로 보내준거라서 절대로 안된다! 차라리 다른 키보드라면 모르겠지만..."

아~~ 몸에 힘이 쫘~악 빠지던 당시의 그 느낌이란... 더더군다나 미국에서 보내줬다는 말에
완전 좌절!

그 고참이 제대를 하면서 그 키보드는 가지고 가게 되었고, 그리고 타부서에 있던 그 2개의
독특한 키보드마저도 어느날 가보니 새로 구입한 흔하디 흔한 새 키보드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렇게 그렇게 당시 제 기억에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었던 그 키보드는 서서히 잊혀지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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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15년이 흘러 흘러....
어느덧 30대의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던 불과 얼마전인 2007년 10월초!
키보드라면 멤브레인과 팬타그래프 방식이 있다는것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그냥 1~2만원대의
키보드가 전부인줄 알고 사용하던 바로 그때~ (주로 사용하던 멤브레인 키보드들은 이상하게도
꼭 고장이 나던지, 사용을 하다보면 키가 뻑뻑해져서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할 수 없이 1년에
평균적으로 2개 정도는 교체를 하게 되더군요.)

우연히 'Fun Shop" 이란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팔던 다양한 아이디어의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에 자주 들락거리다가, 우연히 컴퓨터 주변기기 항목의 키보드가 눈에 들어오길래,
클릭을 하고 처음보게된 키보드가 바로 그 "해피 해킹 프로" 였습니다.

"오잉? 이곳에 수입 키보드도 팔고 있었나? 허~걱! 그런데 무슨 가격이 이래? 20만원? 뜨~헐~"

"무슨 키보드에 금도금을 했나? 뭐가 이렇게 비싸? 뭐?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은 또 뭐야?"
(ㅎㅎㅎ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고, 어쨋든 10월초쯤에 해피 키보드의 가격을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그런데 그 키보드의 밑에 달려있던 댓글에서 칭찬의 글들을 보다가, 기계식 키보드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분이 댓글에 참고자료로 첨부해놓은 사이트를 따라서
들어가보니, 바로 이곳 키보드 매니아로 오게 되더라구요.(이게 뽐뿌의 시작이 될줄은...^^;)

"기계식 키보드? 이건 또 뭐지? 그냥 키보드라면 멤브레인과 팬타그래프가 전부다 아닌가? 음...."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도대체 기계식 키보드가 뭐길래 라는 호기심에 이곳 사이트를
10월초부터 자주 들락 거리게 되었네요.

"청축? 갈축? 백축? 흑축? 흐미... 이건 또 뭐지? 무슨 당파(?)의 이름인가??
허걱! 변흑은 또 뭐야?"

아~ 정말 불과 1달전 이야기지만,
정말 머릿속에 무슨 무협 만화가 한편 지나가는 그런 느낌?...-_-;
너무 너무 궁금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보니 그제서야 이런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차츰차츰 알게 되었네요.

아... 이때부터 갑자기 기계식 키보드 지름신이 제옆에 서서히 다가옴을 느꼇습니다.
(역시 사람은 알면 병난다고...TT)
그런데 직접 각각의 방식을 적용한 키보드의 타이핑 소리가 너무나 궁금해서, 이곳의 좌측하단에
있던 "아이오 매니아" 라는 곳을 들어가보니, 그곳에 직접 동영상으로 타이핑 장면이 나오길래
몇날 몇일을 보고 또 봤는지 모릅니다. 정말 각각의 개성과 느낌이 너무나 다르더라구요.
(또 다른 세상이 눈앞에 쫘~악 펼쳐지는게...)

무려 10일 가까이 보고 또 보다가(지방에 살고 있어서 직접 서울처럼 물건을 보고 타이핑을 할 수 없는 환경!)
왠지 '마제 갈축'이 여러모로 저랑 적합한 듯 싶어서 몇일전에 주문을 하고, 드디어
어제 저녁에 집에서 컴퓨터에 연결후 대망의 첫 기계식 키보드의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대반 두근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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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사각, 도각~ 도각~, 쫀득~ 쫀득~"

바로 15년전의 군복무 시절인 1993년도 20대 초반의 그시절... 그 고참의 그 키보드를 너무
재미있게 타이핑했던 바로 그당시의 추억이 머릿속을 하얗게 메우면서...

15년동안 가슴한켠에 숨겨져 있던 바로 그 추억을 타이핑 하고 있는 20대 초반 제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괜시리 코끝이 찡~ 해지는게...TT

"그래... 바로 너였구나~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지?"

그저 막연히 처음으로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어서 혼동하는게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키보드에 관해서 많이는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고참의 키보드도 갈축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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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소감>

음... 동영상에서 보던 소리하고 실제로 타이핑하는것 하고 조금 차이가 있는듯 싶습니다.
갈축은 청축에 비해서 조용하다고는 해도 소음이 제법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타이핑해보니
너무너무 조용한게... 도서관 같은 곳은 모르겠지만, 그외의 장소에서는 전혀 무리가
없을듯 싶습니다.

부드러운 키압, 단단하게 제각각 독립적으로 가벼운 터치에도 반응하는 키, 빠른 타이핑시에
나타나는 특유의 키감 및 느낌! 정말 마음에 듭니다.(정확하게 말하면 15년전의 바로 그느낌
그대로...)

물건을 받기전에 필코의 키보드는 우레탄 코팅(?) 같은게 되어있다고 하길래
궁금했었는데, 직접보니깐 알겠네요. 그러니깐 문구류 혹은 휴대폰 껍데기 등등에 많이 사용되는
고무느낌이 살짝 드는 프라스틱과 아주 흡사한것 같습니다.(물론 그것보다는 재질이 훨씬 더
고급스러운듯...) 손의 땀도 잘 묻지 않고, 고급스러워 보이는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러고 보니, 괜시리 청축, 흑축 및 기타 다른 기계식 키보드들에게도 궁금증이...
(이러면 안되는데...-_-;)

마제 갈축보다 더 좋은 키보드들도 많겠지만... 저에게 20대 초반의 제모습을 떠올려준 감성의
느낌까지 보태서 10점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키보드 같습니다.

끝으로 제게 키보드에 관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게끔 좋은 자료를 올려주신... 그리고
15년만의 옛 추억과 대면할 수 있게끔 인연의 끈을 연결해주신 모든 '키보드 매니아'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마치겠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