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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키보드를 끼고 사는 직업인데다 최근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준비하는 게 있어서 원고료 받을 걸 미리 당겨 쓴다고 생각하고 기계식 키보드를 하나 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번 욕심을 내다 보니까 이왕이면 가장 좋은 것에 눈이 가게 마련.

그때가 겨우 2주일 전인데 그 사이에 키보드를 4개나 질렀습니다.

1. 가장 먼저 산 건 신품으로 구입한 다스키보드 3 얼티미트. 반짝 반짝한 아크릴 하우징에 무각 키캡이 뽀대도 나고 키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확실히 타이핑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10만원짜리도 이렇게 좋은데 그 유명하다는 해피해킹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장터를 모니터링하기 일주일째.

그래도 염치는 있어서 일단 동생에게 다스키보드를 넘기고 해피해킹 프로를 지르기로 작정.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마땅한 매물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20만원에 사겠다고 올렸는데도 매물이 없고, 어쩌다가 15만원 수준에 나온 건 뭔가 아쉽고, 이렇게 비싸게 주고 사면서 누군가가 몇년씩 쓰던 중고를 들여온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2. 그러다가 마제스터치 넌클릭 미개봉 신품이 10만원에 나온 걸 보고 재빨리 직거래로 구입. 생각지도 않았는데 일단 잡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써보니 이상하게도 다스키보드가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제스터치는 영문 각인인데 차라리 무각인 다스가 뽀대는 더 나더라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스키보드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좀 가벼운 느낌이랄까. 차라리 내친 김에 마제스터치 클릭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워낙 두둘기면서 치는 스타일이라.

3. 다시 장터에 매복하기를 며칠째. 이왕이면 새 것 같은 중고를 사려는데 이게 해피해킹 프로가 완전 품절인데다 레오폴드에 새로 들어오는 건 가격이 38만원으로 오른대서 중고도 가격이 뛸 조짐을 보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루프 포함 29만원짜리 매물이 나오기도 했죠.

그래서 아예 일본 구매대행을 알아봤더니 2만2천엔 정도. 환율 800원일 때라면 17만원 좀 넘는 정도였겠지만 지금은 환율이 1600원, 환산하면 35만2천원에 여기에 배송료를 더하면 40만원 가까이 돼서 차라리 국내에서 새 제품을 사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장터에서 해피해킹 라이트를 4만원에 발견. 거의 새 것 같은 신품이라 또 재빨리 잡았습니다. 그걸로 며칠 써보니 어딘가 아쉬운게 이게 나름대로 정가 7만원짜린데 키감이 왜 이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초에 기계식을 살 생각이었는데 내가 왜 멤브레인 키보드를 질렀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왕 쓰는 거면 프로를 쓰자고 결심.

4. 다시 일본 경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역시 거의 새 것 같은, 포장 뜯고 며칠 밖에 안 썼다는 중고를 발견했습니다. 가격은 1만2천엔. 그런데 경매 마감 30분을 놔두고 입찰자가 몰려서 1만4500엔까지 올라버렸습니다. 막판에 잡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잡았죠. 환산하면 23만2천원. 입찰 경쟁 때문에 7만2천원이 뛴 셈인데요. 배송료 포함하면 역시 만만치 않은 금액인데, 맘 편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새 것 같은 중고는 국내에서 거의 구하기 힘들고 그래도 레오폴드에서 새 거 사는 것보다는 훨씬 싸니까요.

그게 국제 EMS로 어제 아침에 왔습니다. 먹색 영문 각인 제품입니다. 확실히 프로와 라이트는 애초에 태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딱 5분 써보고 나서 라이트는 다시 팔아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장터에 올려놓으니 10분만에 연락이 왔더라고요. 막상 또 떠나 보내려니 아쉽기도 합니다.

* 결국 정리를 하면 2주일 동안 키보드를 4개 질렀다가 다스키보드는 동생에게 넘겼고, 해피해킹 라이트는 오늘 팔기로 했고 마제스터치도 다시 내다 팔 생각입니다. 노트북에 연결해서 쓸 거라 106키보드는 약간 부담스러워서요. 조만간 매물로 내놓겠습니다.

* 아무튼 이걸로 이제 손을 뗄까 하는데 그래도 뭔가 아쉬운 건 무각인 제품을 하나 더 구해서 집하고 회사에 하나씩 두고 쓰면 어떨까 하는 것과 해피해킹 보다는 리얼포스 86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것. 그게 아니라면 아예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철컹철컹 기계식 느낌이 나는 키보드를 사면 어떨까 등등 오히려 욕심이 갈수록 더 많아 집니다. 필코 제로 텐키레스도 써보고 싶고요. 유유부단하게도 해피해킹은 맘에 들면서도 어딘가 너무 빠져들까 두려운 느낌이고. 어딘가 너무 가볍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죠. 좀 더 써봐야 알 것 같지만. 애초에 저는 그냥 마구 신나게 두둘길 수 있는 그런 전형적인 기계식 키보드를 찾았던 건데 말이죠.

* 어쩌면 하루이틀 써보고 해피해킹 프로도 다시 매물로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때려치고 남들 쓰는 거 그냥 쓰자는 생각도 들고 그냥 노트북 자판에 만족하거나 말이죠.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 도대체 수습이 안 됩니다. 디자인도 봐야지, 키감도 봐야지, 노트북에 쓰려면 텐키레스 이하가 적당할 것 같고. 리얼포스 86이 땡기긴 한데, 참 고민이 많습니다.  

* 짤방 출처는 구혜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