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의 고가 키보드 인증이 넘쳐나는 이곳에, 2만원 조금 넘는 싼 키보드의 사용기를 올립니다. 혹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특정 단축키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기존의 커다란 키보드로는 한손으로 단축키를 누르기가 너무 불편하더군요. 그래서 찾고 찾아 작년 가을 경, 옥션에서 KR-6600 Nano를 구입했습니다.

키감이 너무 나쁘다(전자계산기마냥), 한번 눌러도 두번씩 눌린다, 배열이 잘못되어있다, 너무 작아서 오타가 잘난다 등등, 온갖 욕을 들어먹는 키보드였지요.

그래도 약 한달 정도를 곰곰히 생각해보고 지른 거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회사에서 문장을 타이핑할 일도 별로 없고 단축키만 잘 눌리면 될테니 키감은 별로 상관이 없을것같더군요. 두번씩 눌린다는 단점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배열은 익숙해지기 나름이라 생각했고(과거에 리브레또를 메인 pc로 써본 적도 있을 정도이니), 작은 건 제 손이 가는 편이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처음 받아보고는 너무 작아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책상이 엄청나게 넓어진 느낌이 들더군요. 30인치 모니터와 거대한 타블렛 옆에 놓인 키보드는 마치 망망대해의 쪽배같았습니다. -ㅂ-;;;

키감도 과히 좋진 않더군요. 다른 분들이 후기에 쓰셨던것처럼, 저도 처음엔 네이트온 같은 걸 할 때, 키가 두번씩 눌려서 꽤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 지적하셨던 최악의 키피치는 제게 오히려 장점이었습니다. 원래부터 키피치가 넓찍한 일반 키보드가 버거웠던 제겐, 장문을 타이핑할때도 이 좁은 키피치가 무척 편하더군요.

키배열은 제가 멋대로 바꿔버렸습니다. 오른쪽 컨트롤 키에 도통 손이 가지 않던 저는 컨트롤 키를 스페이스바 옆에 붙여버리고 그 왼편에 차례대로 알트, 시프트, 백스페이스를 배열했습니다. 그래픽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백스페이스와 딜리트 키가 멀어서 키보드를 더듬더듬했던 경험이 있으실거에요. 그리고 편집된 사항을 픽스시키는데에 엔터키가 많이 사용되지만 엔터키 또한 거리가 멀구요. 하여간 포토샵 등을 사용해 그림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되는 키들 +, -,  [, ] 역시 위치가 컨트롤키와 멀어서 온 키보드를 헤집고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 다른 키보드 배열을 참조하여 아래와 같은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 잘 보이실려나 모르겠네요. 사무실이 어두워 똑딱이로는 한계가;;;

펑션키 옆의 백스페이스키는 스티커를 붙였음에도 오래 사용하는 바람에 화살표 마크가 닳아버렸네요.

이 조합은 무척 막강해서, 한손으로는 타블렛 펜을 쥔 채로, 왼손으로 화살표키를 제외한 거의 모든 키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그렇잖아도 작은 키보드에, 컨트롤을 저렇게 바짝 중앙으로 당겨놓으니 제 손크기로도 대부분의 단축키에 접근이 가능하더군요.


이게 원래의 키조합입니다. 위에 언급한 것 말고도, 얼마나 많이 배열을 바꿔버렸는지 보면 아실겁니다. ㅎㅎ

펑션키를 잔뜩 없애버려 포토샵 액션을 쓰기에 약간 불편하지만, 그 정도로 이 키보드의 장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네요. 덕분에 작업시간이 무려 20% 정도는 줄어든 것 같습니다.

실은 포토샵 작업 말고도 두 가지 정도의 목적을 더 충족시키기 위해 키배열을 더 꼬아놨습니다. 그중 하나가 타이핑인데, 이를 위해 타이핑에 많이 쓰이는 키들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고, 웹서핑을 위해 back 키와 forward키를 맨 위 오른쪽에 배치했습니다. 일하다 보면 아무래도 타이핑이 필요할테고, 자료검색을 위해 웹서핑도 많이 해야 하거든요.


키를 누르고 있는 저의 손입니다. ㅎㅎ 키보드가 얼마나 작은지 보여드리기 위해 올려봅니다.

마지막으로 키감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물론 다른 고급 키보드들 중에선 키감이 더 훌륭한 것들도 많겠지만, 일단 익숙해지고 나니까 살짝 뻑뻑하다는 점 말고는 어떤 불편함도 느끼기 힘드네요.
제 경우엔 어느정도 적응이 되니깐 오타도 나지않고 키가 두번씩 눌리는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키보드가 작고 키스트로크도 얕아서 손목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도 타이핑이 수월하기때문에 이걸로 수다도 많이 떤답니다. -ㅅ-;;; 더군다나 펜타그래프의 장점인 '작은 소음' 덕에 더더욱 수다에 용이한 장점이...;;; 이 글도 지금 위의 키보드로 작성하고있죠. ㅎㅎㅎ


키가 반질반질 닳은 게 보이시나요? 너무 작아서 언제 고장날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생각보다 내구성도 괜찮은 편인 것 같아요.

이 키보드에 대한 애착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국산 키보드 중에선 저에게 이정도의 만족감을 줬던 제품은 없었거든요.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앞으로도 기변 없이 이 기종으로만 계속 쓰게 될거같습니다.

이상, 길고 허접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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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레지스트리를 편집해봤는데도 불구하고 print screen sysrq 키랑 한자키가 도통 기능을 하질 않네요. 캡쳐키가 있던 자리에는 원래의 백스페이스 키가 위치해있는데 여전히 백스페이스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거의 쓰지는 않구요;;;

한자키 역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네요. 뭐가 잘못된건지... 여기서 본 팁대로 했는데 잘 안돼요. 이 두 개가 안먹으니깐 넘 불편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