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그 동안 벼르고 벼르던 황학동 벼룩시장에 놀러 갔습니다.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또 뭔가 심상치 않은 물건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본 그곳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깊은 것이라 하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좋아할 사람들은 무척 좋아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오 이런 물건들도 있구나~!”하는 탄성을 지르기도 했고, 만약 뜻만 맞는 친구가 있다면 하루 종일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구경할만한 곳이기는 했습니다. 재미로 말이죠. ^^
   저 혼자 한 2~3시간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구경을 하다가 중고 컴퓨터를 파는(폐품 처리하는 곳에서 들고 온 것 같은 먼지가 수북이 쌓인 컴퓨터들) 노점에서 키보드가 하나 눈에 들어오더군요. TriGem과 Dreamsys61이라는 로고가 키보드의 양쪽 상단에 새겨져 있는 키보드였습니다. 하도 먼지가 많이 쌓여있는 키보드라서 잠깐 만져보는데도 손이 금세 더러워졌는데, 키감은 그런 데로 괜찮아서 뒷면을 보니 BTC-7760K였습니다. ‘오호라~ 비티시 키보드로구나’하면서 아저씨한테 이거 얼마냐고 물었더니 2천원에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키보드가 제대로 작동하는 키보드인지 아니면 고장난 키보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2천원이라니 그냥 두 말하지 않고 계산을 하고 들고 왔습니다. – 여기서 잠깐~! 혹시나 중고 키보드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황학동 벼룩시장을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안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혹시나 해서 둘러봤는데 컴퓨터 계통 물품은 거의 없더군요. 이는 토요일에 용산 나진상가 주변에서 열리는 벼룩시장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다른 여러 가지 물건들 구경하시러 놀러 가시는 것은 좋겠지만요. ^^;
   일단 회사로 키보드를 들고 와서 키캡들을 모조리 빼고 분해해서 물에 세제를 풀어서 칫솔과 수세미로 빡빡 닦고 말렸습니다. 시간이 역시(!) 꽤 걸리더군요. 한 오후 2시쯤 시작한 세척이 6시가 거의 다 돼서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키보드 세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키캡은 잘 보관한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데도 이상하게 여기 저기 튀어버려서 꼭 찾느라고 헤메느라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저만의 징크스인지 몰라도 세척할 때마다 자주 한, 두 개의 부품은 사라집니다. 나사가 사라지던지 아니면 긴 키캡을 지지해주는 철심이라든지 뭐 그런 자잘한 것들이 한 두 개씩 없어집니다(짜증나죠). 여하튼 간에 그래도 잔뜩 먼지를 뒤집어 쓴 키보드를 깨끗이 닦고 볕에 말리고 하는 과정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세척 후의 키보드 모습이 무척 깨끗해지고, 또 남의 키보드가 비로소 내 키보드가 된 듯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1. BTC-7760K의 외관
   키캡의 색과 상하 프레임의 색은 모두 연한 아이보리색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은 DreamSys 61이라는 삼보컴퓨터 자사 브랜드 로고가, 왼쪽 상단은 TriGem이라는 삼보컴퓨터 고유의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의 제품 라벨 스티커를 보면 제조년월이 97년 10월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높이 조절 슬라이더(지지대) 1단으로 되어있으며 튼튼해 보입니다. 측면은 그런대로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2. BTC-7760K의 분해
   이 키보드의 상하 프레임은 꺾쇠와 나사 2개로 결합되어있습니다. 먼저 나사 2개를 풀러 내고 꺾쇠를 차례로 풀러 내면 쉽게 분해가 됩니다. 상 하 프레임 안에 있는 키스위치 구멍이 나있는 키판과 아래 러버돔과 멤브레인 시트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철판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역시 2개의 나사가 하나는 철판에 하나는 왼쪽 위에 있는 LED가 있는 기판과 전원선을 연결해 주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철판을 걷어내면 멤브레인 시트와 러버돔이 나타납니다. 이 키보드의 구성은 상하 프레임, 키판, 철판, 멤브레인 시트, 러버돔, 키캡, 키스위치, LED가 포함된 기판, 전원선 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키보드의 무게는 철판이 들어있어서 약간 묵직합니다. 우리 나라 키보드에서 철판이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삼성전자가 저가형 키보드를 엄청 양산해 내면서부터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사실 제 경우에 키보드를 평가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키보드를 들었을 때, 이 키보드가 묵직하나 아니냐도 평가의 기준에 들어갑니다.^^


3. BTC-7760K의 키캡과 키스위치
   우리가 보통 자주 접하는 러버돔-멤브레인 키보드에서 볼 수 있는 바, 키캡이 직접 러버돔을 누르는 방식이 아닌, 중간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키스위치가 있는 러버돔-멤브레인 키보드들이 있습니다. 지금 분해한 이 7760K도 중간에 파란색의 키스위치가 있어 키캡과 러버돔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zoOoz.com의 Collect Keyboard란을 보면, 이 모델과 같은 키스위치를 쓴 5360K에 대한 리뷰가 있는데, 5360K의 경우에는 러버돔이 바깥에 위치한 특이한 모델이었고, 이 모델은 키스위치가 러버돔을 눌러 멤브레인 시트에 키입력을 하는 형태의 키보드입니다. 키캡의 인쇄방식은 레이저 인쇄방식으로 유추되며, 키캡 위의 모양새는 구형(Spherical)입니다. 미끄럼 방지를 위한 요철이 키캡의 표면에 있습니다. 여기서 키캡 내부의 모양은 제가 zoOoz의 Review란에 간단히 올린 “감퓨타”라는 속기용 키보드의 키캡 모양과 유사합니다. 두 키보드의 키스위치와 키캡 모양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짐작으로는 혹시 제조사가 같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저만의 추측이죠.^^; 또한 이 키보드는 그림에서 보듯이 키캡마다 높이가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키스위치의 색깔은 파란색입니다.


4. BTC-7760K의 키감
   이 BTC-7760K의 키감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일단 키를 누르는 깊이가 좀 낮습니다. 그리고 반발력은 약간 센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 나쁜 키감은 아니구요. 그렇다고 썩 좋다고 할 수 있는 키감도 아닙니다. 키의 흔들림은 거의 없는 편이고 대체적으로 타이핑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키보드입니다. 타이핑 시에 나는 키음도 약간 보통의 러버돔-멤브레인 키보드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키보드는 그리 인기를 끌만한 타입의 키보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분해 조립 후기
   결국 세척을 끝내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이 키보드가 문제가 있는 키보드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엔터키가 망가진 키보드라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신 분은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엔터키 부분의 러버돔과 키스위치가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조금 놀랐지만 전 수술을 결심하고 오른쪽 아래 윈도우키와 그 옆의 컴퓨터 본체 모양의 키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그 쪽의 러버돔을 잘라서 엔터키 부분에 고정시켜 놓고 조립했습니다. 어차피 윈도우키와 본체모양의 키캡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고, 일단은 성공적으로 엔터키가 부활했기에 기뻐하면서 컴퓨터에 연결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키보드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_-;; 역시 망가진 키보드가 확실했습니다. 흐흐.. 옛 성현의 말씀에 싼게 비지떡이라더니 그 말이 정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얻은 것이 많았던 것은 분해 세척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노하우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그런 실전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