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새로운 무기

펜으로만 느낄 수 있는 글의 느낌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제는 글을 쓸 수 있는 도구가 단지 펜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입니다. 하루에도 수천 건 이상의 글이 올라오는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글쓰기 도구는 이제 더 이상 펜이 아니라 키보드이기 때문입니다. 펜이 시대를 맞서는 문인의 무기라면 이제 키보드는 네트워크에 홀로 선 여행자의 무기라 할 것입니다. 전장에 선 자의 무기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잘 맞아 어울려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어야 하는 법, 무수한 무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순간에 여기 또 하나의 걸출한 무기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좋은 펜, 좋은 키보드

[좋은 펜]이라고 이야기할 때의 ‘좋은’ 이란 수식어는 조금 애매모호한 감이 있습니다. 좋은 집, 좋은 차와 같이 눈에 확 드러나는 기능상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200원짜리 볼펜이나, 수십 만 원짜리 펜이나 글을 쓴다는 원초적인 기능은 완전히 동일하니까요. 그러나 굳이 좋은 펜의 정의를 내려보라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손에 잘 맞아 글을 써 내려가는 데 거스름이 없으며 오히려 글을 도와주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키보드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무수한 기능을 추가한 키보드가 출시되는 것이 요즈음이긴 합니다만, 키보드의 본질인 [Typing]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키보드 역시, 키보드 자체의 기능보다는 사용자의 호오에 얼마나 잘 맞추어 기능하는가가 주안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이핑을 함에 있어서 무리가 없으며 손에 잘 맞아 떨어지는 키보드, 그것을 좋은 키보드라 칭하겠고 이 기준에 맞추어 TypeNow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TypeNow, 그 단촐한 아름다움

TypeNow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단촐함’ 이었습니다. 특별한 광고 문구나 기능 기재 따위는커녕 단순하게 키보드 이름과 제작사만 적힌 상자에서부터 그 느낌은 시작됩니다. 덕분에 외려 큰 기대 없이 상자를 열면 상자만큼이다 단촐한 모양의 키보드가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전 286/386 시절에 흔히 보았을 법한 색깔부터, 멀티미디어 키다 오피스 키다 해서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흐름을 역행하는 키 구성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느낌 이외에는 별다른 느낌을 받기는 힘이 듭니다. 어찌 보면 단정한 모습의 무난한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양을 선호하시는 분들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러한 모습에 악평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 상자부터 단촐한 모양새입니다 -



- 키보드 전체의 모습을 찍어 보았습니다 -


키의 구성은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기본 키 이외에는 최대한 키를 줄이는 방향으로 되어 있습니다. 총 104키 가운데 윈도우 키 두 개와 메뉴 키 한 개를 더해 단 3개의 키만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구성 또한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으나, 이전에 사용하던 아론의 키보드에 비하면 키 캡의 크기가 약간 작게 느껴집니다. 손가락을 대 보면 손가락 끝이 키 캡을 감쌀 만한 크기이므로, 그렇게 작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 윈도우 키는 이렇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


- LED의 모양새입니다 -


살짝 곡면으로 처리된 옆면 덕분에 키 단별 높이는 매우 잘 정렬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곳에 있겠다 싶은 높이에 키가 배치되어 있어, 평면으로만 처리된 것들에 비해 손이 나가는 거리가 조금 줄어듭니다. 뒷면에는 어느 키보드에나 있는 높이 조절 장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 제작사의 로고 스티커는 있군요 – 특별히 볼 것은 없습니다만 어차피 키보드 뒷면을 볼 일이 1년에 한번이나 있을까 한 일이니까요. 다만 뒷면을 보기 위해 키보드를 들어올리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함은 다른 키보드에서는 발견치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 단정하게 정리된 옆모습 -




- 뒷모습 -


특별히 흠잡을 것이 없는 평이한 구성, 무난한 첫인상, 그것이 TypeNow의 첫 느낌입니다.

즐거운 타이핑 이야기

USB 포트에 연결하니 별다른 절차 없이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즐겨 쓰는 워드 프로세서를 열고, 한 문장을 타박타박 써내려 가는 순간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 들어 옵니다. 아, 키보드를 [친다]고 이야기하는 게 이래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글을 쓰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핑 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주로 사용해왔던 키보드인 아론의 기계식 키보드는 처음으로 접한 기계식이자 지금껏 만족하면서 사용해 왔던 기기입니다. 그러나 TypeNow에 비교하면 아론의 그것은 부끄럽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키를 하나씩 누를 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스위치는 그 힘을 받아서 다시 손으로 돌려줍니다. 아론의 경우는 돌아오는 힘에 탄성이 부족하고 손이 키보드 사이에 묻히는 느낌이 들며, 묵직한 감각이 타이핑 내내 느껴집니다. 반대로 회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노트북인 ThinkPad x20의 경우는 받아 쳐오는 탄성은 넉넉하여 말랑말랑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상쾌하고 경쾌한 맛은 떨어집니다.

헌데, TypeNow는 이제껏 만져온 키보드의 느낌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키를 누를 때 들어가는 적절한 힘은 말할 나위도 없고, 키를 끝까지 눌렀을 때 분명하게 느껴지는 감촉, 그리고 다시 돌려주는 탄력까지 훌륭합니다. 타이핑 중에 손이 묻히거나 빠지는 일 없이 잘 받아줍니다. 찰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눌렸다 튀어올랐다를 반복하는 키를 가만히 느끼고 있자면 왜 키를 움직이는 그것을 스위치라고 칭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둔탁하지 않고 약간 높게 울리는, 작지만은 않은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경쾌함과 상쾌함은 이제껏 만져 본 키보드 가운데는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데 없이 만족스럽지만, 키의 소리가 다소 큰 것은 개인적인 호오에 관계없이 여럿이 모인 장소에서 함부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단점이 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사용하려고 마음먹었으나 하루 사용 후 소리 덕에 집으로 자리를 옮겼으니까요.

조금은 눈에 거슬리는 것들

키보드로서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무결한 것은 아닙니다. 사소한 문제 몇 가지들만 해소했더라면 더욱 완벽한 키보드가 될 수 있겠지요. 먼저 키 캡의 인쇄 상태가 약간 흐리게 보인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짧은 시간의 사용인지라 인쇄가 지워질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조금 더 깨끗하고 선명했다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몇몇 키 캡의 사출 상태가 약간 좋지 않아서 키 캡이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것들이 몇 보입니다. 100개가 넘는 키 중에 두세 개 정도의 문제이니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겠습니다.


- 사출상태가 이런 키가 몇 개 있습니다 -


모두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며 사용하는데 큰 무리를 주지 않는 만큼 이것을 단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완벽한 물건은 없다는 것이 제 지론이라 무리하게 꼬투리잡기 식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키보드이지 당신의 손이 아닙니다

예,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니터이지 당신의 눈이 아닙니다]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를 빌려 써 보았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PC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입력장치의 중요성은 굳이 표현치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입력장치가, 인간이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단말인 동시에 인간을 편하게 할 수도, 한편으로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할 수도 있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비교적" 저가격대의 TypeNow의 출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은 입력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3000원짜리 신품 키보드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5만원을 상회하는 이 키보드의 가격이 저렴하다고만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만, 좀 더 빠른 CPU, 좀더 나은 그래픽 카드를 구하는 열의로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면, 한번쯤은 충분히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금액이 아닌가 합니다.

종이에 글을 쓰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만큼 우리가 펜이 종이 위를 사각거리며 달리는 감각을 느끼는 기회도 점차 줄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손이 키보드 위를 달리며 내는 찰각소리가 대신해 나가겠지요. 좋은 펜만큼이나 손에 잘 맞아, 타이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키보드, TypeNow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