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동안 사용해본 리얼포스 10주년판 87u 저소음 차등 사용기(라 쓰고 적응실패기라 읽습니다)를 올립니다.


저는 리얼포스 구입전 울트라나브 Travel 신형 키보드를 약 7년간 사용해 왔습니다. 처음 울트라나브를 접하고서 지금까지 아주 만족하며 사용해왔었고, 이미 손은 나브의 레이아웃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상태였습니다. 누군가 비유하길 키를 누를때 초콜릿 부러뜨리는 느낌이라고 하는걸 봤는데, 나브는 딱 그런 느낌입니다. 저에게 나브는 손에 딱 맞는 악기처럼 경쾌하게 타이핑할 수 있는 그런 녀석이였습니다.


최근들어 나이를 먹어서인지 만족하며 사용중이던 나브의 키압이 조금 높은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신경쓰지 않고 지냈는데, 어느날 문득 제가 현재 나브 녀석을 장장 7년이라는 세월동안 full-time으로 사용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인생 뭐 있습니까. 망설임없이 이제 새로운 키보드를 영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앞으로 향후 몇년동안 나의 데스크탑 위를 차지하게될 녀석을 고르는데 의외로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왕 바꾸는거 좋은 놈으로 바꿔서 오래오래 쓰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매니아 분들이 키보드의 끝판왕이라고 부르는 리얼포스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키패드는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텐키리스 중에서 둘러보니...바로 오늘 사용기를 올리게될 리얼포스 10주년판 87u가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발견 순간 바로 이거다! 생각하고 질러버렸습니다.


제가 산 녀석은 저소음 차등입니다. 사무실에서 사용을 위해 저소음 버전을 골랐습니다. 저소음은 차등밖에 없다고 합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저소음 차등으로 구입했습니다. 리얼포스를 받아들고, 곧바로 지난 7년동안 열심히 사용한 덕분에 키캡에서 유리막 코팅을 한듯 수려한 광택을 뽐내는 울트라나브를 가차없이 치워냈습니다. 처음 리얼포스를 자리에 세팅 후 우선 간지나는 디자인을 찬찬히 감상해 줍니다. 뭐...키보드 보면서 칠거 아니기 때문에 외관 감상은 예의상...10초정도로 마무리하고 바로 타이핑을 시작합니다.


첫 타이핑 느낌은...


........읭...?....읭..?..읭?읭읭읭????? 뭐랄까요...아...난 이제 평생 울트라나브만 써야되는 건가? ㅠ.ㅠ란 느낌이였습니다. 펜타그래프 방식만을 너무 오래써온 탓일까요. 일반적인 키보드의 레이아웃과 키캡의 높이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거금을 들여 구입한 리얼포스의 키감을 느낄새도 없이 오래도록 펜타그래프에 적응된 손구락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타이핑을 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다보면 손가락이 막 키캡 사이 틈에 걸려버려서 자꾸 리듬을 놓쳐버립니다. 그럴때마다 머릿속에서는 한가지 생각만이 맴돌았습니다. '아...내 돈.....'. 사용 30분만에 이걸 어찌해야할까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울트라나브에 맞춰져버린 손가락들이 리얼포스를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거부해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비싼 돈을 주고 이미 사버렸으니 어쩝니까. 적응해보기로 합니다.


레이아웃 변화에 따른 불편함은 조금씩 적응해가기로 하고, 타이핑 느낌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대대로 키압이 나브보다는 낮은 느낌이고, 차등이라 손가락에 힘은 많이 안들어 갑니다. 그런데 누를때 느낌이 왠지 왠지 멤브레인이랑 별 차이 없는거 같단 생각이 자꾸듭니다. 정말 그런가 해서 옆자리 동료의 멤브레인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아...진짜 멤브레인을 쳐보니 느낌이 많이많이 다릅니다. 왠 오징어를 두드리는 느낌이 듭니다. 다시 리얼포스를 두드립니다. 확실히 멤브레인과 다르긴 다릅니다. 타이핑을 하면서 뭔가 좋은것 같다고 스스로 세뇌해보려 했습니다만...솔직히 첫날 느낌은 그냥 그런거 같습니다. 뭔가 키감 가벼운 멤브레인 느낌인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일해야 되는데 구름 타법은 무엇인가 자꾸 사색에 잠겨들게 됩니다. 기존 후기들을 읽어보니 최소한 일주일은 써봐야 진가를 느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참고 써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써봤습니다. 레이아웃은 이제 어느정도 적응이 된 듯 싶습니다. 하지만 키감은 역시 본전 생각나게 만듭니다. 뭔가 저와 안맞는 것 같습니다. 펜타그래프 키보드를 오래 써서 그런지 키를 누르고 나서 제가 손가락을 높이 안들고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자꾸 손끝이 키들 사이에 걸립니다. 오타도 많이 납니다. 일하다가 키보드에 손 올려놓고 뭔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샌가 화면에 aaaaaaaaaaaaaaaaaaaaaaaaaa가 계속 입력되고 있습니다.


구입후 일주일만에 방출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방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다시 울트라나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갈축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볼까 고민됩니다. 결국엔 리얼포스에 애정을 가지지 못하고 방출하게 되고 머리만 복잡해졌습니다. 이 사용기를 마지막으로 리얼이는 방출 예정입니다.


어...? 그런데 현재 사용기를 작성하면서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타없이 리드미컬한 타이핑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순간 손가락과 키보드가 물아일체가 되어 춤추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순간 이걸 방출해야 하나...일말의 망설임이 고개를 듭니다. 차등이 아닌 균등으로 가볼까란 생각도 꼬리를 듭니다. 방출하려니 미련이 남아서 이런건가 싶기도 합니다. 아...리얼포스 87u! 저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 놈인 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