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체리 넌클릭 스위치 백축 ~~ 클릭 청축과 리니어 흑축이 각각 자신만의 특성을 부각시키며 자리매김을 한 것에 비하면 백축은 에고노믹스(주문형 제품이란 뜻임)라는 또 하나의 넌클릭 스위치 갈축으로 인하여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스위치이다. 사실 본인도 갈축의 부드러움과 촉촉함에 맛들여 있던 터라 백축을 만져보며 순간 그 감촉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체리 스위치들이 잠깐 지인의 자식들을 몇분 만져보는 것만으로는 모든 감촉을 느낄 수 없는 녀석들인 관계로 4색을 직접 한 개씩은 소유해봐야 한다는 초기 계획의 일환으로 백축을 물색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녀석이 신형로이터 G80-3234LPMEU 이다.

신형로이터 3234 ~~ REUTERS라는 회사는 영국의 통신사로 유명하다. 아마도 그 회사 장비에 끼어들어간 소모품 형태로 체리사에서 OEM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특이한 것은 로이터 OEM 제품들은 하나같이 넌클릭 백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형로이터가 윈키리스에 투톤베이지 이색사출이라는 고급키캡을 사용했던 것에 반하여 신형로이터는 윈키에 화이트그레이 레이져각인이라는 일반추세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저가형으로의 변화 속에서 특이한 점이 한가지 나타났다. 신형로이터가 많이 장터에 풀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키매냐 회원분 사이에서 회자되기를 사용된 백축스위치가 느낌이 꽤 괜찮다. 혹은 키압이 많이 낮아졌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백축을 한 개 물색하고 있던 나에겐 이녀석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화이트그레이에 깔끔한 레이져키캡이 예뻐 보이기도 했고 하여 일단 신형로이터 3234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백축은 백축이었다 ~~ 일단 물건을 받아 상자를 열고 타이핑 하면서 내 입속을 맴돈 말은 백축은 백축이구나 였다. 체리정품 3000 백축에 비해서는 키압이 낮은 것 같지만, 꽤 상태 좋은 백축이야 하면서 지인이 보여준 키릴에서 추출한 백축에 비하면 뭐 비슷한 수준이었다. 백축 특유의 푸석푸석함, 그리고 스위치 돌기가 건드려질 때마다 손 끝에 전해지는 서걱거림 거기에 더해서 3000 하우징에서 오는 맹숭맹숭한 바닥치기까지 더해지니 키압이 조금 낮고 스위치가 조금 좋은 상태라는 점 하나만으로 백축을 갈축보다 좋은 스위치야라고 칭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장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제목에서 로이터 : 최고의 호사를 누리다를 부제로 단게 이 부분이다. 갈축스위치 윤활 때문에 샀었던 아이오에이드 사실 쓸일이 없었다. 갈축에 몇 번 윤활을 시도해 봤지만 원래 부드러운 녀석이 부드러움을 넘어서 밍밍해져버린다. 그래서 한두방울 쓰고 고스라니 남아있었다. 로이터 백축한테 확 쏟아붓기로 했다 어찌될지는 둘째 문제고 1차 슬라이더 윤활, 컵에 5방울 떨어트리니까 충분하다. 이거 너무 많이 남았군. 2차 스프링 윤활, 이건 3방울이니까 충분하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 이러고 있는데, 예전에 짝홀 리플달기에서 무료로 받아두었던 스티커가 생각이 났다. 갈축용이란게 일반용도이지만 백축에 못할껀 뭐 있어 하고 3차 스티커 튜닝까지 해줘 버렸다. 그러니 호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고 나니 백축녀석이 꺼칠어진 피부에 로션을 듬뿍  발라놓은 것처럼 촉촉해졌다. 소리도 많이 단아해졌다는 느낌이다. 마지막 보강판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보강판을 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문제로 갈등을 한참한다. 이것도 몇달 전 팔려고 장터에 3-4번 내놓았다가 실패한 3000 보강판이 한 장 남아있어서 결국엔 로이터 이 녀석의 차지가 됐다. 휴... 한숨을 돌리고 파란색 로이터 신형로고와 조화를 주기위해 파란 LED로 교체하고 서비스로 뒷판에 나사 4개 꽉꽉 눌러 조여주고, 컴퓨터에 연결하였다.

30대 마누라도 화장하면 예뻐보일 때가 있다 ~~ 화장을 마치고 컴퓨터에 연결된 이 녀석이 나한테 준 첫 느낌은 탱탱해졌네 였다. 보강판탓인지, 윤활탓인지, 스티커탓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는 좀 그렇다. 조금씩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갈축에 부드러움까지는 쫒아가지 못했지만 상당히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반발력을 준다. 왜 이녀석을 치면서 마누라가 생각났는지 모른다. 삶에 어느 정도 닳아서 아줌마 티를 지녔지만 아직은 귀여운 여자인 척 하는 마누라...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청축은 10대 아이들 같다. 재잘거리고 시끄럽지만 같이 있으면 즐겁고 상쾌하다. 하지만 진득히 치고 있기에는 가끔 귀가 따갑고 그 소리가 귀찮아질 때가 있다. 갈축은 20대 아가씨들 같다. 부드럽고 촉촉하다. 무각키캡까지 씌워놓은 갈축 녀석은 정말 부드러운 살결를 만지작 거리는 느낌이랄까. 백축은 30대 여인네들 같다. 조금은 이유없는 잔소리와 수다스러움이 백축의 푸석거림과 같고, 화장을 시켜놓으니 원숙한 무르익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풍파에 휠쓸리지 않을 단단함까지... 그럼 흑축은 40대인가? 세상만사 다 겪어 이젠 어디에도 걸릴 것 없이 거침없는 강인함 40대 맞는 것 같다. 오늘은 풋풋한 20대 갈축은 상자 안에 남겨두고 원숙히 무르익은 30대 백축 맛을 손가락에 느끼며 하루를 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