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1900 블랙을 하나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요전에 루리님께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셔서 11900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 때의 물품은 아니고 그 전에 다른 경로로 하나 찜을 해 두었던 물건이었습니다.

사실 전 11900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11800을 만질때 그 배열이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다른 건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esc는 자꾸 헛손질을 하게 되는 관계로 많이 짜증을 냈었답니다.
11800에 들어있는 트렉볼의 감도가 좋지 않아 쓰기 힘들었다는 것도 짜증의 또 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11900을 부탁한 것은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단지 체리에서는 보기 힘든 블랙이라는 이유였지요. 
또 한가지의 이유를 들자면 나날이 건강해지는 손가락이랄까요.. 요즘 키압 약간 높은걸 자꾸 찾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키압이 낮은걸 치면 리듬이 잘 안생겨 피곤해지더군요. 치는 재미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쨌든 체리의 블랙 제품..
정말 예쁘더군요. 체리 키보드들이 카리스마가 없다는 말이 반증하듯, 정말 체리 오리지널 키보드는 별다른 표정이 없습니다. 그저 깨끗한 디자인이랄까요?
그나마 그중에서 예쁘다는 1800을 놓고 쓰고 있었는데 디자인으로는 11900이 몇 수 위였습니다. 특히 블랙이라는 것이 치명타라고 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 리얼포스101과 더불어 최악의 로고라고 생각하는 체리의 빨간 스티커 로고도 이놈에게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빨간 로고가 블랙이 베이스가 되니 디자인의 포인트가 되는군요. 참 예쁩니다.

11800에서 별로 좋은 느낌을 가지지 못했던 트랙볼과 달리 11900의 터치패드는 괜찮은 감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패드가 너무 빡빡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 길이 들려고 하니 썩 괜찮은 슬라이딩이 되는군요.

그리고 키감..
멋집니다. 이렇게 멋진 키감의 키보드를 보는 것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군요.
체리 스위치는 같은 축 색깔이라도 많은 종류의 스프링이 들어있다고 귀동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프에서 같은 키압으로 표시되더라도 스프링의 재질, 코팅의 유무, 스프링의 감긴 턴수 등등이 키감에 많은 좌우를 한다고 하더군요.
이 블랙에 들어있는 스프링은 감긴 턴수가 많은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키압 높은 리니어지만 체감으로는 그다지 높다고 생각되지 않는군요. 턴수가 많이짐으로써 좀더 부드럽고 탄력있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도 체리키보드 답지 않은 견실한 구조입니다.
체리키보드는 특히 3000계열에서 나사를 사용하지 않아 삐그덕 거리고, 기판이 흔들려 스위치까지 덩달아 왔다갔다 하는 현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900은(11800도 이지만..) 뒤에 10개 넘는 나사가 상판과 하판, 기판을 잘 물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판의 공명이 심하지 않아 터치의 견실함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옆에서 잡고 위아래로 틀어보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틀어짐이 심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틀어진 상태가 유지되어 바닥이 수평이 되지 않고 한쪽이 들뜨게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거 수평 잡느라 고생했군요...

그리고 키캡이 이색사출인 관계로 역시 견실한 터치에 도움을 줍니다.
무거운 키캡이 역시 중력의 도움을 받게 해주는군요.

받기 전에는 보라카이님께서 11800, 11900에는 철판 계획이 없다 하셔서 많이 실망했었지만, 이녀석은 그나마 견실한 구조로 체리 리니어 스위치의 실력을 발휘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필코메탈을 제치고 지금 메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바뀔 것 같지 않을 것 같군요.
오랜만에 사용기를 쓰려하니 힘드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ps. 11900의 스테빌라이저 댐퍼를 자르기 위해서는 세심한 분해가 필요합니다.
어젯밤 좀 고생했군요. 상판과 하판에 터치패드 부분이 하얗고 얇고 넓은 케이블로 물려 있습니다. 이것을 상판과 하판 두군대 모두 빼야지 분리가 가능합니다.
분해하실 때는 케이블이 망가지는 불상사 없게 조심해서 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다시 끼울때도 쉽게는 안됩니다.
저는 하는김에 하판에 신문지까지 쟁여 넣었습니다. 철판만큼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나마 하판의 울림을 약간이나마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요.
어쨌든 하신다면 마음 단단히 먹고 하시실..
----------->이거 삽질이었습니다. 보라키이님의 리플을 보고 하세요..TT

pps. 언제나 지름신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