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영업하시는 고마운 우체국 덕분에 드디어 상태 A급의 확장1과 아이메이트를 받아보게 되었읍니다.  몇일전에 신동품 수준의 확장2를 받았었고, 아이메이트가 없어서 자판만 두들기고 있었는데...  
양도해주신 두회원님들 덕분에 즐거운 연휴를 보내는군요.  
감사드리구요...

키보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능하면 애플쪽은 경험할 생각이 없었읍니다.
개인적으로 애플 컴퓨터에 대한 안좋은 기억들이 있어서였죠.  90년대 중후반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때, 24시간 돌아가는 컴퓨터 랩에서 밀린 레포트를 밤새워 칠때 사용했던 키보드가 확장1이었습니다. 그 전엔, 한국에서 IBM 386을 썼었는데...  그 때만해도 미국대학의 컴퓨터 랩은 거의가 맥킨토시였던거 같습니다.  키감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너무나 고생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애플의 사과 로고만 봐도 힘겨운 생활이 떠오르곤 했었습니다.  또 하나의 추억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당시로는 상당히 비쌌던 애플 파워북을 사가지고 들어왔었습니다.  귀국해서 당장 생활비라도 벌려고 책번역을 하게되었는데...아마 클라리스 웍스인가 하는 애플용 한글 프로그램으로 수개월간의 작업을 끝냈었는데... 출판사에서 아래아 한글로 요구하기에 변환작업을 하다가 그만 모든 파일을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번역작업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결국은 한국어 표현이 관건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완전히 새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IBM 버클링의 명기들을 여러 종류 사용하면서, 갑자기 애플 키보드의 느낌이 궁금해졌습니다.  IBM이 주는 이미지들-남성적, 사무적, 정장차림, 집단적. 그리고 그에 반하는 애플의 느낌-여성적, 창의적, 캐쥬얼, 개인적인 것들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확장1-
확장2는 이틀, 확장1은 불과 몇시간 사용해보았는데... 그 고유의 독특하고 부드러운 키감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확장1은 몇분도 안돼서 그 빼어난 키감이 바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적당히 바닥치는 맛과 부드러운 키감, 듣기편한 사운드가 어울어져 창출하는 고유의 특성은 체리스위치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고급스러운 맛"을 경험하게 하더군요.  정말 다른분들이 언급했던 피아노와 같은 악기를 연주를 하는 듯한 리듬감까지...  
체리의 리니어 스위치와 아이비엠의 무거운 버클링에 적응된 손인데도, 감히 지금껏 제가 쳐본 최고의 키감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확장2-
너무나 훌룡한 디자인으로 감동을 받고, 처음 타이핑을 했을때의 느낌은,"어, 이거 기계식 맞어?"였습니다.  부드러움이 지나쳐 흐물거리는 듯한... 2주넘게 메인으로 IBM 모델 M1390120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도 힘없고, 끊어지는 맛이 없어서 삼성의 dt-35와 비교해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치다보니, 성시훈님의 글에서 본것처럼, 기분좋은 부드러움과 함께 무시못할 키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도 확장1에 비해 훨씬 여성적으로 업그레이된 것같고...  개인적으로는 HHK-Pro의 키감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보단 섬세하고 소프트한 쾌감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새드노바님을 비롯한 HHK 매니아 분들께 혼날 소린가?)

애플 확장1,2의 또하나의 장점은 스페이스 바와 철심을 사용한 큰키들의 부드러운 터칭감이라고 생각합니다.  IBM AT,XT의 무거운 스페이스바와, 체리 키보드의 칭칭거리는 스페이스바는 항상 불만이었는데...  확장1,2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읍니다.

그렇지만, IBM 버클링과 같은 쫄깃쫄깃하고 탄력있는 키감이 주는 즐거움과 체리 리니어 스위치가 주는 경쾌하고 싱싱한 바닷치는 맛은 느낄수없었읍니다.  장기간의 타이핑이나 고속 타이핑에 유효한 키보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책상위에 IBM AT와 모델 M, 그리고 애플 확장1,2를 펼쳐 놓아보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서로 다른, 어쩌면 양 극단의 축에서 컴퓨터를 발전시켰던 그들의 특징이 한눈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왜 애플은 아이비엠처럼 센텐에도 잘 버티는 재질을 쓰지 못했을까?"
"왜 아이비엠은 애플처럼 소유하고 싶을 정도로 이쁘게 만들지 못했을까?"
"선텐 방지를 위해서 확장 1,2는 밤에만 사용해볼까?" 등등의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연휴를 보내는 중이랍니다.

모두들 복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