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뜻하지 않은 귀인들을 만나,
디지털 기기들과의 조우가 시작되었던 듯합니다.

처음 컴퓨터를 구매할 때에는 부대 고참의 영향으로
엉뚱하게 매킨토시 LC2를 구입했었고,
이후로 홀연히 등장한 귀인들의 인도하심을 따라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 PDA 등등의 기기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키보드의 경우에는
'키감'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을 좇아
스스로 이곳에 이르게 되었군요, 흐음...

언제부터 '키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원래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키보드는 애플 프로 키보드였습니다.
작업차 편집실에 들렀다가 스튜디오에 세팅된 매킨토시의 자태에 홀딱 반해버렸고,
유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키보드에 필이 팍 꽃혔더랬습니다.
처음에는 소리없이 쑤욱 들어가는 키감도 좋게만 느껴졌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디자인이 멋진 키보드를 힐끔거렸는데...
구입하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삼성 DC3100 미니 키보드였습니다^^;;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갔다가 매장 도서 검색대에 비치된 미니 키보드의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갔던 듯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만...
도서를 검색하기 위해서 잠깐 검색할 때에는 꽤 괜찮은 듯했는데,
집에서 노트북에 물려 사용하다 보니 금세 키가 뻑뻑해지더군요.
지금에야 윤활을 고려해 보기라도 하겠지만,
당시의 저로서는 '쓰다가 버릴' 키보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움은 뒤로 하고 슬슬 다른 키보드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부근의 '아티누스'라는 매장이 있었는데,
전시용으로 비치해 둔 미니 키보드가 또 눈에 들어오더군요.
오른쪽 상단에 자그마한 트랙볼까지 달려 있는 것이 무척 예쁘게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직원들 몰래 자판을 몇 번 두들겨 봤는데, 하~
그렇게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는데, 손맛은 영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니 키보드에 대한 불신이 스물거리며 피어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뜬금없이 회사에서 키보드를 바꾸게 되었답니다.
그냥 일반적인 멤브레인 키보드를 쓰고 있었는데,
다른 직원이 오더니 대뜸 키보드를 바꾸잡니다.
서버에 딸려 온 키보드이고 무척 좋은(!) 것인데,
자신은 평범한 키 배열에 검은색 키보드를 원한다더군요.
얼결에 트랙볼이 오른쪽 아래에 달려 있고,
키 배열이 일반 키보드와는 조금 다른 키보드를 쓰게 되었습니다.
왼쪽 상단에 델 로고가 있었는데, 정확한 모델명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놈이 키보드를 향한 방황의 단초가 된 듯합니다.
가벼운 키 감에 색상도 마음에 들었는데,
키가 많이 덜그럭 거리는 데다가 키 배열이 조금 달라 신경이 거슬리더군요.
그래서 삼성 DT-35로 바꿔 보았는데...
웬걸!!! 이게 적응이 안 되는 겁니다 ㅡㅡ;;

그래서 내친 김에 괜찮은 키보드를 하나 장만하자!!!
이런 소박한 바람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박한 바람이 지금의 지름신공으로 커져버린 겁니다 ㅠㅠ
그 와중에 애플 프로 키보드에 대한 외사랑은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키감'이라는 면에 중점을 두고 애플 키보드를 몇 번 써 봤더니,
첫 느낌과는 너무 다르게 생각되어서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게 된 것입니다.

키보드 매냐에 미처 가입도 하기 전에
억세게 운좋게 hhk lite2(아이보리)를 사용하는 행운을 얻었고,
체리 미니 4100 신동품도 분양받아 이용하고 있습니다.
hhk lite2는 이 밤이 지나면 다른 분께 분양할 예정이고,
체리 미니는 집으로 가져 와서 쓰려고 한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에는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는 P/S2 단자 밖에 없는데,
예전 노트북인 Sens630에는 키보드와 마우스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한 P/S2 단자가 있더군요.
아마도 체리 미니는 센스랑 짝을 이루게 될 듯합니다.

hhk lite2는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드는 키보드입니다.
아직 프로 버전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반 키보드의 키 크기와 깊이를 사용한 미니 키보드로서는
최고의 디자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마무리 또한 아주 깔끔해서,
책상 위에서 풍기는 자태가 아주 단아합니다.
그런데 자태와는 달리 키감은 좀 단단한 느낌이더군요.
또 키보드를 빠르게 칠 때 들리는 '두두두두'하는 박진감 넘치는(?) 소리는
키보드의 크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회사에서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체리 미니의 소리는
가볍게 '짤깍짤깍'거려서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손 끝에 걸리는 찰진 느낌은,
키를 뭘로 만들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답니다.
하지만 hhk lite2에 비해서 키 높이가 낮아,
깊숙하게 눌리는 맛이 덜 해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체리 미니는 hhk lite2에 비해서는 키 배열에 아직도 적응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원래 숫자키와 편집키/기능키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도,
키 배열에 적응하기는 hhk lite2 쪽이 조금 더 수월한 느낌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분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곧 익숙해지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회사에서는 체리 G80-3000 클릭을,
그리고 집에서는 체리 미니를 메인으로 쓰게 될 듯하네요. 체리 가족이 ㅡㅡ;;

컬렉터가 아닌 사용자로서,
저에게 꼭 맞는 키보드를 어여 한시바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냐의 수많은 고수님들처럼
늘 사이트를 떠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