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Prologue)

1980년대 초 PC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입력기기로서의 키보드는
그 원형과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면서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나온 인류의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컴퓨터의 역사는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도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죠.

허나 그러한 흐름 속에서도 키보드의 발전은 너무나도 느리게 진행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오히려 퇴보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대량 생산에 따른 원가절감으로 나타나게 된 제품 양산 때문이지
제작 기술자체로는 발전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죠. ^^)
키보드의 발전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개별적인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제작에 사용된 소재의 재질이라던가 기판 설계 및 적용 키스위치 등 내실을 기한 쪽이 그 하나요,
레이아웃의 변경과 재배열, 텐키리스, 각종 단축키의 추가, 무선화 등 외형/심미/기능성을 위주로 한 발전이 나머지 다른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후자의 키보드 개선 노력 가운데
인체공학, ergonomic라는 용어로 대변되는-가운데가 쭈~욱 갈라지는 키보드(split keyboard)의 등장을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2. 왜 mx5000인가?

다양한 형태의 split 키보드가 시장에 선보여졌는데,
그 중 3대 Ergonomic 키보드로 손꼽히는 것이
cherry G80-5000(관용명 mx5000), apple adjustable keyboard, IBM model M15입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ergo 형태의 키보드 계열에서
각기 cherry, alps, 버클링 스위치로 대변되는 대변자 역할이라고 할까요?
물론 배열에서나 디자인에서 이와 유사한 모델이 몇몇 제품 보이지만,
앞선 이 세 모델들이 가지는 의미는 기계식 키보드의 역사 속에서,
아니 키보드의 역사 속에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mx5000의 경우는 다른 두 모델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키감이야 각기 키스위치가 가지는 독특한 느낌이 있기에 주관적일 수 밖에 없어 열외로 한다 하더라도,
다른 두 제품의 경우 레이아웃에서 상당한 아쉬움을 남기게 되는 반면
mx5000은 두 제품보다 뒤에  나온 제품인 탓인지는 몰라도
레이아웃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하리라 할만큼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입니다.
특히나 5000과 그 악세사리 형태로 나온 5700 키패드를 나란히 놓을라치면
감동의 전율이 온몸으로 흐릅니다.
(지극히 주관이 개입된 내용이니 알아서 생각하세요. -_-;)


3. 구형 청색 슬라이더의 이식 결심과 그 실행

dual mx5000.jpg
▲mx5000 두 녀석이서 사이좋게 한 컷~!

mx5000에 사용된 체리 키스위치는
체리사의 최고급 MX 스위치 4가지 종류 중 (고동색이라 불리워도 좋을 정도로 짙은)갈색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11800이나 1800에 들어가 있는 갈색축과는 제조 원가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최고급 재질로 만들어진 키스위치라고 하더군요.
정말 오리지널 mx5000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설레임과 흥분이 어느정도 였는지...
아직까지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단 한 단어, “부드러움”이라는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키감(추후 자세히 기술하겠습니다.)이었습니다.
허나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한도 끝도 없는 모양인지,
보라카이님께 받은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를 접한 다음에는
자꾸만 “과연 5000에 구형 청색축을 잡아넣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습니다.
갈색축으로 만족하기엔 뭔가 아쉬운 2프로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mx5000 - 텐키레스+ergo 라는 최고의 외형에,
전 기계식 키스위치를 통틀어 클릭 스위치 최고로 평가받는 체리 구형 청색이라.... 뭔가 작품이 나올 것 같았죠.

마침 운이 좋았던지 그 당시 독일 이베이에 나왔던 mx5000을 낙찰받아
남들은 하나도 구하기 힘든 mx5000을 두 개(비록 하나는 독일어자판이지만)나 보유하게 되어
하나는 오리지널로 소장, 다른 하나를 구형 청색을 이식하는 것으로 바로 결정했습니다.
약간 고민되었던 것은 US자판은 완전 신품이었고, 독일어 자판은 중고였던터라
originality를 살려 us 자판을 그대로 소장할 것인가, 아니면 독일어 자판을 소장하고 us 자판을 이식할 것인가를 놓고 생각했던 일인데,
독일어 자판상태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기왕에 일 벌이는 거 us자판으로 하자고 생각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처음 이식 생각을 했을 때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며칠 전,
드디어 보라카이님으로부터 오리지널 갈색 슬라이더가 아닌 구형 청색 슬라이더가 들어간 mx5000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라카이님 아니었으면 이런 생각은 꿈으로만 그쳤을 겁니다.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


4. 본격적 수다풀기에 앞서...

MX_5000_Click___4.jpg
▲겉으로는 mx5000오리지널과의 차이를 전혀 못느낍니다. 그런데... 만져보면... +_+(보라카이님의 사진을 무단 도용했습니다. ^^;)

사실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는 체리 구형 청색의 7-80프로 수준이었고,
이전에 한독 키보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워낙에 상태 안좋은 녀석이었터라 비교 불능,
그리고 DTK 구형 청색 모델을 잠시 접해봤던 것은 튜닝 안된 상태에다 말 그대로 잠시 접해 봤다고 해야 옳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체리 구형 청색 슬라이더를 접해본 것은 저도 이 mx5000이 처음입니다.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 를 통해 구형 청색에 대해 엄청난 환상을 품었고,
주변 분들의 mx1800 구형 청색 카이저 사용기를 통해 뽐뿌를 양껏 받았는데,
이제야 그 한 풀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_-;

다만 무조건적인 장점만 기술하지도 않을 것이며,
제 나름대로의 기준과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
이전에 사용기 대상이었던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와의 키감 비교
그리고 오리지널 mx5000과 구형 청색 mx5000 비교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해를 좀 더 돕기위해서라면 model F at84나 mx1800 구형청색 카이저 프로와의 비교가 좋을테지만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터라 여기까진 못해 봤습니다. ㅠㅠ)

(1)외관

-당연히 mx5000 고유한, insert키 모여있는 곳이 2*3이 아닌 3*2배열입니다, mx5000의 유일한 레이아웃상의 단점(?)입니다.
겉으로만 봐서는 오리지널mx5000과 구형 청색 슬라이더를 이식한 mx5000 모델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독일어/US 자판의 차이에 의한 것 외에는 전혀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당연한 얘기인가요? ^^;)

-좌측편 esc 키의 수직연장선상에 윈도우 키와 메뉴 키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유독 이곳만 엽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반발력을 자랑하는 흑색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수로 잘못 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토록 무지막지한 키압을 적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높낮이 조절 스위치가 뒷면 위쪽 좌측편 2개, 우측편 2개씩 있으며,
중앙에 자리잡은 좌우측의 높낮이 조절 스위치는 2단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ergo 기술, 가운데가 쩍 벌어집니다.
각도를 달리해서 7단계로 조정이 가능한 듯 하네요. -_-;
또 좌우로 갈린 양측의 스페이스바 자체도 각기 총 5단으로 늘였다 줄였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각도 조정을 통해 어깨선부터 시작해서 팔꿈치-팔목-손가락 관절로 이어지는
자신에게 맞는 자연스러운 라인을 형성해 주기 때문에 직접 사용해 보면 장난이 아닙니다.
팜레스트에 자연스레 손목을 받쳐두는 것까지.. 정말 편합니다. -_-;;;
이거 쓰다가 스탠다드 키보드 형태 써보면 대번에 표시납니다. 누가 egro 기술 적용된 녀석 아니랄까봐..

아쉬운 점은 팜레스트가 플라스틱이라는 점....
그리고 팜레스트와 하단 키프레임 사이에 틈이 있어 사용을 많이 한다면 먼지가 들어갈 것 같다는 점입니다.
흠... 목재같은 걸로 만들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0-;;

(2)드디어 키감...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지금 사용기를 적고 있는 mx5000의 경우
1800이나 3000에 대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은 철판/알루미늄판...
이런거 전혀 안된 PCB에 바로 장착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3000모델이나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1800보다도 더 작은 PCB가 좌우 양측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스위치를 누를 때 키감의 감쇄에 큰영향을 미치는 통울림 현상은 훨씬 덜합니다.
다른 보조 판넬이 없어도 기본적인 성능을 많은 부분 뽑아 준다는 점입니다.

(가)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 vs. mx5000 체리 구형청색

4-500타 이상의 속타를 자랑하는,
물흐르듯 치는 타법을 구사하시는 분이 이 키보드를 손댄다...
최고, 최강의 도구가 됩니다.
스위치 하나에서 나오는 ‘짝’이라는 고음에서 내뿜는 여음(餘音)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른 키스위치에서 이어지는 클릭음은
자칫 날카롭게 들리는 클릭음을 바로 노랫소리로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치는 타법을 사용할 시 클릭음의 배가는 물론이고
손가락이 키캡에 착착 감기는 느낌에 손가락 끝에서부터 촉촉이 적셔오는 상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타수의 증가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 느낌은 제가 한글타수가 좀 돼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허나, 타수가 낮은 특히 그러면서도 키하나 하나를 세게 누르는 파워타이피스트가 이 키보드를 치게 되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질 것 같습니다.
촉감보다도 청감에서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그런 식의 타법은 촉감도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바꿔 말하면 이런 분들께서는,
개개의 구형 청색 키스위치를 치게 되면 어찌보면 마음에 들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키하나 하나를 세게 누르는 식으로 드보락 자판을 익히는 중이라(현재 150타 전후 -_-;)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와의 비교는 어떨까요??

의아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청감(聽感)에 있어서는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의 압승입니다.
체리 구형청색은 그 슬라이더의 경사가 훨씬 더 날카롭고 급하기 때문에
체리 빨간불 미니에 적용된 슬라이더보다 훨씬 순간적으로 짧게 쳐주게 되어
상당히 고음이 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초 체리 빨간불 미니 modified by boracai 수준에서
약간의 차이를 예상했던 제 생각보다도
훨씬 더 높은 음이 나게 돼서 제가 처음 접해서 쳐보았을 때
순간 당황, 아쉽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예전의 그 지절대던 산새소리는 어디갔냐고요~~~ ㅜㅜ)

산새소리라기보다는 새침떼기 꼬마아이의 앙증맞은 노랫소리를 들으며
손 끝으로는 엄청 얇은 살얼음을 딛는 느낌이라고 할까...
온 몸의 세포하나하나가 찌릿찌릿 활성화 되는 느낌 바로 그거죠~! -_-;

만약 mx5000 구형 청색 개조품에 알루미늄판이 덧대어진다면.....
촉감에 있어서나 청감에 있어서나
진정한 궁극의 명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
에휴~ 욕심은 끝도 없습니다.
(알루미늄 판을 대었을 때의 결과를 예상해서 9점이라는 짠 점수를 주었습니다. ^^;)

(나)mx5000오리지널 vs. mx5000 구형 청색

사진05.jpg

사진_06.jpg
▲위쪽은 mx5000 오리지널 독일어 자판, 아래쪽은 mx5000 구형 청색축을 이식한 US 자판...(폰카라 화질이 구립니다.^^;)

-mx5000 오리지널.....(독일어 자판)
mx5000이 손을 안댄(개조를 안한) 그 자체만으로 왜 최고의 모델로 손꼽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외형이야 앞서도 입아프게 설명했으니 차치하고서라도, 키스위치를 살펴보죠.
체리 갈색축의 느낌은 정말 자연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동양인에게 가장 알맞다는 평가받는 키압의 갈색축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리얼포스에서처럼 솜털처럼 가벼운 키감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가면 자연스레, 그리고 언제 움직였는지 모르게 스르륵스르륵 글자가 쳐집니다.
그것도 별로 힘이 드는 것 같지 않고서요.
그런데 1800이나 11800을 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분명 들거든요.
제가 소문으로만 듣던 갈색축을 처음 접한 모델은
그 흔한(?) 11800도 아니요, 1800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체리 갈색축에서도 최고봉이라는 mx5000 이었죠.
처음 쳐봤을 때의 그 느낌... 그건 아직 잊지 못하는 기억 중의 하나입니다. ^^;
이후 11800과 1800 카이저(이건 소장중)를 접해봤는데,
당연히 객관적 평가로는 1800 카이저>mx5000>>11800 이지만,
제 주관이 다분히 포함된 mx5000의 키감은 1800 카이저에 버금갈 정도의 자체 키감을 보여줍니다.
무시무시한 녀석입니다. -_-;

-mx5000 구형 청색.....
앞서 청감, 촉감에 대해 언급을 했으니
이번 part 에선 키압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갈색과 청색 사이의 비교는 동일한 슬라이더를 둔 상태에서 개선 효과를 노리고 손본 것이 아니라
슬라이더별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라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구형 청색의 키압은 갈색보다 오히려 더 세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신품 클릭에서 추출한 탱탱한 코일 스프링을 사용해서 그런 것일까요?
키 스위치 하나하나가 힘이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정열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구형 청색만이 가지는 클릭감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니 자연스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쳐주는 슬라이더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체리 클릭 스위치일진대,
그 밀쳐내는 힘이 약하다면 클릭감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테니 말이지요.
여튼 재미있습니다. ^^;


5. 에필로그(Epilogue)

부족한 글 솜씨를 가지고 매번 사용기라고 글을 올리자니 쑥스럽네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키보드 사용기를 쓰다 보면
언제나 대책없이 장문의 사용기가 되어 버리는 글과 마주하게 됩니다.
요모조모 꼼꼼히 살펴보면 정작 실속있는 말은 몇 마디 없음에도 길게 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제 글쓰기 타입인가 봅니다.
부족함이 많음에도 애정으로 끝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