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번 사이트를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가입인사겸 해서 짧은 사용기를 하나 올릴까 합니다.

저는 올해 서른 셋의 독신남입니다. 평소에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아서 이곳 저곳

하드웨어 관련 사이트들을 들락날락하다가 이곳에도 가입을 하게 되었네요.

지금까지 12년정도 컴을 만져왔고 그럭저럭 제가 사용하는 용도와 목적에 맞게 부품구성을

할 수 있는정도의 레벨입니다. 예전에는 주로 본체 내부의 부품에 관심을 가지다 근래와서

주변기기들로 촛점이 옮겨졌고 지금의 관심분야는 키보드가 되었습니다. 해서 이곳 키보드

매니아에서 좋은 정보들을 얻어가던 도중 우연히 장터에 나온 세진 기계식 키보드를 보게 되었고

이곳 회원님께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기계식에는 초보라 기껏 사용해본것이 아론 블랙 기계식입니다. 해서 초보의 입장에서

간단한 사용기를 작성해봅니다. 아론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식의 글이 되겠네요.


그럼.. 세진 1080의 사용기, 아니 사용기보다는 품평에 가깝습니다만.. 들어갑니다.



우선 외관은 아이보리색 키보드의 단아한 맛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곡면 처리된 케이스와 기계식 특유의 묵직함이 맞물려 심플하면서도

단단해 보입니다. 키캡의 금형도 좋고 글자도 선명하게 보여서

외관은 한마디로 "깔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키의 수는 103키로 한자키와 한/영 변환키만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저야 실상 마우스를 많이 이용하고 윈도우키와 팝업메뉴를 불러내는 키를 잘 이용하지

않아서 키의 수에 따른 불편함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것 같네요.

그리고 스페이스바가 길쭉해서 외려 편리합니다.

단지 예전에 쓰던 아론 기계식은 한영키가 중지가 닿던 위치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두드리면 스페이스바를 누르게 되는군요.

그리고 왼편의 알트키의 위치도 약간 다르기 때문에

이 두 키는 간혹 잘못 누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아마 적응기간을 거치면

나아질듯 하네요.


소리는 아론키보드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정숙 그 자체입니다.

키 스위치의 동작시에 나는 소리는 한 1/3정도 되는것 같고 타자시에 키가 완전히

눌리면서 전체적으로 나는 소리는 1/2정도의 수준인것 같습니다.

아론은 짤깍 짤깍 하면서 경쾌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데 세진은 달그락 달그락하는

부드러운 소리가 납니다. 타자시에는 클릭음 자체가 키캡이 완전히 내려와 부딪히는

소리에 가려서 잘 안들립니다. 아론은 짤그락 거리는 클릭음이 더 크게

들리는 편이지요.

제 타자 습관이 키보드를 그렇게 세게 두드리는 편이 아니라서

이정도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용해도 과히 거슬리지는 않을것 같네요.


타이핑 감 역시 아론과 사뭇 다릅니다. 우선 스프링의 반발력은 아론보다 좀더 강한듯 하고요,

클릭음이 나면서 발생하는 압력의 감소도 상당히 미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타이핑시의

감촉은 꼭 멤브레인 키보드를 두드리는것과 비슷합니다. 확실한 압력변화를 가지고 있는

기계식 키보드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특히나 강한 클릭음이 동반되는 환경에 계셨던 분들은

한마디로 "이게 기계식 맞아?"라고 물으실 수도 있겠네요.




그외에 단점 몇가지를 짚어 보면 역시 여러 분이 한결같이 지적하신 케이블 길이때문에 저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체를 모니터 옆에 올려두고 사용하는데 책상이 앞뒤로 긴편이라

그 길이도 커버하지 못하네요.. 딱 30센티미터만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아마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연장케이블이 필수일듯 합니다.


두번째는 키 스위치의 작동감과 작동시 나는 소리에 편차가 있다는 점입니다.

엔터키가 다른키들과 달리 약간 뻑뻑하게 작동하고 클릭음도 큽니다.

스페이스바도 엔터키보다는 부드럽게 동작하는데 소리가 약간 크게 나네요.

그외 Back Space, Delete, Home, 특히 PageUp키등등... 소리와 감촉이 모두 다릅니다.

그야말로 十人十色입니다. 모르죠... 특수키들을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도...

아무튼 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세번째, 제품의 포장이 너무 무성의합니다. 설명서와 보증서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하다못해 박스의 안쪽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정도는 써놨으면 좋겠습니다.

상품의 포장이란 내용물의 보호 외에도 제품의 홍보효과와 더불어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용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매니아적인 성격의 사이트에 드나드실 분들이라면

껍데기만 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분은 없으시겠지만, 세진 키보드의 포장은 위의 세가지 요건에

하나도 해당되는것이 없으며 그냥 알몸 보이기에는 뭣해서 한꺼풀 입혀놓은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아마 일반판매가 활성화되면 고쳐질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자잘한 것으로는.. 엔터키의 튀어나온 부분(즉 '키와 인접한 Enter라고 글자가

씌여있는)을 누를때 클릭이 잘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L자형 엔터키를

채용한 키보드들의 공통적인 문제같습니다만.. 세진 키보드는 다른것보다 좀더

심한것 같습니다. 제가 새끼손가락이 조금 짧은편이라 특히 불편하네요. 캡을 분리해서

구리스라도 발라줘야겠습니다.


에고.. 쓰다보니 단점이 글의 반이나 되는군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론보다는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습니다. 각 부품이 성형이 잘 되어 있고 손끝에 와닿는 키캡의 질감도

매우 훌륭합니다. 키캡의 흔들림도 아론보다 적고요.


마지막으로 비유를 해봅니다.

아론이 싸하고 톡톡튀는 생맥주라면, 세진은 숙성이 잘 되고 부드러운 매실주같습니다.


세진 1080키보드의 특징은 Simple함(단지 외형뿐만 아니라 소음, 키감등도 포함하여),

미려함, 완숙함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여러분께서 미리 리뷰와 사용기를 올려주셨고 이미 구입하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혹시 앞으로 구입을 고려중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쓰다보니 긴글이 되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 사용기와 더불어 테스트삼아 채팅도 해보고 하면서 장시간 두드리고 있습니다.

역시나 스프링의 반발력이 조금 강한듯 싶네요... 2-3시간 연속으로 두드리고 있으니

손가락이 은근히 힘들어합니다. 특히나 압력변화가 거의 없는 밋밋함으로 인해서 그러한

피로가 가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같이 살살 두드리는 사람은 중간중간에

휴식시간을 가져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