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키감, 저렴한 가격, 그리고 아쉬운 마무리.




지금까지 컴퓨터를 만져 온 지 10 여 년이 넘었지만, 키감에 관심을 가지고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키보드는 마우스와 함께 직접적으로 인체와 접촉하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체의 성능에만 관심이 있어 업그레이드 때도 뒷전이기 일수였고, 가끔은 화풀이의 1번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재작년 즈음 컴퓨터의 생김새가 중요시 되던 시점, 테크노마트의 컴퓨터 상가를 지나가다 우연히 검은색 우레탄의 고품스러운 생김새를 가진 아론의 106키 키보드를 보고 별 생각 없이 눌러보았다가 손끝으로 느껴지는 생소한 느낌에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55000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구입하였고, 손가락을 단단히 받혀주는 기분좋은 느낌을 즐겼다. 그리고 얼마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아론키보드의 가격폭락과 함께 106키를 처분하고 인체공학 내츄럴 109키로 넘어오게 되었다.


<109키의 사진>

109키를 처음 접하고 받은 느낌은 거대함, 그리고 단단함. 숫자상으로는 106키보다 겨우 3개의 키가 많을 뿐이였지만, 인체공학 디자인이 결합되며 크기는 항공모함이 생각날 만큼 널찍하게 바뀌었다. 중앙으로 옮겨진 고휘도 LED 와 두툼하게 자리잡은 손목받힘부분이 그 이유였는데, 특히 손목받침대는 우레탄의 기분좋은 접촉감 덕분에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또, 크기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보스럽고 둔한 느낌을 주지 않는 유연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몸체는 디자인의 면에서도 칭찬할 만 하다. 106키 때부터 호평 받은 고급스러운 검은색과 우레탄재질의 몸체 또한 아론 키보드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크지만 매끈하고 유연해 보인다.]    


[우레탄. 기계적이지 않은 매력적인 촉감.]

생김새에서는 매우 칭찬할 만 하지만, 기계식 키보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키감. 아론의 기계식 키보드는 기계식의 특성인 ‘누르는 느낌’과 ‘받혀주는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다. 키를 누를 때의 스프링의 느낌이 106키 때보다 조금 약해진 감은 있지만, 대신 좀 더 경쾌한 타자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키감의 ‘단단함’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데, 키를 누를 때 흔들림이 느껴진다. 마치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건너가는데 다리를 밟을 때 조금씩 흔들린다고 할까? 안정감 면에서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도 키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흔들어보면 그 흔들림이 꽤 큰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이핑 할 때 악영향을 끼친다거나 키감에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하진 않는다.


[위에서 걸어다니기에는 좋지 않다.]

또 109키에는 새롭게 들어간 ‘최소화’와 ‘종료’키가 타자 중에 불편함을 주고 있다. 특히 한/영키 옆에 있는 최소화 키는 한글과 영어 전환 시 실수로 눌러 전 화면을 최소화 시켜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키의 위치가 참으로 오묘해서 주의해도 종종 누르게 되는데, 아마도 106키 시절의 한영 키와 비슷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종종 누르게 되는 최소화 키. 바쁠 때 누르면 탈력이다.]

예쁜 모양과 높은 가격대 성능비에도 불구하고, 아론키보드의 최악의 단점은 바로 만듦새이다. 106키 시절에도 키스킨이 지워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109키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바로, 키캡의 부러짐이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109키를 구입한 뒤 이 녀석이 3번째이다. 2회에 걸쳐서 키캡 부러짐이 나타났고, 새제품으로 교환 받을 수 있었다. 아론의 A/S 는 무척이나 친절했고 신품으로 교환이라는 만족스러운 A/S를 해 주었다. 하지만, 109키 제품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앞서 두 번에 지금 쓰는 제품까지 계속해서 키캡 부러짐현상이 발생했다.


[더 부러질 것 같아서 A/S도 미루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너무나도 안타까울 정도로 아론 키보드의 장점과 매력을 깍아내리고 만다. 저렴한 가격, 만족스런 키감, 잘생긴 외모, 그 무엇 하나 ‘잘 부러지는 아론 키보드’라는 단점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어버렸다.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로서의 제품의 결함에 대한 화남보다도, 잘 만들어진 키보드가 결함 때문에 평가절하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움이 앞선다. 마치 로지텍처럼, 앞으로 멋진 인터페이스 제품들을 만들어 줄 회사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사용기에 참가를 생각하며, 아론 키보드에 대한 최종 평가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무척 고민하였다. 매우 만족스럽게 사용한 만큼, 키캡 부러짐으로 인한 불편함이 컷 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제품의 만듦새에 대한 불만보다는, 제품에 실린 아론 키보드의 정성에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대한민국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컴퓨터가 보급되어 있지만, 인체와 바로 접촉하는 키보드에 정성과 관심을 쏟는 곳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언제나 성능중심만을 외치며 뒷전으로 밀리기 일수이고, 키보드는 ‘싸구려 소모품’처럼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전자상가를 돌아보면 색색갈 알록달록히 입혀 눈길을 끌지만 정작 눌러보면 좋지 못한 표정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던 경험은 단지 필자의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좋은 가격대 성능비를 가진 키보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 아론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 106키에서는 거의 손색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기 때문에서라도 이번 109키는 아쉬움이 크다. 당장에, 키캡 부러짐 현상과 최소화, 종료키의 위치만 바뀌어도 아론의 109키는 거의 약점없는 키보드라 평할 만 하다. 부디, 아론이 109키에서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멋진 제품을 만들어 내 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