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과 이성의 수긍에도 불구하고 감성의 거부는 쉽게 극복되지 않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카일 스위치를 2016년 여름 맞이 일상 탈출이란 변명으로 몇몇 키보드들을 배 삼아 유랑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에 선 보인지 벌써 4년여를 넘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감성의 벽을 넘지 못해 바라만 보던 처지였기에 나름 재미있게 여행하고 있어 간단하게나마 정리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첫편으로 ABKO K520 키보드를 타고 떠난 카일 청축 유랑기입니다.



1. 타고 갈 배 - ABKO K520


카일 청축을 유랑하는 배로 삼은 것은 ABKO K520 입니다. 중국에서 가격과 상황 봐서 들여와 한 계절 팔고 접는 장사가 일상인 원효로 주위 유통사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지금은 생명을 다하여 눈물의 땡처리 비슷한 느낌으로 정리 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이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흔한 제품들 중에서도 나름 괜찮은 하우징에 비록 취향은 아니나 지루한 레인보우 LED가 아닌 XRGB LED를 채택하는 등 고급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스틸시리즈, 테소로/제닉스, 구형 레이저 등의 유명 브랜드에서 채택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저렴한 공급가에 맞추어진 낮은 빌드 퀄리티의 키보드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스위치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품질 보장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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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쁘지 않은 패스트 패션과 같은 하우징 


키보드를 선택하는데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하우징입니다. 한성의 무접점 키보드 하우징과 동일한 것으로 중국 Plum에서 동일한 사양의 키보드가 출시되어 있으며 유명한 Noppoo Choc Mini의 하우징과 형제 관계의 구조로 고만고만한 저렴한 키보드들 중에서는 나름 완성도를 추구한 하우징입니다. 다만 역시 기존 메인스트림 브랜드들과는 품질 차이가 있어 굳이 비교하자면 기존 메인스트림 제품들이 인지도 있는 브랜드들의 기성복 느낌이라면 이것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코디하기 무난하지만 고품질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약간은 아쉬운 옷가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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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Way 케이블 라우팅을 조금더 개선해 5-Way 형태로 라우팅을 제공하며 흔하디 흔한 멋이라 쓴 것을 원가 절감 고육책이라 이해하는 비키 스타일과 다르게 일반적인 덮개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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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부의 높이는 그냥 보기에는 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하우징의 덮개가 완전히 덮이지 않고 하단 부분을 살짝 비워두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긍정적인 착시입니다. 조금더 세련되게 보이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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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은 일체형 구조로 되어 있어 아쉬움이 있지만 직조 재질로 아쉬움을 달래어 주고 있습니다. 틸트는 1단을 제공하여 특별할 것이 없으나 미끄럼 방지 처리 등이 잘 되어 있습니다. 



- 당황하게 하는 스테빌라이저와 키캡의 미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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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는 XRGB 타입으로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임의의 색상으로 다양하게 변경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생기는 제약으로  하단 열에서 체리 프로파일 높이 키캡과 미묘한 간섭이 발생합니다. 낮은 키캡이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드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LED 대비 아쉬움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구조의 큰 단점 중 하나는 스테빌라이저 입니다. 마제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낮은 구조로 되어 있어 스테빌 연결부를 키캡에 고정한 상태로 스위치와 결합하는게 불가능해 연결 부를 불안하게 보강판에 배치해두고 키를 내려 꼽는 방식으로 키캡 설치를 해야 하는데다 키캡과 결합부 반대 쪽 스테빌라이저 면이 키가 올라오면서 보강판을 치게 되어있어 쇳소리와 통울림을 크게 배가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강판과 하판 하우징 사이의 간격이 가장 넓어지는 백스페이스는 텅텅거림의 극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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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구성인 영문은 더블샷, 한글은 레이저 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구조 자체는 통상의 '중국발 더블샷'과는 차이를 가집니다. 정상적인 폰트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키캡 상부는 살짝 고무 느낌까지 느껴지도록 처리되어 있으나 측면은 LED 반사를 고려한 고광택 하이그로시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이 특징만 보자면 세련됨이 느껴져야 하는데 측면에 기능키 아이콘을 배치한 것 때문에 세련되어 보이기 보다는 꽤나 번잡스럽게 보입니다. 차라리 기능키 인쇄도 상면으로 올렸었다면 더욱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XRGB를 이용한 색상 변화로 Capslock 등의 인디케이터를 대신하고 있으며 별도의 인디케이터 LED는 탑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2. 차이와 체감 - 카일 vs 체리 


-  공식 사양 - 구별 불가능한 동일함


카일 청축에 많은 오해중 하나가 영어권에서의 키압 표시의 기준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사양 부터 체리 대비 높은 키압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실제로는 카일 청축은 적어도 사양 만으로는 체리 스위치와 거의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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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ycool 출처의 Kailh 청축의 사양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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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SD Keyboards의 체리 MX 청축 사양 표시 (출처 : http://www.wasdkeyboards.com/mechanical-keyboard-guide) -


사양표 상에서의 그래프와 제원은 정확하게 체리 MX 블루와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동일함이 오직 사양표 상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반발력과 스트로크 - 체감과 숨겨진 이면


실제 타이핑할 때의 체감 차이는 크게 소리, 손 끝에서 전해지는 감각, 스트로크 등에서 발생합니다. 체리의 찰칵 거림은 그야말로 가벼운 찰칵의 느낌이라면 카일의 경우 조금더 경직된 '찰!칵!'의 느낌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완성품 키보드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키캡을 모두 벗기고 테스트해보면 의외의 현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실제 '클릭'의 느낌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엉뚱하게도 차이는 반발력에서 발생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즉 키가 눌리는 순간 자체는 차이가 없지만 그로 부터 키가 복귀하는 순간 카일은 조금더 무겁게 따라옵니다. 이것은 종단에 있어 물리적인 스트로크는 같더라도 기계식 키보드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키가 인식되는 순간 다음 키로 옮겨가는 심리적 스트로크 줄타기에 있어 체감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즉 카일 축은 다음 키로 넘어가기 까지 감각에 있어 조금더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이는 스트로크가 깊다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한마디로 무거움을 연출합니다. 이것은 짐작하건데 몇몇 카일 스위치 키보드들에 대한 사용자들의 비판인 '키감이 빨리 무너진다'라는 평가와도 유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완성품 빌드 퀄리티 - 지향의 차이 


종종 동일 구조에 스위치만 다른 제품들이 출시되곤 하지만 대체적으로 체리 스위치 적용 제품들은 상대적으로 고가로 메인스트림 브랜드들에서 출시되고 그 만큼 높은 빌드 퀄티리를 가집니다. 그에 반면 카일 스위치는 저렴한 가격의 보급형 키보드에 주로 채택되고 흔한 표현으로 원가절감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즉 스위치 자체의 특성도 차이를 만들어 내지만 빌드 퀄리티가 평가의 호불호를 가르는 측면이 적잖습니다. 단적으로 본 사용기의 대상인 ABKO K520은 카일 스위치 채택 제품 치고는 고품질을 추구했으나 레오폴드의 FC750R 들과는 비교할만한 제품이 되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체리 스위치 메인스트림 제품들과 대등한 가격의 게이밍 기어 브랜드 키보드들 역시 추구 목적과 본질이 다르다 보니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엠스톤의 판테온 처럼 조금씩 메인스트림 타겟의 카일 스위치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아쉬움이 있지만 486 시절의 인텔과 AMD의 관계처럼 세컨 소스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 카일, 아니 제조사인 카이후아에게도 다음 단계의 올바른 전진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 타이핑 데모 - 살찐 손가락들의 향연


기본 키캡과 저렴한 더블샷 PBT 키캡을 각각 세팅하고 타이핑 테스트를 동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글로 다하지 못한 느낌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영상의 지저분한 책상과 돼지 발인지 사람 손인지 구별 못할 무언가는 크게 신경쓰지 말아주십시오. 


- 기본 키캡 타이핑 테스트 -


- 루키 이중사출 PBT 키캡 설치 타이핑 테스트 -



3. 결론


카일 청축 스위치는 적응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꽤나 매력있었습니다. 한달여간 사용해보면서 때로는 '왜 이렇게 손이 힘들까'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만 그 반면 '이 정도면 충분히 실용적이다'라는 생각도 했으니 말이지요. 다만 이 키보드를 봉인하고 나서 다시 또 일부러 부지런하게 꺼내 쓸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 겠습니다. 이미 메인스트림 키보드 브랜드들에 익숙해진 감각은 굳이 유량을 더 이어가야 하냐며 항변하기 때문입니다. 기화가 된다면 엠스톤 판테온을 비롯 조금더 고급화된 카일 스위치 제품들을 다루어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마음 한쪽에 남겨두는 정도가 적절한 듯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평점은 키알못이라 적기 쑥쓰럽습니다만 감히 키보드와 스위치 모두 80점으로 마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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